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KBS

 
"27일 상황만 해도, 떠오르는 기억들이, 옆에서 쓰려져가는 동료들…"

어느새 말을 잇지 못한다. 눈을 감고는 미간을 만지작거리던 남자의 눈시울이 불거진다. 19살 나이였던 1980년 5월 27일, 양기남씨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한 32명의 광주 시민군 기동타격대원 중 한 명이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그를 '36번 광수', 북한 최고 인민위원회 2인자 최룡해로 지목했다.

"27일 새벽에 도청에서 살아서 체포됐다는 거… 죽음을 맞이할 걸 알았는데… 저희가 있던 방에도 몇 명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그의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감정의 정체일지 모른다. 계엄군에게 살해당한 시신 2구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시위대에 합류했다는 그는 계엄군에 체포되어 받은 고문의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평새 견디며 살아야했다.

당시 재수학원에 다니던 재수생은 어느 덧 환갑을 앞둔 장년이 됐다. 역시 지만원에 의해 황해남도 인민위원장 권춘학으로 지목받은 '184번 광수' 곽희성씨도 양기남씨와 같은 연배다.

24일 방송된 KBS1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편은 이렇게 5.18 민주화운동 왜곡세력에 의해 오늘까지도 고통 받고 있는 피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날 또 다른 초대손님(?)은 5.18 당시의 시민군과 피해자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가짜뉴스를 살포 중인 군사평론가 지만원과 5.18 왜곡세력이었다.

유령 아닌 실체, '광수'의 진짜 얼굴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KBS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KBS


"몇 번이시라고요?", "앞에 순서가 더 좋아요?", "전혀 못 알아보겠는데요?", "왼쪽이 본인이세요?"

진행자인 박미선과 이지혜가 연신 신기해하다 또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사진 속 주인공인 양기남씨와 곽희성씨도 씁쓸한 듯 쓴웃음을 짓는다. 지만원이 '과학적' 증거라고 제시한 사진 속 인물과 본인들의 얼굴이 "전혀 닮지 않았다"고 부인도 해 본다. "기가 막힌 이야기"라며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지만원의 이러한 주장을 철썩 같이 믿는 이들이 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 나섰던 '망언' 당사자인 자유한국당 이종명, 김순례 의원 같은 이들 말이다. <거리의 만찬>은 이 의원의 발언을 놓치지 않고 방송에 내보냈다. 유려한 편집, 맞다. 5.18 피해자들을, 유공자들을 "괴물 집단"으로 규정한 김 의원의 유명한 망언 외에도 이종명 의원의 이 발언 역시 역사에 길이 남겨야 할 망언이었으니.

"첨단 과학 동비를 동원해서 논리적으로 이게(5.18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걸 밝혀내야 합니다. 사진에 나온 사람이 북괴군이 아니라 '나다'라고 얘기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누구란 말입니까? 유령입니까?"

유령이라고? 이 의원과 같은 왜곡세력의 진의는 이 정도일 것이다. 유령의 뜻을 잘 못 알았거나, 유령 아닌 실체, 즉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이종명 의원이 꼭 한 번은 직접 만나야 할 사람들이 바로 곽희성씨나 양기남씨와 같은 시민군 생존자들이리라.

방송 중간, 제작진이 마련한 만찬인 주먹밥을 앞에 둔 양기남씨는 "(계엄군에게) 끌려가서 생활했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에…"라며 차마 음식을 입에 넣지 못했다. 순간 그가 떠올린 건 참혹했던 고문의 기억일 것이다. 

"그 항쟁 기간 구속됐던 기억들 때문에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합니다. 음식이라고 나오는 게 군용 스푼으로 한 세 스푼? 3개월 조사받다 (고문) 후유증으로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됐는데, 등 맨살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맞았으니까. 더 비참한 게요, 제가 군의관 차로 후송돼서 가요. 바깥 공기를 쐐서 몸이 너무 가벼워지니까, 속으로 '(몸이) 나으면 안 된다', '나으면 안 된다'."

