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CJ 엔터테인먼트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김해일(김남길)의 폭발적 액션도 좋았지만, 나는 서승아 형사로 분한 금새록이 보여주는 액션에 더 매혹되었다. 날렵하게 공기를 가르는 몸 사위로 악당들을 제압하는 장면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몸 사리는 부패한 남성 동료 형사들을 뒤로하고, 여형사 서승아가 삼단봉을 쫙 펼쳐들고 임전하는 모습은, 원더우먼이 검을 들고 악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려는 숭고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에 못지않은 여성 경찰의 맹활약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걸캅스>다. 게다 <걸캅스>는 코믹영화의 본령마저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극한직업> 못지않게 웃고 나왔다.
 
<걸캅스>는 두 명의 여배우(라미란, 이성경)를 투톱으로 내세운 보기 드문 액션영화다. 그동안 한국 액션 영화에서 여성배우를 주로 피해자화 하거나 주변화했던 것에 비해, <걸캅스>는 다른 시도를 한다. 여성 배우가 무심히 소비되지 않게 사려 깊게 연출되었다.

조연인 양장미역을 맡은 수영, 경찰서 민원실장을 맡은 염혜란까지 포진해 있어 거의 여성의, 여성에 의한 영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성이 서사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서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라미란, 이성경, 수영, 염혜란까지... 연기의 합 
 
 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CJ 엔터테인먼트


라미란의 능청스러움과 이성경의 다소 시니컬함은 오버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연기의 합을 이뤄낸다. 수영과 염혜란의 연기도 감초로서 제 역할을 다한다. 수영은 찰진 욕설로 '해커'라는 스마트함 무너뜨리면서 재미를 자아내고, 감시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는 밉살스런 연기를 선보인 염혜란의 연기 또한 발군이다.

<걸캅스>의 여성 캐릭터들은 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쓰린 현실을 밀쳐내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자로서만이 아닌 시민인 여성으로, 현실과 타협하며 깜냥껏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펄펄 나르던 한창때의 박미영(라미란)이 범인을 검거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여자도 형사가 있구나", 감탄한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는 훗날 경찰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실제 경찰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경찰에 대한 영감을 제공했던 미영의 시누이가 된다. 사는 일은 이상과 다른 법.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된 이들은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집이 곤궁하면 싸움이 잦다. 시누이 미영과 올케 지혜(이성경)도 사이가 편치 않다. 한때 여자형사기동대에서 날렸던 미영은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무직인 남편과 어린아이, 독립하지 못한 채 오빠네와 살고 있는 시누이까지 감당해야하는 '가장'인 미영으로선, 엄마와 아내 역할에 사표를 던져야만 가능한 형사 생활이 가능하지 않았다. 펄펄 뛰며 현장을 휘어잡던 형사는 왕년의 영광을 가슴에 묻은 채, 경찰서 민원봉사실에서 민원인을 상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목격하면서, 마침내 잠재워두었던 미영의 야성 본능이 깨어난다.
 
올케인 미영과 티격태격하던 지혜는 미영이 근무하는 민원실로 파견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한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갈등은 '공조'로 반전한다. 두 여성이 불의를 목도하자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다. '너는 나다'라는 당사자성에 공감한 두 여성이 연대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미영과 지혜가 영화 내내 서로를 부르던 호칭의 부적절함
 
 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영화 <걸캅스> 스틸 컷ⓒ 오마이뉴스


미영과 지혜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둘만의 공조로 수사에 돌입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도히 범죄 현장에 잠입하는 미영과 지혜는, 외면당한 약자의 피끓는 호소에 유일하게 응답한 정의의 수호자자. 디지털 성범죄로 많은 피해 여성이 "내 편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고통에 몸부림칠 때, 사회는, 경찰은 어떻게 응답했던가? 여성에게 국가가 있던가? 지혜가 동료 경찰들에게 지원을 요청해도 실적 운운하며 회피하는 경찰의 모습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다.

여성을 상대한 성범죄가 급증하는데도 경찰의 수사는 진전이 없다. 여성청소년과가 있지만, 지능화된 여성 범죄를 다루기 역부족이다. 미군정기에 이미 여성범죄를 전담한 '여자경찰과'와 '여자경찰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성 경찰과장을 위시해 여경만으로 구성되어 여성을 전담한 경찰 조직이 있었다. 미군정기에 가능했던 것이 2019년 지금, 여성 피해자가 피해의 고통에 신음하다 목숨까지 끊는 이 시점에, 왜 가능하지 않은가?

