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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새로운 선택'

기존의 팀 컬러를 버린 새로운 시애틀의 선택, 과연 그 결과는?

04.12.30 21:56최종업데이트04.12.3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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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은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한해였다. 2000년 91승 71패, 2001년 116승 46패를 거두며 승승장구했고 2002년과 2003년에도 특유의 끈끈한 팀 컬러를 십분 살리며 치열한 순위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90승 이상을 거둬왔었다. 2004년도 시애틀은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바톨로 콜론등을 보강한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함께 강력한 지구우승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중심타자였던 존 올러루드, 에드가 마르티네즈, 브렛 분은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급격한 하강세를 그렸으며, 그 뒤를 받쳐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스캇 스피지오와 리치 오릴리아 모두 실망스런 활약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았을 뿐이었다.

투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에이스였던 프레디 가르시아는 팀 성적이 부진의 늪으로 빠지자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되었고, 불혹의 나이에 20승을 거두며 대활약한 제이미 모이어는 올해 7승 13패 방어율 5.21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으며 젊은 피라 할 수 있는 길 메쉬나 조엘 피네이로도 만족스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가즈히로 사사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마무리 에디 과다도도 시즌 내내 삐그덕 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연발하더니 결국 부상으로 시즌 중반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스즈키 이치로의 시즌 최다안타기록 경신 이외에 시애틀에 기쁨이 될 만한 뉴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빨리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한번 서부지구의 강자로 거듭나야 할 시애틀에게 있어 '와신상담' 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밥 멜빈 감독을 해고하고 1990년대 후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전성기를 이끈 마이크 하그로브를 새 감독으로 모셨다.

이에 발맞춰 화끈한 공격야구를 구사하는 하그로브 감독의 스타일에 맞게 시애틀은 1루수 리치 섹슨을 4년간 5,000만달러에 영입했고, 올시즌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3루수 애드리안 벨트레도 5년간 6,400만달러에 모셔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시애틀은 좌타 거포 보강을 위해 카를로스 델가도를 노리고 있으며 가르시아가 빠져나간 에이스 자리를 메꾸기 위해 벨트레와 올시즌 LA 다저스에서 같이 뛰었던 오달리스 페레즈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각 팀이 군침을 흘리던 대형타자 두 명을 즉시 보강하며 기존의 노장 중심 타자들의 공백을 완벽히 메운 시애틀은 이번 스토브리그를 가장 알차게 보내고 있는 팀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애틀의 행보가 마냥 장밋빛이라 보기도 힘들다. 이번 시애틀의 전력보강은 단순한 전력보강이 아닌, 최근 보여주었던 팀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는 '개혁' 의 성격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선택에는 위험부담이 따르는 법이고, 더욱이 이것이 시애틀이 어렵게 발견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버리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시애틀은 투타가 균형을 이루고 있고, 끈끈한 팀워크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는 팀 플레이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1990년대 중반과 후반만 해도 시애틀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격의 팀이었다.

켄 그리피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 뷰너, 에드가 마르티네스, 티노 마르티네스, 폴 소렌토와 같은 한시대를 풍미한 강타자들은 모두 시애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들이었다. 랜디 존슨이라는 걸출한 에이스가 있었지만 그보다 화끈한 타력을 앞세워 그들은 1995년과 1997년에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하지만 타력의 팀 시애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999년 후반기부터 시애틀은 기존의 킹돔을 버리고 새로운 야구장 세이프코 필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야구장은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데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인해 투수에게 유리한 면이 많았다.

시애틀 타자들의 전체적인 타격성적은 떨어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그리피는 노골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해 시애틀은 그를 신시내티 레즈로 보내버렸다. 홈런 개수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로드리게스도 FA가 되어 시애틀과 협상을 벌일 때 홈구장의 펜스를 앞으로 당겨줄 것을 요구하는 등 강타자들에게 세이프코 필드는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가뜩이나 1998년과 1999년 연속으로 5할 승률을 넘기지 못해 애가 탔던 시애틀은 강타자마저 그들을 외면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나 시애틀은 아주 쉽게 이 위기를 넘겼다. 홈런을 40개 이상 때려줄 수 있는 타자들은 모두 팀을 떠났지만 그 대신 시애틀은 라인업을 정교한 타력 내지는 안정된 수비, 팀 플레이 소화능력이 뛰어난 선수들로 채워 팀 스타일을 바꿨다.

리더인 에드가 마르티네스를 비롯해 이치로, 올러루드, 브렛 분, 카를로스 기옌, 데이빗 벨은 그 조건을 십분 만족해 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여기에 가르시아와 모이어를 필두로 하는 뛰어난 선발진과 제프 넬슨, 아서 로즈, 사사키로 이어지는 강력한 불펜진이 조화를 이루며 시애틀은 매 경기 승승장구했고 그들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주위의 예상과는 달리 지구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2000년)에 새로운 구장을 오픈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1999년 97승에서 이듬해 72승으로 급전직하하며 뼈아픈 적응의 시기를 거쳐야 했던 것과 다르게 구장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팀을 새롭게 디자인한 시애틀은 오히려 1999년 79승에서 2000년 91승, 2001년 116승으로 상승세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 시애틀이 스토브리그에서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최근 몇 년간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그들이 오클랜드와 애너하임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지구 최강의 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계속 이어나가는 모습과 상반된, 1990년대 중반 내지는 후반으로의 회귀를 생각나게 한다.

페레즈의 영입가능성이 높다고 하나 아직까지 계약서에 도장은 찍지 못했으며 그 외 다른 선발투수나 구원투수에 대한 영입이 전혀 없고 만일 영입이 이뤄진다 해도 전력을 크게 향상시켜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같은 지구의 애너하임과 텍사스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타선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의 시애틀 투수진이 이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또한 시애틀 타자들이 홈경기보다 원정경기 타격 성적이 더 좋음을 감안할 때 벨트레나 섹슨 또는 델가도의 파워가 과연 시애틀의 기대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피와 로드리게스의 전례를 시애틀은 벌써 잊어버린 것일까? 그들의 활발한 스토브리그 뒤에는 이런 어두운 면도 숨겨져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애틀은 2005년 새로운 기로에 섰다. 그들은 몇 년간 그들에게 영광을 안겨주었던 것들을 모두 버린채 전혀 다른 스타일의 감독과 선수들로 2005년을 꾸려 나가려고 한다.

스토브리그에서의 행보가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성적만이 말해줄 뿐 지금 시점에서 왈가왈부를 논하기는 힘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이 큰 위험부담을 안고 2005시즌을 맞이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거액을 들이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라 불리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새로운 승부수를 던진 시애틀, 그들의 '새로운 선택' 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2004-12-31 10:2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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