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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당신들이 더 무서워

영화 <트루먼 쇼>를 통해 본 연예산업의 '인간 상품화'

09.03.23 13:27최종업데이트09.03.2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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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는 기상천외한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트루먼이란 '인간 상품'의 인생을 통하여 우리네 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다.ⓒ 파라마운트

그 사나이의 이름은 트루먼 버뱅크. '씨 헤이븐'이라는 작은 마을에 산다. 보험회사에서 봉급쟁이로 일하면서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메릴이란 예쁜 여인과 결혼도 했고, 죽마고우 말론과는 가끔씩 맥주를 홀짝이며 어울리곤 한다.

서른이 다 될 때까지 자기 인생에 만족하며 마을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을이 바다로 빙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익사하는 걸 목도한 뒤로 트루먼은 물이라면 아주 벌벌 떤다. 어쨌든 트루먼은 꽤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새장 속의 새처럼 말이다.

그러나 실상 트루먼은 만인의 슈퍼스타다. 그는 전 세계에 24시간 생방송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은 쇼를 위한 거대한 스튜디오며 트루먼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배우로서 자기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가족부터 길거리 신문팔이까지 그의 인간관계는 모두 가짜다. 트루먼 쇼는 한 인간의 인생을 찍는 몰래 카메라다. 그러나 정작 트루먼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코미디의 탈을 쓰고 흥겨워하지만 <트루먼 쇼>는 연예산업을 피멍이 들도록 꼬집는다. 우습게도 이름은 트루먼(Truman)이지만 그의 인생에 진실(True)이란 아무것도 없다. 인생 자체가 거짓이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트루먼의 인생을 몽땅 빼앗아 버리고야 만다. 트루먼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다. 스타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사회를 <트루먼 쇼>를 통하여 읽는다.

보고 싶어! 더 많이 보고 싶어!

1998년 개봉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트루먼쇼> 이야기다.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 영화 속에는 현재의 우리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시청자들의 눈을 텔레비전에 붙잡아 놓는 것은 관음증적 욕망이다. 트루먼의 가장 은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사람들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를 위해서 화장실 거울부터 자동차 안쪽까지 카메라와 도청기가 설치된다.

물론 트루먼의 의사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발 빠르게 이를 이용해 돈을 벌어들인다. 현실과 닮았다. 스타의 사생활 침해 보도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애는 물론이고, 가족, 과거사를 캐고, 심지어는 집안까지 따라가 셔터를 찰칵 누르곤 한다.

특히 성형수술 이야기는 두고두고 질겅질겅 씹기 좋은 안주거리다. 아마 잘 나간다는 연예인 치고 성형수술 이야기가 안 나온 이가 없을 테다. 최근 가수 아이비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사진이 스포츠 신문에 실렸고, 이효리는 수영복 차림이 찍혔다. 배우 이영애는 집안이 도둑 촬영되었고 전지현은 휴대전화가 불법 복제를 당했다.

욕망을 이용하는 돈벌이는 처음 스캔들 소문 수준에서 이제 파파라치 혹은 스토커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도 대중의 욕망은 점점 확장되며 스타의 일상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간혹 '스타'는 '공인'이란 변명으로 사생활 침해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까지 보인다.

"모코코아는 백 퍼센트 카카오만 씁니다"

트루먼의 일거수 일투족은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서른까지 모든 일상을 모든 시청자들이 훔쳐보았다.ⓒ 파라마운트


다시 영화로 돌아가, 결국 트루먼은 자기 인생이 '고장났다'는 걸 눈치 챈다. 이 때문에 트루먼과 메릴은 말다툼을 한다. 열불을 내는 트루먼을 보고 메릴이 말한다. "당신 때문에 무서워 죽겠어요." 그러다 갑자기 메릴은 하던 말을 뚝 그치더니 딱딱하게 웃으며 '모코코아' 상표의 코코아 통을 집어든다. "모코코아는 백 퍼센트 카카오만 쓰고 인공 조미료는 쓰지 않아요." 지금은 광고 시간.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다. 트루먼은 어안이 벙벙하여 겨우 대꾸한다.