미영과 지혜의 공조는 피해자에게 대한 강한 연대감은 보여주면서도, 다소 미진한 성취를 보인다. 미영과 지혜가 영화 내내 서로를 부르던 호칭이 '아가씨', '새언니'라는 것도 그 미진함에 기여하고 있다. 눈을 흘길지언정 애초 깍듯이 서로를 '아가씨' '새언니'로 호명하는 이 지점에서, <걸캅스>는 '여성' 영화로서의 기능을 일부 소실한다.
 
아가씨란 본래 '아기씨'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말 자체가 아무 능력이 없는 '아기'라는 뜻이다. '아가씨'로 호명되는 많은 여성들이여, 무능한 '아기씨'라는 호칭에 동의하는가? 비록 현실은 아직 미답의 '시월드'판이라지만, 영화적 상상력은 좀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범죄의 현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서로의 생명을 담보해주는 파트너끼리 '아가씨' '새언니'라니, 진부함이 역동성을 무너뜨린다. 새로운 여성 히어로에겐 다른 호명이 필요하다.
 
'힘 없는 시민의 저항'이 아니라 '방관의 관음증'

<걸캅스>의 여성 투톱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들 두 여성의 히어로성이 남성 액션 히어로들의 그것과 지나치게 유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여성이 많이 진출하지 못한 직업군에서 적절한 여성 롤모델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여성이 희박한 직종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구현하려는 이상형을 전면 갱신하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미영과 지혜의 형사 캐릭터가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드라마 <라이브>의 안장미(배종옥)는 엄마이면서 아내, 며느리인 각박한 현실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커리어를 쌓는 여성 형사 캐릭터를 제시한 바 있다.

<걸캅스>에서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다. 미영과 지혜가 온몸으로 악당들을 상대하느라 분투하고 있을 때, 이들의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미 영화 <베테랑>에서 보여주었듯이, 범인을 검거하느라 만신창이가 된 혈투의 현장을 지켜보는 시민들이 한 일은 오직, 자신들의 휴대폰을 켜고 그 현장을 담는 것이었다.
 
당시 어떤 이들은 이 방관의 관음증을 '힘없는 시민의 저항'으로 미화해 표현했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힘없는 시민이라도 수가 많으면 힘 있는 군중이 될 수 있다. 시민이 해야 할 일은 정의가 몰매를 맞는 현장에서 오직 카메라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현장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범죄현장의 촬영 꾼이 될 필요는 없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범인에게 두들겨 맞는 당사자가 자신이라면,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이 휴대폰 들고 찍고 있기만을 바랄 텐가, 아니면, 싸움에 관여해주기를 바랄 텐가?

<걸캅스>는 시의적절한 소재로 관람자를 각성시킨다. 클럽에서 벌어지는 범죄 현장은 마치 '버닝썬'을 연상시키며 관람객을 현실로 개입시킨다. 신종마약으로 여성을 유인해 몰카를 찍어 그것을 단지 '재미'로 유포시키는 디지털 성범죄의 현장을 영화는 생생히 재생시킨다. 피해자에겐 죽음마저 요구하는 고통을 고작 '재미'로 저지르다니... 몰카에 노출되어 평생을 인질이 되어 살아야하는 여성의 고통이 사무친다.

<걸캅스>는 궁지에 몰린 여성의 고통에 어떻게 공명해야 하는지를 대거 등장시킨 여성 배우들의 공감적 대응으로 제시한다. 인면수심인 악당들의 범죄가 아무리 극악하더라도, 자신을 버리지 말기를,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살아서 견뎌주기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오빠를 따라 이소룡의 무술영화를 섭렵했던 나는, 액션 영화를 꽤 좋아했다. 문제는 당시 내가 보았던 액션 히어로의 주인공이 무술영화든 서부영화든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이고, 그 영향인지 여성은 액션을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았지 뭔가?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여성 액션이 영화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여성 액션에 굉장히 매혹되기 시작했다.

<'블랙위도우>의(호칭이 맘에 들지 않지만) 현란한 액션, 피를 너무 뿌리지만 그래서 처절한 <악녀> 김옥빈의 대담한 액션, 얼마 전 종영한 <열혈사제> 금새록의 쌈박한 액션까지 모두 두근거리게 멋지다. 물론 이 영화 <걸캅스>의 두 히어로, 라미란과 이성경의 저돌적인 액션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액션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다 멋지고 창조적인 여성 액션 히어로를 욕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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