오죽했으면 더 아프고 싶었을까. 지만원이, 이종명·김순례·김진태 의원이 과연 이들의 그러한 고통을 한 줌이라도 헤아려 봤을까. 함께 출연한 전남대 5.18 연구소 김희송 교수는 "이들은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에요, 생존자"라며 강조하며 이렇게 부연했다. '5.18 왜곡 방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참혹한 상황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은 분들을, 지금 왜곡세력들이 빨갱이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우리 사회가 상식적이라면 이 분들을 위로하고 어려운 국가폭력을 딛고 생존해 오셨는데, 왜곡세력들이 이 분들의 상처를 계속 헤집고 트라우마를 80년 그때로 돌아가게 만드는 거죠."

이날 <거리의 만찬>은 이렇게 지만원의 '북한군 침투설'을, 그 어이없는 주장을 전반적으로 반박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힘이 빠지고 어이없는 일일 수 있지만 그래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무논리', '비논리'로 무장한 세력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응이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배후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왜곡세력의 반역사적인 행태는 집요하고 질기다. 그 처벌의 길은 멀고도 지난하다. 지만원은 북한군 침투설을 담긴 책자를 외국어로 번역, 배포 중이다. 곽씨와 양씨 모두 지만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나긴 싸움을 버텨야 한다. 그 사이, 5.18을 향한 왜곡과 폄훼는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가는 중이다. 이날 방송이 유의미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용장씨와 다큐 <김군>,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지난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광수를 찾습니다' 한 장면.ⓒ KBS


"(광수로 지목된 피해자들이) 굉장히 억울하죠. 오죽하겠습니까. '광수'라는 것은 그야말로 거짓말, 페이크 뉴스고. 광주에 어떤 침투가 있었다,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 육군에) 보고할 가치도 없었던 거고요. 적어도 (북한군) 게릴라 600명이 침투했다면, 그건 선전 포고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 자체가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호언장담이다. 5·18 당시 미군 501정보여단 군사정보관의 단언이기에 더욱 신뢰가 간다. 이날 방송에 같이 출연한 김용장씨는 앞서 5.18 당시 전두환씨가 광주에 방문했다고 증언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김씨는 이날 방송에서 이렇게 지만원의 주장을 일축하는 동시에 자신이 왜 뒤늦게 증언에 나섰는가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김대중 정부가 '전두환 사면'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뉴질랜드로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났다는 김씨.

그는 5.18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끝까지 해결하리라는 믿음을 줬기에 증언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의 결단 역시도 하루 빨리, 되도록 이번 정권에서 '5.18 왜곡 방지법'을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 런지.

이렇게 <거리의 만찬>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5.18 왜곡세력의 논리를 반박하는 한편 또 다른 '광수'들의 증언을 듣는 한편 당사자들의 폭넓은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진행자인 양희은이 '5.18진실규명 및 역사왜곡대책위'가 90일 넘게 농성 중인 천막을 찾기도 했다. 이 모두가 가리키는 바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일 터.

방송 말미,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의 강상우 감독이 출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양기남씨가 직접 출연한 <김군>은 '39년 전 광주에서 사라진 한 청년의 행방을 추적하는' 영화로, 지만원의 '북한군 침투설'을 쫓고 반증하는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김군' 혹은 '광수'들의 '진실'을 담아냈다.  

당사자인 양씨도, 그 보다 훨씬 젊은 세대인 강 감독도 입을 모아 말한 것이 바로 5.18의 진실을 "많은, 젊은 세대"가 더 많이 알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체험하지 못한 세대, 학습하거나 교육받지 못한 개인일 수록 왜곡세력의 폄훼와 선동에 좀 더 노출될 수 있을 거란 근심 때문이리라. 

안타깝지만, 올바른 역사 교육이 자리 잡지 않는 한, 방지법이 법제화되지 않는 이상, 제 이익을 위해 기꺼이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세력들은 왜곡과 혐오, 선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또 수고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진실을 길어 올리는 일의 몫은 저들의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

올해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중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대목이다. 이날 <거리의 만찬>을 보며 이 기념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이러한 관점과 일치하는 <김군>과 같은 영화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거리의 만찬>과 같은 방송도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마지 않는다. 전두환과 지만원을 위시한 왜곡세력을 한 명 한 명 처벌하는 '현실'이 올 때까지. 아직,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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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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