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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에도 그분이 계셔야 해요"
인산인해 이룬 광화문 월드컵 축제

02.07.02 22:38최종업데이트02.07.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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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 네거리에 내걸린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 선수들의 대형 사진앞에서 시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권우성
“아니 지성이가 그렇게 잘 팔려? 다 팔렸대. 그럼 홍명보 있나?”
“이게 막장이에요. 운이 좋으시네요.”


월드컵 성공 국민대축제가 있던 광화문 거리의 한 캐릭터 스티커 노점. 주부 이주경(48·도봉동)씨는 홍명보 선수의 캐릭터가 들어간 스티커를 두 손 위에 놓은 채 보고 또 본다. 보기도 아까운 듯 들여다 보는 모양새가 10대 소녀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유. 이뻐. 그냥 다 이뻐.” 이씨와 함께 “일부러 빨간 옷을 입고 선수들을 보러” 나왔다는 여동생 이주영(46)씨도 주섬주섬 가방 속에서 스티커들을 꺼낸다. “난 천수 것도 사고 지성이 것도 샀어. 다 좋아. 다 사고 싶어.”

▲ 서울시청앞에서 히딩크 감독과 정몽준 축구협회장이 시민들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권우성
온 국민을 팬으로 만든 대표팀 선수들. 그들이 드디어 2일 붉은악마들과 해후했다. 대표팀 카퍼레이드 행렬이 광화문에 도착하기 약 네시간 전부터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 그들의 표정은 감격 그 자체였다.

거리응원때와 달라진 점은 많은 시민이 응원 머플러와 태극기 대신 휴대용 캠코더나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는 것. 바로 “일생에 한번 뿐인 오늘을 기억해 놓기 위해서”다.

월드컵 기간내내 전국의 경기장을 돌며 티셔츠 노점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최창희(35·보광동)씨도 연인과 함께 캠코더로 이날의 느낌을 기록해두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맘껏 즐겨야죠. 일생에 한번 뿐일 날인데. 이 테이프 대대손손 물릴 거예요.”

- 선수들 직접 보면 어떨 것 같아요?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을 것 같아요. 아마 그럴 걸요. 지금 테이프도 선수들 찍으려고 아끼고 있는데요. 날씨요? 이렇게 좋은데 날씨 때문에 짜증날 리가 없죠.”

- 월드컵이 어떤 의미였나요?
"한달 동안 경기장을 돌았는데 절대 잊을 수 없죠. 이 캠코더도 그때 번 돈으로 산 거고요. ”

미소가 사라질 것 같지 않은 그 표정에 ‘행복’, 두 글자가 떠올랐다.

대표팀 선수들의 카퍼레이드는 예정시각보다 늦어지고 있었지만 광화문의 시민들은 내내 설레여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했다. 엄마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어린이들도 거리 곳곳에 설치된 멀티비전을 가리키며 “어, 이운재, 이운재야”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축제의 장에 노년의 부부도 예외일 수 없다. 길 곁에서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을 바라보던 임관민(74·상도동)씨와 남편 선우예환(79·상도동)씨는 연신 흐뭇한 표정이다.

“아, 내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생전 이런 기분은 처음이지.”한 손엔 지팡이를, 한 손엔 번데기를 들고 “이런 걸 내가 또 언제 보겠냐”며 “집에 있으려다 나오길 참 잘했다”고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었다.

▲ 2일 저녁 차없는 세종로 거리를 시민들이 가득 메운 가운데 월드컵 4강을 축하하는 국민대축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선수들의 이름과 이들에 대한 ‘러브메시지’가 담긴 카드들 속에서 ‘의미있는’ 플래카드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서포터즈 대표자 협의회 회원 30여명은 이날 “일천만의 도시 서울에 시민의 힘으로 프로 축구단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민들 사이사이를 누볐다. “월드컵의 열기를 서울시민구단 창단으로 잇기 위해 오늘만큼 홍보하기 좋은 날은 없다”는 게 박의규(23) 회원의 설명.

그런가 하면 이색시위자도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올라왔다는 한 노신사는 세종로 한 가운데에 빨간 두건으로 입을 가린 채 등쪽에는 태극기를 배쪽에는 ‘호소문’을 걸고 서 있었다. “그 누가 좀 붙잡아 주세요”로 시작하는 호소문은 바로 히딩크 감독에 대한 러브레터이자 그를 잡기 위한 간곡한 바람을 담은 글.

“온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열망을 모아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우리들의 우상인 히딩크 감독을 모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게 주요내용이다.

“내용도 직접 쓰고 돈까지 들여 걸개를 만들었어요. 감독님 가면 정말 안돼요. 4년 후까지는 그분이 계셔야 해요. 우리의 진심을 전달하면 그분은 아마 남으실 거예요.”노신사의 눈빛은 간곡했다.

이날 행사에서 대표팀 선수들과 히딩크 감독은 체육훈장을 받았다. 또한 히딩크 감독에게는 대한민국 명예국민증이 전달됐다. 그리고 시민들은 다시한번 ‘대∼한민국’을 외치며 이날의 감동을 저마다의 기억 속에 고이 담아놓고 있었다.
2002-07-02 22:4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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