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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여인들, 사과받을 수 있을까

[영화로 쓰는 한국현대사] 유신 최후의 날 <그때 그 사람들>ⓛ

14.02.02 18:50최종업데이트14.02.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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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월 7일 오전 11시 40분]

임상수 감독의 2004년 <그때 그 사람들>은 10·26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룬 블랙정치코미디다. 개봉 당시 민감한 내용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의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2005년 박지만씨는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비밀요정에서 반라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장면, 박 전 대통령이 일본어를 사용하는 장면, 그리고 일본가요를 잘 부르는 가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장면 등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였다.

서울지방법원은 영화의 시작과 끝의 다큐멘터리 장면 3분 50초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제작사 MK픽처스는 이 장면을 삭제한 후 개봉했다. 하지만 박씨가 다시 영화상영금지 및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개봉 이후에도 지루한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2006년 서울 중앙지법 민사63부는 이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들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상영금지 청구소송은 기각했다. 이후 2008년 열린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민사제14부는 극장 상영 시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고,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인 것을 밝혀라"고 판결했다. 다만 이미 유족에게 지급된 1억 원의 배상금은 제작사 측에 반환하는 것으로 합의됐다.

애초 <그때 그 사람들>의 자막은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였다. 자막 수정은 '상상력'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픽션'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모든 극영화는 허구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픽션'에 '픽션'이라는 자막을 넣어야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픽션'이라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지만 오히려 사실에 철저히 근거했다. 영화의 상당부분이 사실에 가깝다. 과연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구일까?

100명이냐 200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화의 도입부에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한석규)는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한 여인의 철없는 어머니(윤여정)로부터 하소연을 듣는다.

각하의 성은(?)을 입은 딸의 팔자를 고쳐 보려는 욕심에 철없는 어머니는 청와대까지 쫓아가 소동을 벌였지만 어르신은 그녀의 딸을 다시 부르지 않다.ⓒ MK픽처스


"새벽에 언뜻 깨보니 자기 몸을 쓰다듬고 계시더래요. 곱다. 정말 곱다. 이러시면서. 한없이. 계속 온몸을. 쟤가 눈을 뜨고 배시시 웃으니까. 그제서야 멋쩍은 듯 옷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지가 그냥 자빠져 있을 수 있겠어요. 어르신 옷 먼저 입으시라고. 저는 벗은 채로 수발을 들었대요. 벗은 채로. 그러다가 결국 어르신이 쟤를 한 번 다시 품어주시고. 그 어른 참 대단하세요. 그 연세에. 그리곤 쟤를 꼭 품으신 채로 그러셨대요. 꼭 다시 놀러 오라고. 꼭 다시 보자고."

각하의 성은(?)을 입은 딸의 팔자를 고쳐 보려는 욕심에 철없는 어머니는 청와대까지 쫓아가 소동을 벌였지만 어르신은 그녀의 딸을 다시 부르지 않다. 철없는 모녀는 청와대가 아니라 중정의 남산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 에피소드는 서슬 퍼런 유신시절,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로 세간에 떠돌던 '괴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물론 대사는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이다. 하지만 훗날 그 괴담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잇달았다.

김재규의 변호사였던 안동일은 2005년 출간된 회고록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을 거쳐간 여성이 200명가량 되는데, 이 때문에 박선호가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웬만한 일류 연예인은 대통령에게 다 불려갔었다. 당시 항간에 나돌던 간호장교 이야기, 인기 연예인 모녀 이야기 등이 모두 사실이었다"고 폭로했다.

박선호는 법정에서 ('대통령의 여인'들이) "지금도 수십 명이 일류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명단을 밝히면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킨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각하께서 평균 한 달에 열 번 (궁정동 안가에) 나오셨다"고 법정 진술하기도 했다. 박선호는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난잡한 사생활을 폭로하려고 했지만 김재규의 만류와 검찰의 제지로 더 이상 증언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역사의 비밀을 가슴에 품은 채 김재규와 함께 교수대에 올랐다.

<그때 그사람들>의 한 장면. 배우지망생의 품에 안긴 박정희 전대통령ⓒ MK픽처스


박 전 대통령의 여성편력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의 여성편력 때문에 이른바 '육박전'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조갑제씨가 쓴 <유고>에 보면, 육영수는 방첩부대장이었던 윤필용에게 "이건 절대로 여자의 시샘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하께 여자를 소개하면 소개했지 왜 꼭 말썽 날 만한 탤런트들을 소개합니까?"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큰 실패가 없지만 개인의 심리적 요인에서 피해의식이 심하거나 심한 고독감을 느끼는 경우 남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성행위를 하면서 재확인하고 싶어 할 때 섹스중독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섹스중독은 피해의식과 고독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여인'들에 대한 흉흉한 괴담에 대한 관련자들의 증언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여배우의 비극

1906년대 촉망받던 여배우 A씨의 삶은 어르신의 각별한 사랑(?)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어느 날 말로만 듣던 '대통령의 채홍사'가 그녀의 집에 찾아 왔다.

"각하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잠깐 청와대에 다녀오시게 화장하시고 15분 이내로 떠나실 준비를 하세요."

비극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그녀를 엄습했다. 그녀는 "이제 갓난애의 엄마로서 신혼 유부녀입니다. 홀로 있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저는 좀 빼줄 수 없을까요?"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영화사의 스태프와 결혼해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원을 '채홍사'는 냉정하게 일축했다.

어르신 접대는 보통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관례(일설에 의하면 당시 중정 측은 같은 여자를 두번 이상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였지만 그녀의 경우는 달랐다. 그 날 이후 거의 매주 어르신께 불려갔다고 한다.

한 달 뒤, 그녀의 남편은 갑자기 "무시무시한 곳"에 다녀왔다며 그녀와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 후 그녀는 각하의 소개(?)로 돈 많은 재미교포 늙은이와 결혼해 자의 반 타의 반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주한인신문 <한겨레저널>의 김현철씨가 그 여배우와의 인터뷰를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관위가 김현철씨의 칼럼을 SNS로 퍼 나른 누리꾼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뒤늦게 논란이 됐다. 그 여배우는 이미 작고했기 때문에 이 기사의 사실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유신로맨스의 비극적 여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영화배우 문일봉(본명 문병옥)씨는 1991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1962년 만찬장에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나 딸 하나를 낳았고,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관계를 유지, 서울 중구 문화동 집에서 딸 둘을 더 출산했으며 친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친필 편지 3통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1995년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의 이순희 상임부회장은 스님이 된 문씨를 만나 기사내용이 허위라는 각서를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9년 대법원은 "문병옥의 각서는 친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여인들의 주장을 검증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여배우 A씨는 이미 고인이 됐고 문일봉은 속세를 등진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최고권력자, 국가권력에 의한 성적 착취는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범죄행위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부 군인들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것처럼 '대통령의 여인'들도 국가폭력의 희생자이며 이들에 대한 성적 착취는 독재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어르신은 세상을 떠났지만 '대통령의 여인'들은 아마도 대부분 생존해 있을 것이다. 피해자들은 말이 없지만 적어도 국가 차원의 사과는 필요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께서 독재권력에 의한 성적 착취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면 어떨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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