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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영화인 줄 알았는데, 엄마 영화구나

[영화로 읽는 세상 이야기 17] 눈물 없이 못 보는 영화 <하모니>

10.02.13 21:02최종업데이트11.05.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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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넘게 세계 영화판을 휩쓸어 온 <아바타>의 기세에 눈치만 살피던 한국영화가 <하모니>와 <의형제>의 상승세로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두 영화 모두 티켓 예매율에서 아바타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승세가 설 연휴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인데, 이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을 터.  

개인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는 '썩' 내키지 않습니다. '네가 이래도 안 울고 배길 거여~' 하고 달려드는 신파의 속셈을 알기 때문입니다. 헌데도 아내에게 손목을 잡혀 눈물바람 휘날리는 극장 문을 열고야 말았습니다. 노래를 매개로 소통과 화해의 의미를 배워가는 여자 교도소 합창단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 <하모니>입니다.

여자 재소자들이 꾸린 합창단을 매개로 소통과 사랑의 하모니를 연주하는 <하모니>는 죄수들의 인권과 사형제에 대해서도 입을 연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조건 없는 내리사랑의 상징인 모성애와 교도소와 노래, 이 세 가지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하고 감옥에서 출산한 아들을 법에 따라 입양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과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을 위해 합창단 결성에 나서는 엄마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남편과 제자의 불륜을 목격하고 죽인 죗값으로 딸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씌운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사형수 어머니, 양부에게 성폭행 당하다 살인을 저지른 딸은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지만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 어머니, 생활고에 못 이겨 사기를 치고는 두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엄마 등등.

<하모니>는 우리네 어머니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잔주름처럼 깊게 팬 모성애를 스크린 가득 채웁니다. 애잔하면서 절박하고, 사무치도록 그립고, 미안하고 고마워 절절히 사랑스러운 엄마가 관객들로 하여금 여지없이 눈물을 쏟게 합니다.

하여, 실컷 운 뒤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면 <하모니>를 추천합니다. 명절 하루만이라도 어머니와 아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족이 함께 나들이 삼아 볼 만합니다. 단, 손수건과 티슈는 반드시 지참해야 합니다.

작정하고 울게 만드는 모성애, 소통에 대해 묻다

고아로 태어나 남편의 모진 폭력을 견뎌내던 정혜는 뱃속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죽이고, 감옥 안에서 아기를 낳아 18개월 동안 기르고 입양 보낸다. ⓒ CJ 엔터테인먼트


화장지 종이심으로 머리카락을 말고, 실로 수박을 자르는 청주여자교도소 여죄수 감방. 방문한 합창단을 보고 곧 아이를 입양 보낼 정혜(김윤진)가 자신들도 합창단을 만들자고 나섭니다. 아이를 떠나보내기 전 단 하루만이라도 아이와 세상 밖으로 나들이(특박)를 가겠다는 절실한 희망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교도소장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합창단 꾸리기는 시작됩니다.

정혜는 전직 음대교수였던 사형수 문옥(나문희)을 지휘자로, 재소자들을 언니처럼 대해주는 공 교도관(이다희)을 반주자로 어렵게 섭외합니다. 죄수들을 상대로 합창단 공모를 하고 배꼽 빠지게 웃기는 심사를 거쳐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고 연습에 들어갔으나, 소프라노가 없습니다.

계부를 살해한 뒤 옥중에서 수차례 자살기도를 했던 음대생 유미(강예원)는 한사코 거부합니다. 정혜와 문옥의 삼고초려에, 특히 문옥에게서 자신을 면회 와도 만나주지도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결국 유미도 소프라노를 맡습니다. 성공적인 데뷔의 기쁨도 잠시, 정혜는 아이와 예정된 이별을 합니다. 이후 4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노래를 불러온 이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합창대회에 게스트로 초대되는데….

영화는 여러 색깔의 소통에 대해 묻습니다. 폭력과 외도로 무너지는 남편과 아내 간의, 입양을 둘러싼 친모와 양모 간의, 친구처럼 살뜰한 엄마와 딸 간의, 감옥이라는 엄혹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도관과 죄수 간의 소통 등 다양한 소통의 모습을 펼쳐 놓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과 아내 간의 소통 문제를 제외하고 나머지 '관계의 소통'은 조화롭게 풀려 나갑니다.

이는 영화의 두 축인 정혜와 문옥이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인해 살인을 하고 감옥에 들어온, 즉 남편들이 소통 불능의 '원인제공자'인 데 연유하겠지만 각설하고, 영화는 뭇 남자들에게 익숙지 못한 소통에 대해 어찌할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미덕을 갖췄습니다.

죄와 함께 도매금으로 묶인 인권 "인권은 당신들만 있나?"

갖가지 서러운 사연과 상처를 간직한 여자 재소자들이 합창단을 꾸리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관계의 소통을 복원해 간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미덕은 또 있습니다. 죄수의 인권에 대해 짚기 때문입니다. 죄 지은 것들에게 무슨 인권타령?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죄수들에게도 인권은 있고, 그것이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발언합니다.

전국합창대회에 특별 출연하게 된 합창단원들에게 사건이 일어납니다. 공연장 화장실에서 귀부인이 실수로 다이아 반지를 잃어버리고, 때마침 이들이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들에게 "모두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고 알몸 수색을 시작합니다. 여성 재소자들은 수치심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굴욕을 감수할 처지에 놓입니다.

