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슈퍼땅콩' 여오현 리베로는 1978년생으로 지난 2000년 삼성화재에 입단해 무려 20년 동안 실업과 프로 무대를 거치며 활약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을 둔 학부형임에도 여전히 코트에서 가장 열심히 달리고 가장 과감하게 몸을 날린다. KB손해보험 스타즈의 이선규(1981년생)와 우리카드 위비의 윤봉우(1982년생) 역시 코트에서 3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 리베로, 그리고 경기 시간의 절반은 벤치에서 쉴 수 있는 미들브로커이기 때문이다. 한 경기에도 수 많은 도움닫기 점프를 시도해야 하는 날개 공격수들의 경우엔 어깨, 허리, 무릎 ,발목 등에 고질적인 부상을 달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30대에 접어들면 전성기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 한국 나이로 37세가 된 김학민(KB손해보험 스타즈)은 체계적인 채력 관리로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30대 중반을 넘기고도 윙스파이커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학민의 몸 관리는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아도 좋을 만큼 모범적이다. 2006년 프로 데뷔 후 13 시즌 동안 대한항공 점보스에서 활약했던 김학민은 지난 23일 KB손해보험으로 이적해 프로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새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뛰어난 탄력과 체공력 자랑하는 대한항공의 토종거포
 
 김학민은 전성기 시절 한 시대를 호령했던 V리그 최고의 토종거포였다.

김학민은 전성기 시절 한 시대를 호령했던 V리그 최고의 토종거포였다.ⓒ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V리그 출범 후 3년 연속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따냈다. 하지만 2006년 신인 드래프트는 수련 선수를 포함해 남자부 11명, 여자부 12명만 프로무대를 밟았을 정도로 '흉년'이었고 대한항공은 '그나마' 가장 공격력이 좋은 경희대의 라이트 공격수 김학민을 지명했다(역대 신인 드래프트에서 경희대 출신 선수가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적은 2006년의 김학민과 2012년의 이강원밖에 없다).

김학민은 경희대 시절 대학배구를 대표하는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당시 대한항공에는 두 시즌 연속 득점 2위에 오른 브라질 출신의 외국인 선수 보비가 있었다. 김학민은 2006-2007 시즌 25경기에서 229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에 올랐지만 여느 유망주들처럼 생존을 위해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서브리시브나 수비에서는 큰 강점이 없던 김학민은 그렇게 그저 그런 백업 선수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김학민에게는 다소 부족한 수비력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탁월한 점프력과 체공력, 그리고 상대 블로킹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입단 3년 차가 되던 2008-200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김학민은 2012-2013 시즌까지 대한항공의 토종거포로 활약하며 세 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한 번 점프하면 라면을 끓여먹고 내려온다'는 뜻을 가진 '라면'이라는 유쾌한 별명도 얻었다.

특히 선수로서 전성기에 도달했던 2010-2011 시즌에는 55.65%의 공격 성공률(1위)을 기록하며 삼성화재 블루팡스의 '괴물 외국인 선수' 가빈 슈미트를 제치고 정규리그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3년 연속 삼성화재의 벽에 막혀 V리그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고 서른 줄에 접어든 김학민도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상근예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나이가 꽉 찰 때까지 입대를 미룬 선수들은 전역 후 입대 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김학민은 전역 후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5-2016 시즌 524득점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고 2016-2017 시즌에는 57.12%의 공격성공률로 통산 2번째 공격 성공률 1위에 올랐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높은 V리그에서 2번 이상 공격 성공률 1위에 오른 선수는 이경수와 박철우(삼성화재), 그리고 김학민뿐이다.

데뷔 후 첫 이적, 초라한 은퇴 무대와 새로운 전환점 기로
 
 대한항공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학민은 프로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대한항공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학민은 프로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 입었다.ⓒ KB손해보험 스타즈

 
프로 출범 후 4번이나 준우승에 머물렀던 대한항공은 지난 2017-2018 시즌 현대캐피탈을 꺾고 드디어 V리그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2017-2018 시즌 챔프전 우승의 중심에는 김학민이 없었다. 시즌 초반부터 발목 부상에 시달린 김학민은 28경기에서 107득점에 그쳤고 챔프전에서는 단 한 번의 공격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말았다.

대한항공은 김학민이 주춤한 사이 공수를 겸비한 레프트 듀오 정지석과 곽승석이 주전으로 맹활약했다. 여기에 1999년생 신예 임동혁까지 등장하면서 노장 김학민의 입지는 더욱 줄어 들었다. 결국 김학민은 2018-2019 시즌 50.75%의 괜찮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고도 121득점에 그쳤고 챔프전에서도 두 시즌 연속 1득점도 기록하지 못하며 대한항공의 주요 전력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김학민은 2018-2019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대한항공에는 김학민 외에도 정지석, 곽승석, 진성태 등 붙잡아야 할 내부 FA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여기에 KB손해보험으로부터 좋은 공격력을 갖춘 윙스파이커 손현종까지 영입했다. 결국 김학민은 대한항공과 3억 원에 FA계약을 체결한 후 지난 23일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다(대한항공은 연봉 상한선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 선수들의 '정리'가 필요했다).

대한항공에서는 쟁쟁한 후배들에 가려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KB손해보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FA 손현종이 팀을 떠난 KB손해보험은 또 한 명의 주전 윙스파이커 황두연마저 상무에 입대해 윙스파이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풍부한 경험과 여전히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김학민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어도 공격에서는 충분히 제 몫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V리그 초창기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을 떨치던 '스커드 미사일' 후인정(경기대학교 코치)은 2013년 한국전력 빅스톰으로 이적했지만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다. 반면에 은퇴 위기에 있던 '마운틴 블로커' 윤봉우는 2016년 쫓기듯 한국전력으로 이적했지만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선수생활의 전환점을 맞았다. 과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윙스파이커 김학민은 KB손해보험에서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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