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노트북> 영화 포스터

<노트북> 영화 포스터ⓒ 글뫼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로맨스 영화를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의 영화들은 거스를 수 없는 운명, 비극적 결말과 함께 주인공들의 진실 된 사랑, 그 절절함과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2004년 개봉한 <노트북>은 첫사랑과 평생을 함께한 노년 부부의 '영화 같은' 사랑을 통해 비극적인 사건 없이도 관객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든다.

탄탄한 각본과 노련한 연출, 그리고 매력적인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는 스타 배우가 없었음에도 단지 입소문만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했고, 이 영화 이후로 두 주인공은 승승장구 하게 된다. 

캐나다 출신의 레이첼 맥아담스와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키마우스 클럽>쇼(브리트니 스피어스, 저스틴 팀버레이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팝 아이돌들이 이 쇼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다)를 통해 아역 때부터 활동한 라이언 고슬링은 성인이 된 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으며 가벼운 코미디 물에서 조연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레이첼 맥아담스의 존재감은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고지순한 순정 마초 노아와 사랑스럽고 명랑한 앨리에 완벽하게 부합한 이들은 관객이 온전히 두 캐릭터의 사랑, 첫사랑의 설렘과 풋풋함, 그리고 매 순간 서로에게 반응하는 뜨거움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게다가 이 영화를 통해 두 배우는 (지금은 헤어졌으나)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글뫼

 
1940년, 17살 노아(라이언 고슬링)는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별장으로 내려온 동갑내기 앨리(레이첼 맥아담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떠날 줄을 모르고,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다가가 데이트 신청을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의기소침해지기는커녕 더욱 무모하고 저돌적인 방법으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결국 앨리의 승낙을 받아낸다. 

첫 데이트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르게 빠져들고, 영화는 서로에게 취한 젊은 연인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의 모든 예쁜 순간들을 편집해 보여준다.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은 관객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그들의 매순간은 절로 미소 짓게 만들지만 이들의 사랑은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벽에 부딪히게 된다.

시간당 40센트를 버는 가난한 노동자 노아가 눈에 찰 리 없는 앨리의 재력가 부모가 앨리를 데리고 서둘러 도시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두 사람. 노아는 일 년 동안 매일, 전부 365통의 편지를 앨리에게 보내지만 중간에 편지를 가로챈 앨리의 엄마 때문에 노아는 그녀로부터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한다.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글뫼

 
첫사랑은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라 했던가! 서로의 소식을 모르는 채, 앨리는 대학생으로, 노아는 노동자, 그리고 군인으로, 각자의 일상에 적응해 나가며 서로의 존재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첫사랑은 이제 먼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앨리는 새로운 연인, 미남에다가 이해심이 넓고 유쾌하며 집안까지 좋은 론을 만나고,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와 축하 속에 그와의 결혼을 준비한다. 한편,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24살의 노아는 폐허가 된 저택을 구입해 언젠가 앨리와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집을 수리해나간다. 

약혼자 론과 다정하게 있는 앨리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노아. 그는 7년 전 겪었어야 했을 실연의 아픔을 그제야 느낀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그녀 하나인데, 예전에 자신을 향해 있던 그 미소가 다른 사람을 향해있는 것에 충격을 받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집 수리에 매진한다. 그렇다면 과연 앨리는 노아를 완전히 잊은 것일까? 신문에서 노아의 손끝에서 멋지게 변신한 저택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앨리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해버린다. 이성도 감성도 아닌 그녀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노아에게 반응한 것이다.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글뫼

 
앨리는 노아를 찾아간다. 7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어색하게, 터져 오르는 감정(그것이 원망이든 사랑이든)을 이성으로 꾹꾹 누르고, 그 동안의 소식들을 주고받는다. 심지어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관대한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가장 뜨거울 때 헤어졌던 두 사람의 감정은 거센 폭우와 함께 쏟아져 나오고, 서로를 향한 감정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제 앨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론과 함께라면 그녀는 평생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사랑 받으면서 살 것이다. 하지만 론은 노아가 아니다. 완벽한 론의 절대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노아를 향한 마음을 앨리는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한 편의 예쁜 동화와 같은 앨리와 노아의 사랑 이야기는 수십 년이 지나 어느 노인요양원에서 듀크(제임스 가너)가 치매환자 칼훈(지나 롤랜즈)에게 읽어주는 이야기로 다시 부활한다. 그녀는 듀크를 경계하면서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왠지 낯설지 만은 않은 앨리와 노아의 이야기는 기억을 잃은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결말에 다다랐을 때 앨리가 누구를 선택했을지 조바심이 나도록 궁금해 진다. 그제야 그녀는 이 이야기가 자신과 듀크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누구와도 나눌 수 있지만 추억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만의 것이다. 이 영화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영화 <노트북>의 한 장면ⓒ 글뫼

 
<노트북>은 죽는 날 까지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리의 수많은 사랑이야기,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며 감성을 자극한다. 식상하기 쉬운 장르와 주제지만 영화는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대신 정통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극과 극의 두 사람, 노아와 앨리는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자라온 환경도, 성격도 너무 달라 싸우기 일쑤지만 이들의 다름은 다툼 속에서도 서로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사랑을 키우는 촉매제가 되어준다. 또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는 영화 속, 두 캐릭터의 존재감은 이 영화의 큰 미덕 중 하나다.

회전 관람차에 매달려 데이트 신청을 하던 첫 만남에서부터 치매에 걸린 아내의 기억을 돕기 위해 매일 자신들의 이야기를 읊어주는 현재까지,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희생적인, 아무튼 로맨틱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노아의 노력은 여성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상형을 말해주면 내가 그 사람이 될게"라고 말하는 이 순정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를 통해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는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사랑스러운 앨리를 연기한 레이첼 맥아담스도 마찬가지다.

이들 두 배우가 인상적인 것은 <노트북>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택한 차기작이 <노트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스릴러- 레이첼 맥아담스는 <나이트 플라이트>, 라이언 고슬링은 <스테이>에 출연했다)라는 점이며 매번 새로운 장르, 새로운 캐릭터들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필모그래피는 시간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배우로서 이들의 스펙트럼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노트북>이 나온 지 15년이 지났으나 노아와 앨리의 사랑은 여전히 뭉클하고, 이들을 연기한 두 청춘 배우의 풋풋함은 더욱 빛이 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것이 배우의 소명일 것이지만 <노트북>과 같은 정통 멜로 영화에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커플을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마도 두 배우의 매우 큰 자산일 것이다.

추신.
노년의 앨리를 연기한 지나 롤랜즈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닉 카사베츠는 모자지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