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스튜디오 브로콜리


오랫동안 고민했던 이야기를 털어낸 모던 록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그들에게 '오랫동안'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어서, 무려 9년 만에 3집 정규앨범 <속물들>을 들고 돌아온 것이다. 사이사이에 싱글과 미니앨범을 다수 발표했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단절 없이 밀도 있게 눌러 담은 앨범을 기다린 이들에게, 9년은 긴긴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브로콜리너마저의 멤버 덕원(보컬/베이스), 류지(보컬/드럼), 잔디(키보드), 향기(기타)를 만나 공들여 만든 새 앨범 <속물들>에 관해서 이야기 나눴다.

가사 작업만 6년... 설명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 

타이틀곡은 앨범명과 동일한 '속물들'이다. 노랫말을 쓰는 덕원은 이 곡을 2010년에 썼지만 수정 과정에서 개운하게 풀리는 느낌이 들지 않아 계속 수정한 끝에 지금에서야 발표한다고 밝혔다.

'속물들'에 대해 그는 "어떤 일이 본업이 됐을 때 따르는 내적 모순들, 거기서 오는 나의 속물성에 대한 이야기"라며 "처음 음악을 할 땐 메시지가 뽀송뽀송하고 그늘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메시지에 그늘이 생기더라. 돈도 벌어야하고 생계가 달려 있는 상황에서 음악을 하면서 생겨나는 마음의 모순들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집에서 3집까지 오는 데 왜 9년이나 걸린 걸까.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물음에 덕원은 "2집 직후에 3집 작업을 시작했는데 정규앨범은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어야 하다 보니 가사를 다듬는 데 오래 걸렸다"며 "어떤 문장을 쓰느냐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되잖나. A다, B다 하고 딱 떨어지지 않게, 말로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를 표현하려 했다. 때문에 한정된 말 속에 의도한 의미를 명확하게 담기게 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애매하면서도 단호하게 표현되는 그 선을 정하기가 어려웠다"는 덕원은 9년 동안 가사가 아주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덕원 ⓒ 스튜디오 브로콜리


공을 살짝 덜 들이더라도 좀 더 자주 정규를 낼 생각은 없냐고 묻자 덕원은 "장단점이 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울릴 정도의 곡이면 유용할 것 같은데..."라고 덧붙였다.

이 질문에 향기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뭐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식으로 던지고 보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묶어서 정규앨범으로 낸다는 건 이런 이야기를, 이런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거니까 정규앨범을 낼 때 저희의 태도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저희가 잘 할 수 있는 음악은 말하는 이야기에 무게감이 분명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음악은 그렇다." (덕원)

"사람이 잘생기고 멋지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끌리는데 저희 밴드는 그런 부류는 아니잖나.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어야 귀 기울이지 않을까?" (향기)


단순한 단어들을 엮어 만든 안 단순한 이야기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잔디 ⓒ 스튜디오 브로콜리


이들의 가사는 단순하다. 겉으로 보이는 어휘가 그렇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엮이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하나도 단순하지 않다. 블랙 앤 화이트의 조합이 쉽고 간결하지만 어떤 색깔보다도 무게감을 갖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는 비유에, 덕원은 그림의 비유를 꺼내놓았다. "도트로 만드는 게임 이미지 같은 게 있는데, 해상도가 낮은 제한된 환경에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 제가 하는 가사 작업이 그런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인터뷰의 한 귀퉁이를 떼어내 가사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총 8곡이 수록된 앨범의 노래 중 먼저 첫 번째 트랙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를 살펴보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다만 망설임을 알고 있을 뿐/ 입 밖으로 나다니는 말들은/ 조금은 점잖아야 할 테니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란 문장의 의도를 묻자 덕원은 "브로콜리너마저 식의 비아냥"이라며 "내가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하고 비꼬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향기 ⓒ 스튜디오 브로콜리


네 번째 트랙 '괜찮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거짓말으로 괜찮다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울었던 어렸던 날들/ 이제는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

마지막에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네'란 문장은 무척 모호하다. 주어가 없으니 정확한 의미를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덕원이 노린 포인트였다. 예전에는 (누군가) 내게 상처 주지 못할 정도로 나 스스로 단단해져야겠다는 다짐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제대로 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그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주어를 나로 놓든 타인으로 놓든 결국 다 말이 되게끔 일부러 모호하게 쓴 것이다.

또 하나 재밌는 건, '상처 주지 않을'이 아니라 '상처 주지 못할'이라고 쓴 부분이다. 이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다. 덕원은 "무엇을 하겠다,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본성에 가까울 정도로 (무엇을 해도 자연스럽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류지 ⓒ 스튜디오 브로콜리


"제 가사는 항상 화자가 모호하다.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화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만한 문장이나 단어가 많다. 한 사람의 마음 안은 복잡하고, 저도 사실 복잡한 사람이다. 이 노래의 감성을 처음 느꼈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도 다르고. 그런 점 때문에 화자를 애매하게 만든다." (덕원)

노래의 후반부로 가면 메시지가 조금은 더 분명해진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어/ 어떤 인간들을 만나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건/ 그저 사람이 되는 일"

결국 중의적인 이야기를 위한 설계였던 것이다. 덕원은 자신의 이러한 가사 스타일을 게임북에 비유하며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같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하도록 층위를 몇 단계 생각하고 가사를 만든다. 게임북에서 '이것을 선택한 자는 몇 페이지로 가시오'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트랙 '아름다운 사람'도 들여다보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밤/ 또다시 눈뜨면 닥치는 건 세상/ 걱정에 눈을 뜨면 곤히 자고 있는 너/ 아직 남은 아침까지 행복하기를"

이 가사를 처음 덕원으로부터 받았을 때 멤버들은 각기 다른 상황을 떠올렸다. 향기는 '허락받지 못한 사랑'을 떠올렸고, 잔디는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머릿속에 그렸다.

"저는 이 가사를 보고 제 아이가 생각났다. 뒤이어 나오는 '가장 힘들지 않을 때까지 안아주길'이란 구절에서 더욱 그랬다." (잔디)

소리 한 번 지르는 것, 그것이 힘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브로콜리너마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9년 만에 정규 앨범 <속물들>을 발표했다. 이를 기념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앨범 작업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 스튜디오 브로콜리


"이번 앨범은 자신의 어떤 부족함을 인정하는 이야기이고,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자리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브로콜리너마저가 직접 쓴 이번 앨범의 소개글이다. 이 앨범은 듣는 사람에 따라 미래에 가망이 없다며 시니컬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람에 따라 그래도 힘을 내보자 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듣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것이 되는 다양한 층위의 노래인 것이다. 

"마음이 쪼그라들고 힘들 때는 '난 잘 될 거야' 하고 외치는 게 힘들잖나. 노래의 메시지가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야 이 자식들아!' 하고 소리를 지를 때 (마음 속의 무언가가) 펴지는 게 있으니까. 큰 소리를 내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더라." (덕원)

결국 이들의 노래는 시니컬한 태도로 묵은 내면의 먼지를 한 번 털어내고, 그런 다음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더 잘 살아보겠다고 외치는 의지로 이어져나간다. 상처를 낫게 하려면 아프고 불쾌하더라도 환부를 드러내어 조치해야 하는 것처럼 이들의 노래는 치유의 단계를 피함 없이 정직하게 밟아낸다.

브로콜리너마저 노래의 화자는 세상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어서 툴툴대는 투덜이면서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엔 더 괜찮은 인간이 되려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수행자다. 말하자면... '츤데레' 같달까.
브로콜리너마저 덕원 류지 잔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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