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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막히는 스릴러, 봉준호다운 선택 <해무>

[리뷰] 안개 자욱한 바다를 배경으로 욕망의 충돌 그려낸 영화 <해무>

14.08.17 15:28최종업데이트14.08.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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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미지의 세계를 뜻하는 수식어로 통한다. 그리고 동시에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역사에서 항해로 새로운 장소가 많이 발견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이는 영화 <해무>에서도 마찬가지의 이미지로 작용하면서,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는 90년대 후반, 여수 바다를 호령하던 어선들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다. 경기침체와 더불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뱃사람들은 하나 둘씩 일자리를 잃어가는 추세. 이러한 여파는 <해무>의 주인공들이 타는 낡은 어선도 비켜갈 수 없다. 혹독한 현실에 배를 팔아치우려는 선주의 독촉이 이어지고, 선장 철주(김윤석 분)가 이끄는 '전진호'마저도 감척의 대상이 될 상황에 처한다.

영화 <해무>의 스틸컷. 만선의 꿈을 싣고 어선 '전진'호는 바다로 나갔다. 그들이 바다의 안개속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모른 채로.ⓒ (주)해무


결국 위기를 모면하려고 철주는 밀수를 감행하기로 결심한다. 삶의 터전이자 선원들의 생활이 달린 일이었기에 어떻게든 배를 지켜내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일을 주선한 쪽에서 밀수가 아닌 밀항을 맡기게 되고, 차마 내키지 않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선원들도 동참하게 된다. 법에 어긋나고 위험한 일이기에 두렵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선장을 포함한 여섯명의 선원들이 나아간 바다에서 배에 가득 태운 것은 고기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밀항자들의 수는 예상보다도 훨씬 많았고, 그 와중에 마주친 해무가 전진호를 감싸고 그 앞에 놓인 바다를 뒤덮는다. 안개에 가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뱃길처럼, 도저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모른 채로 그들은 천천히 먼 바다로 나아간다.

해무를 만나 충돌하는 욕망, 침몰한 만선의 꿈

영화의 시작에서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모두 만선의 꿈으로 한껏 부풀어 있다. 선원들은 어촌 마을의 소박한 일상에 만족하며 큰 욕심없이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받아든 불법 밀항 제의는 마치 하나의 작은 기회처럼 느껴졌고, 그저 조금 더 큰 돈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항하는 배에 올라탈 따름이다.

영화 <해무>의 한 장면. 안개 자욱한 바다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욕망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 타인의 욕망과도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된다.ⓒ (주)해무


하지만 그들이 밀항을 맡은 순간부터 바다는 더욱 거칠고 무서운 공간으로 변한다. 잦은 조업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평소 친분이 있던 해경 간부는 (본래의 역할인) 감시자가 되어 범죄가 발각되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신분도 모르는 상태로 배에 태운 밀항자들은 낯선 존재로서 '언제 적이 될지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이 와중에 맞닥뜨린 바다의 짙은 안개는 시야를 가리며 더욱 숨막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 다양하고도 많은 요소들이 퍼즐처럼 차곡차곡 엮이면서 관객의 숨통을 조인다.

파도가 출렁이는 망망대해에서 자욱한 안개를 만난 전진호.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지만 정작 발 디딜 곳은 한정되어 있고, 고립된 상태에서 선원들은 자신의 욕망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여자를 품에 안아보고픈 욕구에 눈이 먼 창욱(이희준 분)과 경구(유승목 분), 배를 구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선장 철주, 선장을 도우며 임무완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갑판장 호영(김상호 분). 이들이 드러내는 냉혹한 태도는 잔인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구하고자 발버둥치는 기관장 완호(문성근 분)와 동식(박유천 분)의 모습과 대비된다.

막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욕망을 무기처럼 꺼내들자 마침내 피할 수 없이 서로 충돌한다. 누구보다도 끈끈한 유대감을 보이던 선원들은 다른 욕구를 충족하고자 서로 뭉쳤다가 또 등을 돌린다. 결국 만선이 되어 뭍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그들의 꿈은 망가진 상태로 처참하게 침몰한다.

잘 짜여진 각본의 숨막히는 스릴러

영화 <해무>의 포스터.ⓒ (주)해무


111분의 상영시간동안 작은 규모의 어선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풀어내는 영화 <해무>는 극의 후반부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이는 잘 짜여진 각본의 힘으로 보이며, 함께 줄거리를 써낸 봉준호와 심성보 감독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두 사람은 2003년작 <살인의 추억>에서도 각본 작업을 같이 해본 일이 있었기에 호흡이 잘 맞은 듯하다.

좁은 배에서도 단조롭지 않은 장면들을 상영시간 내내 선보인 연출력도 돋보인다. 이에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한층 더 훌륭한 스릴러로 거듭난다. 먼 바다의 짙은 안개가 갑판 위의 사람들을 뒤덮는 장면과 아슬아슬한 상황은 관객을 숨막히는 공포의 세계로 인도한다.

무엇보다도 섬찟한 것은, '전진호'의 몰락이 그저 영화 속의 일이라고 하기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이 정해놓은 규제를 무시해도 괜찮다는 태도, 배를 구하고자 명령으로 잔인한 일까지 강요하는 선장, 선원의 무심함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승객들. 이는 우리가 지난 근현대사를 지나는 동안 겪었던 많은 참사의 요인들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다.

목표성취를 위해서는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여"라고 외치다가도, 사고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망설임없이 바다에 내던지는 장면에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어떤 인식도 엿보인다. 인권의 가치 등은 잠시 제쳐두고 돈을 크게 벌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성장만능론, 혹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허울좋게 포장된 한탕주의 말이다. 또한 '결국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라며 강압적으로 시작된 일이 등장인물들의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을 지켜보면, '낙수효과'를 거론하며 사회 전반의 희생과 불평등을 당연시한 현실이 오늘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배에서는 내가 대통령이고 판사고 니들 아버지야!"라고 윽박지르며 사람들 앞에서 폭력을 써서라도 규율을 유지하려는 선장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자신의 뜻을 따라오면 어찌 되었든 '전진호'를 지켜내고, 그래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의 태도는 절대복종 체제 아래에서 발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세우던 독재 시절의 무자비한 정부를 연상케 한다.

어류 대신 어창에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어두운 얼굴이 영화가 막을 내린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영화가 그려낸 배 위의 잔인한 풍경이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스크린에 압축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IMF가 막 터졌던 <해무>속의 시대로부터 20년 가까이 흘렀건만, 여전히 경제적인 논리와 현실의 한계를 이유로 강요되는 많은 것들이 우리 삶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위주의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는 논리로 무장한 폭압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과연 우리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2014년이 된 한국의 땅 위에 서있건만, 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짙게 깔린 해무가 어슴프레 보일 것만 같다. 새하얀 장벽처럼 서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전진호의 항로가 그랬듯이 한국의 앞날도 그다지 뚜렷하거나 밝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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