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시아버지의 제사 준비를 위해 시가(媤家)를 방문하는 며느리 안혜상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애초에 시가족들과 종교가 다른 혜상은 결혼 전만 해도 제사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제사 자체가 너무 어색해, 솔직히"라는 혜상의 말처럼 애초부터 고민의 범위가 아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규택과 결혼한 뒤부터 제사는 눈앞의 현실이 됐고, 제사 준비는 그의 몫이 됐다. "나는 정말 너무 걱정된다, 시작부터." 혜상은 걱정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정작 남편 남규택은 천하태평이었다. 또, 눈치마저 없었다. "어차피 엄마가 재료 준비 다 해주고 당신은 뒤집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면서 하나 둘씩 배우는 거지"라며 아내의 속을 뒤집었다. 규택은 평생 제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도 됐을 혜상을 그 굴레 안으로 끌어들인 당사자이면서도 일말의 미안함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규택은 제사 준비에 있어 노동의 대상을 이미 다 정해두고 있었다. 그건 '엄마'와 아내'였다. 

설마설마 했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시가에 도착한 혜상은 곧바로 시어머니와 장을 보러 가야 했다. 힘들게 장을 보고 돌아와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낑낑댔지만, 남자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장을 보는 동안에 남자들이 한 일이라고는 낮잠과 게임, TV 시청이었다. 제기(祭器)를 닦았다지만, 일을 했다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럼 장 좀 같이 봐주지." 혜상의 볼멘소리가 공허하게 집 안을 맴돌았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혜상은 집에 오자마자 일하기 편한 옷으로 환복했고, 시어머니가 준비한 앞치마를 입고 본격적인 제사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바쁜 건 시어머니와 며느리뿐이었다. 반면, 남자들은 한가롭게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텔레비전 앞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집어먹을 때를 제외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불합리한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그 풍경이 규택의 집에선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규택의 집만의 문제일까. 우리의 명절이나 제삿날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음식 준비는 여자의 몫인 경우가 대다수다. 떠올려보면 고미호의 경우(31회)도 마찬가지였다. 설 명절을 맞아 시가를 찾았던 미호는 시어머니와 함께 제사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런데 남자들(시아버니, 시숙부, 남편)은 말로는 제사가 급하다면서도 거실에 앉아서 TV만 쳐다보고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남자들이 명절이나 제삿날 전을 부쳤다는 내용의 기사가 '미담'처럼 소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잠깐동안 전을 부치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고 개념있는 남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 아닌가. 정작 안타까운 건 그 불합리한 (가족 문화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혜상의 시조카들이 '제사 음식은 여자들이 하는 거야'라는 잘못된 생각을 답습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생각은 현실에 빌붙어 자라기 마련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한 장면ⓒ MBC

 
"어머니 그런데요. 제사도 중요한데, 우리 이렇게 만나는 날이 별로 없잖아요.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쉴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잖아요. 이렇게 모일 때 가족들끼리 여행도 가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요?"

혜상은 조심스럽게 시어머니에게 제안을 건넸다. 가족과 좀더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단박에 커트 당하고 만다. "그건 네가 놀기 위한 거고. (제사는) 1년에 한 번인데." 혜상은 "아버님 제사를 안 드리겠다는 게 아니에요"라고 설명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규택이 시어머니의 편을 들고 나섰다. 아내의 편을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훈장 노릇까지 하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정작 본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시어머니보다 더 완강한 남편이라니, 혜상은 그런 규택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러자 규택은 "화면 보니까 좀 미안하네요"라고 말해 헛웃음을 자아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제사까지 감당하겠다고 마음 먹은 아내에게,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내몰려 몸도 마음도 지쳤던 아내에게, '좀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이라니. 과연 규택은 달라질 수 있을까? 변화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그는 아직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이 규택만의 문제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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