이 와중에 입양 보낸 아들을 닮은 소년을 뒤쫓아 간 정혜가 범인으로 몰리고 경찰은 강제로 옷을 벗기려 합니다. 이때 "이건 인권침해야. 알아!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할 거야!"라며 나선 이는 뜻밖에도 교도소 내에서 재소자들을 얼음처럼 차갑게 대하기로 정평이 난 고참 여성 교도관입니다. 현진건의 소설 <B사람과 러브레터>의 B사감 못지않게 엄격한 이 교도관이 날선 눈빛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재소자 합창단의 게스트 출연이 어렵게 됐다는 합창대회 사회자의 멘트에 교도소장이 나서 공식 항의를 하고, 여성 재소자들은 한바탕 울음을 터트린 뒤에야 무대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이들의 인권의 존엄함이 교도관들에 의해 존중되는 장면은, 감옥에 한 번 가 보지도 않고 법조문만으로 죄와 함께 인권을 도매금으로 묶어 재단하는 경찰과 검사와 판사와 그리고 알몸 상태의 여성 재소자들을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한 시민들을 상대로 되묻습니다. "인권은 당신들에게만 있느냐"고.

모성애라는 화음으로 지켜내는 '가족'

감옥 밖 합창대회에 참가해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는 합창단. 그러나 반지 도둑으로 몰리며 죄수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본격적으로 분석하자고 들이대면 범작입니다. 플롯 구성부터 감동 전달방식이 상투적일 뿐 아니라 몇몇 의도적인 장치는 눈에 거슬립니다. 다소 억지스럽고 그래서 신파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영화가 따듯한 대중영화로 (특히 여성) 관객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몇 가지 미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미덕은 합창대회와 사형집행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실상 노래와 가장 거리가 먼 감옥에서 죄수라는 이름의 엄마들이 합창하는 노래는 다양한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나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마음은 한국적 정서에서 무엇에 견주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울림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여인들이 마침내 가족들 앞에 서서 부르는 노래는 모성애라는 화음으로 빚어진 조화로운 '노래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화는 두 가지 화두를 던집니다. 먼저, 어떤 죄를 저질러도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줄 사람은 바로 '어머니'와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영화가 남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상처 입은 엄마들이 서로 보듬으며 합창단을 구성해 감옥 안에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키는 한편 감옥 밖의 파괴된 가족을 노래를 매개로 복원해 내는 과정을 절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성애라는 조화로운 화음으로 감옥 안에서조차 가족을 지켜 내려는 엄마들에 이르러서 관객들은 기어코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으며, '찔레꽃'보다 질긴 모성애로 엄마들이 부르는 한 맺힌 노래는 그 어떤 대사보다도 강렬하게 감성을 파고듭니다.

보고파도 다시 볼 수 없어 "밤마다 보는 하얀 엄마 꿈"

재소자들의 엄마인 문옥이 사형집행을 당하자 정혜는 "엄마"를 터트리며 통곡하고, 감방 안의 모든 이들이 '찔레꽃'을 합창하며 사형제의 부당함에 맞선다. ⓒ CJ 엔터테인먼트



두 번째는 영화 <집행자>의 여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제입니다. 합창단이 꾸려지면서 영화는 엄마들의 톤으로 '찔레꽃', '세노야',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그대 있는 곳까지', '솔베이지의 노래' 등 구슬픈 노랫말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노랫말 끝에 사형제 폐지의 감동이 밀어닥칩니다. 

영화는 사형제 폐지를 관철하기 위한 그간의 논리와 신념에 비어 있던 한 대목, 즉 사형제 폐지에 선뜻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을 제공합니다. 합창대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 온 어느 날, 사형집행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 대상은 사형수 문옥. 합창단의 지휘자이자 '엄마들의 엄마'였던 그녀는 형장으로 향합니다. 

문옥을 늘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정혜가 문옥을 꼭 껴안고 "엄마, 엄마아~"를 토해내는 장면과 복도 양쪽에 늘어선 감방에서 울음인지, 노래인지 모를 소리로 형장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정혜를 따라 모든 엄마들이 '찔레꽃'을 합창하는 장면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도 설득력 있고 감동적입니다. 

모든 한과 설움과 외로움과 고통이 모여 꽃을 피운다는 '찔레꽃'처럼 한 송이 어여쁜 꽃이었다 모질게 꺾인 엄마들이, 문옥을 향해 부르는 '찔레꽃'은 불러도 대답 없는 남편들이며, 보고파도 더는 볼 수 없는 엄마이며, 기다림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 가족이며, 그리고 감옥 안에서 어렵게 둥지를 튼 엄마들의 가족을 파괴하는 사형제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하모니를 이루는 여인들.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난 죄로 이중 삼중의 고통과 상처를 감수해야 했던 엄마들. 찔레꽃처럼 질기디 질긴 그녀들의 따듯한 <하모니> 속에, 어려운 이들과 새해 복 나누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2010년작, 강대규 감독, 상영 중, 12세 이상 관람가).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주 /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 주 / 내 친구가 날 찾아도 엄마 엄마 울지마 //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 기럭기럭 기러기 날러갑니다 / 가도 가도 끝도 없는 넓은 하늘을 / 엄마 엄마 찾으며 날라갑니다 //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 시골집 뒷산길이 어두워질 때 /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이연실의 '찔레꽃'에서)"

하모니 사형제 재소자의 인권 김윤진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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