"당신이 더 무서워."

친한 친구 말론은 맥주를 마시다 말고 맥주캔을 들어 올리며 '씨익' 멋진 미소를 날린다. 트루먼 쇼는 24시간 생방송이기 때문에 도중에 배우가 끼어들어 광고를 하고 있다. 바로 드라마나 영화 속에 종종 들어가는 간접 광고다.

사람들은 트루먼의 아내 메릴이 광고한 코코아를 마실 테다. 인간의 인생이 방송 스폰서들을 위하여 포장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트루먼 쇼는 대중의 욕망과 자본의 욕망이 작당하여 만든 지상 최대의 속임수다.

트루먼 쇼 방송 제작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이 사는 (가짜)마을 '씨 헤이븐'을 "천국"이라 부른다. 그가 말한다.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 할 것이 없어." 진심이다.

크리스토프와 시청자들은 그걸로 트루먼 쇼를 정당화하고, 트루먼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크리스토프의 말대로 트루먼의 인생은 아름답고 행복하다. 만인에게 사랑받는 슈퍼스타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이지 인간적인 인생은 아니다. 트루먼은 '인간 상품'이다. 트루먼에게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유나 존엄이 없다. 실로 완전한 사육이라 할 만하다. 제작진은 시청률을 위해서 익사했던 아버지까지 다시 데려와 트루먼과 감동적인 포옹을 연출한다.

"보고 싶었다, 아들아."

트루먼은 엉엉 울고 트루먼 쇼 시청자들도 흐르는 눈물을 찍어낸다. 그러나 영화 바깥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나는 오싹하여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 얼마나 사악한 눈물이란 말이냐.

그리하여 트루먼은 떠난다. 거짓에서 진실로. 가짜 세상 씨 헤이븐을 탈출하여 빼앗긴 진실을, 자유를, 존엄을 되찾으려 한다. 오만가지 고난과 역경 끝에 비상구 앞에 다다른 트루먼. 그에게 크리스토프가 질문을 던진다. 진실된 세상은 더럽고 추악하다고. 여기가 거짓된 곳이라고 해도 꿈결처럼 완벽한 행복을 버리고 갈 수 있겠냐고. 그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험을 할 용기가 있냐고. 트루먼이 대답한다.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이제 뭘 보지? 채널 좀 돌려 봐

"이제 못 볼 지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 트루먼은 결국 '씨 헤이븐'을 탈출하여 진실된 인생을 되찾는다. 그러나 현실의 스타에게는 탈출구가 없다.ⓒ 파라마운트


끝내 트루먼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으로 거듭났다. 허나 영화 바깥 현실은 이보다 더욱 냉혹하다. 트루먼은 탈출구라도 있었지, 현실의 스타들은 죽음으로 탈출하고 있다. 연예산업이 인간의 존엄을 파괴함은 자본과 언론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의 공모로 이루어진다. 공모자들은 이를 방관하거나, 혹은 동조하고, 오락거리로 즐겼다. 현실에서 잇따르고 있는 스타들의 자살 행진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트루먼의 탈출을 보고 트루먼 쇼 시청자들은 감동하고 환호한다. 우와! 트루먼이 진실을 찾았어! 그렇게 쇼는 끝났다. 하지만 트루먼을 맞으러 가는 사람은 실비아 혼자다. 나머지 사람들은 벌써 트루먼에게 관심이 없다. 결국 트루먼 탈출기 또한 오락거리였다는 것이다. 어떤 이가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채널을 돌리며 중얼댄다.

"이제 뭘 보지?"

혹시 당신도 다른 오락거리를 찾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자칫 또 어떤 이를 현실의 '트루먼 쇼'로 몰아넣지는 않을까 생각하면 실로 끔찍한 심정이다.

트루먼 쇼 연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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