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47> 영화 포스터

▲ <블랙 47>영화 포스터ⓒ 씨네라인월드(주)


영국군에 입대하여 참전한 아일랜드 출신의 군인 마틴(제임스 프레체빌 분)이 탈영 후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일랜드를 덮친 대기근으로 고향은 황폐하게 변했고, 가족은 영국인에 의해 이미 목숨을 잃었거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분노한 마틴은 가족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가 복수를 벌인다.

아일랜드의 경찰서가 습격당하는 사건을 접한 영국에선 용의자 마틴을 잡기 위해 심문 중 죄수를 살해한 혐의로 수감 중이었던 경감 한나(휴고 위빙 분)를 가석방한다. 추적에 능한 한나는 냉정한 대위 포프(프레디 폭스 분), 어린 군인 홉슨(베리 케오간 분)과 함께 현지에 사는 아일랜드인 코닐리(스티븐 레아 분)의 안내를 받아 마틴을 쫓기 시작한다.

영화 <블랙 47>은 전쟁터에서 간신히 도망친 아일랜드 출신 탈영병이 영국인의 무자비한 탄압에 신음하는 고향의 비참한 현실을 마주한 후 벌이는 복수극을 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P.J. 딜런 감독이 2008년에 발표한 10분짜리 단편 영화 < An Range r>(※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를 바탕으로 한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군인이 대기근을 목격하고 영국인의 억압에 분개하는 단편의 내용은 <블랙 47>의 초반부에 오롯이 담겨 있다. 장편으로 확장한 <블랙 47>에 P.J. 딜런은 각본과 기획으로 참여했다. 메가폰은 <키세스>(2008), <굿닥터>(2011), <인생의 미풍>(2013)을 연출한 아일랜드 출신의 감독 랜스 데일리가 잡았다.

자연재해에서 시작된 깊은 상처
 
<블랙 47>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47>영화의 한 장면ⓒ 씨네라인월드(주)


제목 <블랙 47>은 영화의 시간적인 배경인 1847년을 일컫는다. 당시 아일랜드는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일어난 대기근에 시달렸다. 1845년에 발생한 대기근으로 인해 기아와 열병으로 100만 명이 사망하고 영국이나 미국으로 100만 명이 이주하며 수년 만에 아일랜드 인구는 4분의 1이 줄었다.

대기근 자체는 자연재해였지만, 영국의 정책은 상황을 악화시켜 아일랜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품은 한은 독립 의지가 되어 페니어회 결성, 아일랜드 공화단과 아일랜드 공화군 조직, 아일랜드 독립 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아일랜드 출신 배우 스티븐 레아는 제68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블랙 47>이 상영했을 당시에 "(아일랜드 대기근은)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나 그동안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은 없었다. <블랙 47>은 아일랜드 대기근을 조명한 첫 번째 '아일랜드 영화'인 셈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대기근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블랙 47>은 아일랜드 대기근을 시간 배경으로 삼되 서부극의 무법자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복수 스릴러 형식을 취한다.
 
<블랙 47>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47>영화의 한 장면ⓒ 씨네라인월드(주)


<블랙 47>은 복수 스릴러 장르답게 '처단'의 쾌감이 살아있다. 영화의 초반부에 포프 대위는 성경의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를 언급하며 "아일랜드인의 술과 게으름이 대기근의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영화 중간엔 귀족 킬 마이클(짐 브로드벤트 분)와 아일랜드인 코닐리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킬이 "자네 (아일랜드) 농부들은 다 똑같아. (풍경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줄 몰라"라고 말하자 코닐리는 "아름다움이란 게 먹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겠죠"라고 대답한다. 포프와 킬의 말은 당시 아일랜드를 바라본 영국의 착취적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

마틴은 가족의 죽음에 관련된 귀족, 판사, 집행관, 경찰, 토지 관리인 등을 죽음으로 처단한다. 영국의 탄압과 착취에 맞서 죽음으로 정의를 실천하는 마틴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분노를 형상화한 것과 다름이 없다. 마틴은 영국을 향해 "내가 누굴 죽이면 살인이라 부르고, 저들이 죽이면 전쟁이라 부르죠. 아니면 신의 섭리나 정의"라고 고함친다.

<블랙 47>의 서사가 마틴의 복수로만 채워지진 않았다. 영화는 마틴을 추적하는 한나, 포프, 홉슨을 통하여 대기근으로 피폐한 삶, 차별과 혐오, 부조리로 가득한 사회 구조를 목격한다. 아일랜드의 상황을 접한 그들은 심리적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각자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처절한 사실성
 
<블랙 47> 영화의 한 장면

▲ <블랙 47>영화의 한 장면ⓒ 씨네라인월드(주)


또 다른 주인공은 '풍경'이다. 대부분의 색깔을 뺀 스크린 속 아일랜드는 거칠고 차가우며 황량하게 느껴진다. 인물의 얼굴 역시 창백하다. 영화의 제목이 나오는 순간은 아예 흑백으로 보여준다. '블랙'은 어둠으로 가득한 시대와 죽음이 드리워진 삶을 뜻하는 선택이다. 무채색의 풍경에서 영국군의 옷 색깔과 피가 보여주는 '빨강'은 한층 도드라진다.

<블랙 47>은 사실성을 추구한다. 대기근 등 풍경뿐만 아니라, 액션 시퀀스도 사실적이다. 영화엔 그 당시 총기인 머스킷 라이플이 나온다. 머스킷 라이플은 총구에 화약을 넣어 한 발씩 발사한다. 다시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한 발을 쏜 다음엔 칼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과 몸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날씨가 습하면 화약이 젖어 사용할 수 없다. 이런 특징들을 활용한 <블랙 47>의 액션 시퀀스는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요즘 액션 영화와는 다른 속도와 긴장감을 형성한다.

<블랙 47>은 복수와 추적으로 보면 익숙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대기근의 피해, 영국의 악랄한 지배, 아일랜드의 고통 등 시대상이 합쳐지면서 주목할 필요성이 있는 역사 드라마가 되었다. <마이클 콜린스>(1996), <블러디 선데이>(2002),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등 아일랜드와 영국을 다룬 작품들처럼 아일랜드 투쟁의 역사와 그들이 영국에 갖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교재로 손색이 없다. 아일랜드에선 역대 아일랜드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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