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영화 포스터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영화 포스터ⓒ (주)디스테이션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작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시나리오 작업 기간을 제외하고 대개 1년에서 2년의 꽤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나마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대본이 완성되고 캐스팅이 확정되고도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는 영화가 허다하고, 촬영 중에 영화가 무산 되거나 편집이 끝나고도 극장에 걸리지 못하는 경우들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창작자의 머릿속에 존재하던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체로 실현되어 관객을 만나는 일이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완성까지 무려 25년의 시간이 걸린 영화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바로 테리 길리엄이 연출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다. 주연배우의 건강 악화, 자연 재해로 인한 장비 손실, 제작비 확보 실패, 바뀐 주연배우의 죽음까지. 촬영과 재촬영을 거듭하며 여러 우여 곡절을 겪었지만 영화는 결국 완성되었고, 기나긴 기다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17세기 소설 속 주인공 돈키호테를 21세기 영화 속에서 새롭게 재해석하며 관객들을 환상의 모험으로 초대한다.

철제 갑옷을 입고 자신이 진짜 돈키호테라 믿는 노인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주)디스테이션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의 작은 시골마을에 머무르고 있는 토비(아담 드라이버)는 도통 촬영에 집중할 수가 없다. 업계에서 천재 감독으로 불리며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모두 이뤘지만 매너리즘 빠져 매사가 지루하다.

그러던 중 자신의 졸업 작품을 다시 보게 된 토비는 영화를 촬영했던 장소가 광고 촬영장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열정이 가득했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에 젖어 그 마을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돈키호테를 연기했던 구두장이 노인(조나단 프라이스)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철제 갑옷을 입고 자신이 진짜 돈키호테라고 믿으며 토비를 산초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반가움도 잠시, 토비는 노인이 노망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해서 도망가지만 노인의 모험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21세기 돈키호테의 기묘한 여정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노인은 원래 구두밖에 모르는 구두장이였다. 노인의 흥미로운 얼굴이 돈키호테 역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스페인 현지에서 그를 캐스팅하지만 평생을 구두방에서 일한 노인에게 연기는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원작소설에서 알론소 키하노가 기사도 소설에 중독되어 어느 순간 자신이 기사라는 망상에 빠져든 것처럼 노인은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서서히 돈키호테라는 캐릭터에 동화되어간다. "나는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잊혀진 기사도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외치는 노인의 얼굴은 어둠에서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밝게 빛이 나고, 그의 몰입과 함께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10년 동안 승승장구한 토비, 그러나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주)디스테이션

 
졸업영화를 발판삼아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토비는 승승장구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모든 스태프들이 그를 천재라 치켜세우며 그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하지만 촬영장 밖, 거물 고객 앞에서는 제 아무리 잘나가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광대가 되어야하는 세상을 그는 살고 있다.

그리고 거기엔 안젤리카(노아나 리베이로)도 있다. 순수한 시골 소녀였던 그녀는 토비를 만나고 영화라는 환상을 쫓아 도시로 떠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실패와 상처로 점철된 꿈이다.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꿈(예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자본 앞에서 모든 가치는 그 의미를 잃는다. 반면 구두장이었던 노인은 현실을 망각한 채 사랑과 명예를 지키는 기사도 정신이 가장 소중한 꿈속에서 살고 있다. 

돈키호테가 되어버린 노인과의 모험이 계속되면서 무엇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진 나르시스트 토비는 그 사이에서 방황한다. 과연 토비는 그 경계를 구분하고 현실로 돌아 올 수 있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할 때 테리 길리엄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는데 21세기 돈키호테와 산초의 기괴한 모험을 화려하고 익살맞게 그리고 있는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테리 길리엄 특유의 유머와 풍자 살아있는 영화는 웃음 끝에 슬픔과 위로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사람들은 풍차를 보고 거인괴물이라며 달려드는 돈키호테를 노망난 늙은이라 조롱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망상이 아닐는지.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오는 23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시민기자의 브런치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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