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인전> 주역들.

영화 <악인전> 주역들. 왼쪽부터 배우 김성규, 김무열, 마동석. ⓒ 키위미디어그룹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악인전>에서 이 배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김무열과 김성규다. 배우 마동석이야 명실공히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있기에 두말할 것 없지만, 김무열과 김성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내공을 인정받아야 할 배우들인 것.  

일단 김무열과 김성규 모두 칸영화제 무대는 처음이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영화계 입문 전 무대 경험을 충실히 쌓았다는 사실이다. 김무열은 2002년 <짱따>를 발판으로 <지하철 1호선> <쓰릴미> <김종욱 찾기> 등을 거치며 '뮤지컬계 아이돌'로 떠오른다. 본인은 이 표현을 상당히 쑥스러워하지만 그가 무대에서 보인 연기와 에너지는 당시 객석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김무열의 본질

2009년부터 영화 작품에 소소하게 출연하던 김무열은 <은교>에서 그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승이 질투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젊은 작가 지우 역을 맡았던 그는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일상 자체를 시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 준비를 위해 일상에서도 캐릭터에 푹 빠지는 그의 패턴은 이후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연평해전> <기억의 밤> <머니백> <인랑>을 비롯해 TV 단막극 등 크고 작은 작품을 두루 경험하며 그는 본인이 자리한 영화에서 최선을 다했다. 물론 작품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배우는 없겠지만 그는 자신의 무기인 진정성을 안고 캐릭터 해석에 임하곤 했다. 

"<은교>를 통해 배운 건, 배우로서 내 한계점이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 그 안에서 발버둥을 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순간을 사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연기에 만족하는지 못하는지는 그 다음 문제 같다. 결국은 정공법밖에 답이 없더라. 대본을 여러 번 읽고, 다른 배우와 호흡하며 감독님과 그때 그때 얘기하며 잡아갔다. 대사가 입에서 잘 안 나올 때마다 물어봤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짚었다."

그는 진지하면서 진중했다. 다른 배우들이 칸영화제 초청 소감에 대해 재치 있게 말할 때도 그는 "영화를 존중하는 관객을 보며 나 역시 그 이상으로 제 작품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한 마디에 그가 작품과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묻어있다고 할 수 있다.

아내이자 동료 '윤승아와 함께 칸에 왔다'는 다른 취재진의 질문에도 그는 "아무래도 영화로 여기에 왔고, 저 혼자가 아닌 팀으로 다 함께 왔으며, 이곳에 오지 못한 <악인전> 스태프 분들도 계시다"며 "함께 이곳에 있지 못한 분들께 죄송한 마음인 만큼 영화가 더 조명받길 원한다. 와이프에 대해 길게 말씀 못드려 죄송하다"고 정중하고 자세하게 답했다. 
 
 <악인전> 스틸컷

<악인전> 스틸컷 ⓒ (주)키위미디어그룹 , (주)에이스메이커무비

 
지난 22일, <악인전>의 첫 공식상영이 있던 날은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이원태 감독의 큰 그림이었다고 재치 있게 심경을 전하기도 했지만, 그에 앞서 그는 어머니를 언급했다. "어찌하다 보니 생일날 상영하게 됐는데 누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뭐라 말할까 고민도 했는데 제 생애 최고 생일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더라. 생일은 제가 축하받기보다는 어머니께 더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던 그다.

이유 있는 언급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성인이 되자마자 실질적 가장 역할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그는 너무 힘들었던 심경을 기자에게 고백하며 "돈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 의지했던 유일한 존재가 어머니였다.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 어머니가 옆집에서 차비를 꿔서 주시곤 했다"며 "지금까지 당연하게 연기할 수 있던 건 어미니 덕이다. 날 그나마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 게 어머니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무열의 모친은 소설가 박민형씨. <은교> 당시 김무열은 어머니와 시를 문자로 주고받으며 문학의 힘에 대해 새삼 체감했다고 전했다. 

이른 나이 철들어 버린 경험, "그때 볼 것 못 볼 것 다 봤다"던 그런 경험이 지금의 김무열 연기의 밀도를 채우는 재료가 아닐까 싶다. <악인전>도 그렇다. 설정만 놓고 보면 그간 한국영화에서 무수히 재생산된 누아르 및 범죄물이지만 깡패 같아 보이는 형사 태석 역을 그가 맡으며 질감이 달라졌다. 체중도 15kg 늘렸다. 실제로 영화를 본 해외 영화 관계자들이 소속사를 통해 김무열이라는 배우가 누구인지 꽤 문의했다는 후문이다.  

강렬했던, 장첸의 부하 양태

김무열이 체중을 늘렸다면 김성규는 10kg 감량했다. <악인전>에서 그가 맡은 연쇄살인범 K는 극 초반부터 등장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로는 데뷔한 지 2년 남짓이지만, <범죄도시> 때 장첸(윤계상)의 부하 양태 역을 맡으며 강렬한 모습을 보였다. 강한 인상으로 악역을 맡아오는 게 어떻게 보면 국내 주조연급 배우들의 정해진 코스같지만 김성규가 품은 에너지와 자세는 더 다양한 역으로 관객과 만나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 <악인전> 주역들.

영화 <악인전> 주역들. ⓒ 키위미디어그룹

 
김성규 역시 20살 무렵 뒤늦게 연기를 접한 이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 왔다. "연극을 오래 하면서 배우로 돈을 벌 수 있는지 혹은 그런 배우가 과연 될 수 있을지, 된다고 해도 그걸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동료들과 얘기하곤 했다"며 "연기를 오래 즐길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등에 대해 고민했다"고 지난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예전부터 욕심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칸영화제 초청 등) 행운을 얻은 것 같다"는 말에서 오히려 초연함마저 느껴진다. 

전형적 장르물이 될 수도 있었던 <악인전>이 다채로운, 이색적 질감을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김무열과 김성규의 헌신과 노력 아닐까. 여전히 김무열은 보이지 않은 모습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김성규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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