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MBC

 
"2010년대 한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가 정말 힘들다, 너무 고달프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경제적 약자들이 그냥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인간적인 처지에 몰리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살기 어려운 처지에 몰립니다. (중략) 저는 한국 사회가 이 상태로 한 세대를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 가치는?'편에 패널로 참여한 작가 장강명씨의 지적처럼 비정규직, 저소득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너무나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다. '농사지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며 딸과 아들을 도시로 내몬 지 어느덧 40여 년이 됐다. 그들은 벌써 중년층이 돼 '도시 서민', '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도시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무엇으로 다음 세대를 기약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날 토론 주제는 노동 불평등 문제였다. 김지윤 박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 패널로는 < 88만원 세대 >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자와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장강명 작가가 나섰다.

400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닥친 청천벽력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MBC



최근 2020년 최저임금이 2019년 대비 2.9% 오른 8590원으로 정해졌다. IMF 금융위기 때인 1998년 2.7%,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75% 이후 가장 낮은 인상폭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도 사실상 이행이 불가능해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는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폐기한 것이며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인상이 아니라 인하라고 반발했다. 서둘러 문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나섰지만, 최저임금을 받고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400만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노동 가치를 또 한 번 시궁창에 빠뜨리는, 악몽이 아닐 수 없다.

1% 자본가들에게 연봉과 스톡옵션, 주식이 자본 권력의 가치이듯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노동의 가치이자 노동을 평가하는 척도다. 이런 최저임금은 해마다 노사를 대표하는 공익위원들의 줄다리기 속에서 정부 측 공익위원들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왔다. 이날 우석훈 경제학자는 국회에서 논의를 가져가 국민적이고 상설적인 토론을 진행해 정치적인 타협점을 찾는 방법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문제가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국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다수당이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소수당의 발목잡기에 논의가 멈춘다면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주희 교수의 주장처럼 작년에 급격한 인금인상을 이유로 복리후생비 등의 항목을 산입범위에 넣었는데,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그나마 현실성 있는 대안이 아닐까 생각된다. 2019년 산입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최저임금 개정안은 전년 대비 16.4%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사측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권의 선택이었다. 이 개정안 때문에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하지만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드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2008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최저임금 인상을 되돌릴 수 없다면 산입범위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은 것을 정치권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12년 전보다 오히려 더 추락한 88만원 세대의 삶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MBC



'88만원 세대'의 삶은 그 책이 나왔던 12년 전보다 오히려 추락했다. 66만 원 세대라고도 하고 N포 세대, 3포 세대라는 말로 절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날 토론에선 세대의 갈등이 주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88만원 세대' 저자가 주장했던 '386세대의 권력과 일자리 독점이 청년 세대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논리에 대해 이주희 교수는 세대 갈등론이 노동 소외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장경명 작가 역시 386세대가 불평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환경의 변화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세대 갈등론이 사회 현상을 진단하는 새로운 접근법이었음은 분명하지만 386세대라고 일컬어지는 40,50대의 빈곤과 청년 세대의 절망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386세대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환경은 급속한 변화를 겪어 왔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 인턴, 파견직이라는 새로운 고용제도가 생겨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정부에 제시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은 외환위기가 끝나고서도 기업과 정치권력에 의해 계속 확대되고 재생산되어 왔다. 비정규직 400만 시대,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가 한국 노동시장의 지배질서가 된 건 정치는 1987년 체제, 경제는 1997년 체제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의 가치는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에 따라 신장되지 않고 오히려 추락의 길을 걸어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수출기업 중심 경제 정책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소득주도 성장론이 힘을 잃으면서 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여기에 4차 산업이 기업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표방되고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모양새가 된 뒤로 노동의 소외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배달대행업, 대리운전앱, 우버택시 등이 새로운 노동시장을 형성하면서 기존 노동자의 생존권과 대립하고 플랫폼 노동자의 삶의 질도 하락하고 있다.

4차 산업, 모두에게 축복이려면 나눔을 고민해야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 100분 토론 > '당신의 노동의 가치는?'의 한 장면. 이날 패널로는 우석훈 경제학자, 이주희 교수, 장강명 작가가 참여했다.ⓒ MBC



이날 토론에 나선 패널들은 모두 추락하는 노동 가치에 우려를 나타났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개선한다든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4차 산업 시기의 노동 가치에 대해서는 조금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우석훈 경제학자의 경우 산업혁명 시기에도 일부의 직업이 도태되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났다며 4차 산업도 우려보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이에 반해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4차 산업 시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 생존권 보호에 나서야 된다"며 "전면적인 기본소득 논의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강명 작가는 우리 사회의 갈등 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했다. 개인이나 사회, 정부 모두가 갈등을 조정하고 치유할 능력을 키워야만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노동의 가치'라는 큰 개념을 앞세우고 최저임금, 세대갈등, 4차 산업까지 다루다보니 토론이 좀 산만했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심사숙고해서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다. 4차 산업만 하더라도 기업에게 개발 동력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무게로 노동 소외 현상에 대비하지 않으면, 기업과 부자들에게는 황금알을 안길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흉물'이 될 수 있다.

노동의 가치는 사람의 가치다. 나라가 나라다우려면 노동이 제값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그게 4차 산업 시기 모든 국민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 인간의 예의다. 우석훈 경제학자의 인간의 예의, 이주희 교수의 기본소득 논의, 장강명 작가의 갈등 조정 능력, 모두가 노동 가치에 대한 우려이고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제들이 사회적인 논의들로 발전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다음 세대가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4차 산업을 서두르는 것만큼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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