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국내에 9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4년 초연 이후 전 국민적 인기를 얻은 작품답게 치열한 티케팅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 지킬 역에는 이전 시즌 지킬 역할을 맡았던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가 캐스팅 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민우혁, 전동석까지 추가로 합류하면서 5개월째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지킬(홍광호)이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킬(홍광호)이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 오디컴퍼니

 
이중인격 지킬과 하이드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 뿐."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그런데 이런 기대 때문이었을까 공연이 끝난 후 아쉬움이 컸다.
 
 지킬의 약물 실험 중 다른 인격 하이드가 나타났다.

지킬의 약물 실험 중 다른 인격 하이드가 나타났다. ⓒ 오디컴퍼니

 
영국의 저명한 의사 헨리 지킬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라는 이중적인 성향이 있다고 믿었다. 지킬에게는 오랜 꿈이 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다른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인간의 정신에서 선과 악을 나누고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임상실험을 앞두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병원과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지킬은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입해 실험한다. 약물이 들어가자 새로운 인격 하이드가 나타나 범죄를 저지르고 지킬의 주변 사람들까지 위협한다. 여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킬 앤 하이드>의 핵심 줄거리다. 한 사람 속에 살고 있는 두 인격체.
 
<지킬 앤 하이드>하면 '이중인격' '선과 악'에 대한 내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작품은 이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지 않는다. 작품 1막 초반에는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설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쓴다.

'Facade' 'Murder, Muder' 넘버에서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지킬이 약물 실험을 하는 이유를 아버지에서 가져와 설득력을 높였으며, 지킬이 병원 이사회 연설에서 실험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이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작품은 불친절해진다.
 
지킬이 하이드를 불러내면서 어떤 실험을 했는지, 하이드의 감정은 어떠한지, 두 인격의 기억은 어떻게 공유되는 건지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 지킬과 하이드의 인격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1인 2역 연기 등 시각적인 재미는 충분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지킬과 하이드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약물 임상 실험 전 지킬은 인간의 본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눴다. 그런데 지킬과 하이드는 뚜렷하게 '선과 악'을 상징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하이드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고 지킬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이드가 가장 먼저 살해한 사람이 성희롱과 성폭력을 일삼은 교회 주교였고, 지킬은 하이드가 하고 다니는 처참한 범죄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이러한 점은 극 초반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으로 나뉜다'던 지킬의 주장과 상반된다. 어쩌면 지킬과 하이드는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지킬과 하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이다 보니, 주변 이야기들은 방해가 되기도 한다. 지킬이 약물을 주입하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사회 분위기나 주변 인물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꽤 길다. 이 때문에 작품의 1막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성 캐릭터 소비의 아쉬움
 
최근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뮤지컬, 연극에서도 여성 캐릭터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역시 꾸준히 비판 대상이 돼 온 작품이다. <지킬 앤 하이드>속 여성 캐릭터들은 주로 구시대적인 여성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킬의 약혼녀 엠마는 지고지순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지킬을 사랑해왔다. 항상 일에 바쁜 지킬을 기다리고 그의 꿈을 응원한다. 지킬이 약물 실험을 하느라 실험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그를 믿고 기다렸고, 하이드의 정체를 알았을 때도 괜찮다고 다독였다.
 
루시는 공연 속 여성 캐릭터들의 단골 직업인 '술집 여자' '매춘부'다. 공연 예매처의 작품 설명에는 '클럽 무용수'라고 적혀있지만 실상 그녀는 술집에서 몸도 마음도 고통 받아 왔다. 그러던 루시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지킬을 사랑하게 됐다. 지킬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고 희망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하이드는 루시를 정복하려 하고 그녀를 괴롭히는 행동으로 지킬을 협박한다.

130여년 전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다보니, 여성 캐릭터 역시 130년 전 시각에 맞춰졌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2019년의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현 시대상도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오랜 기간 공연 속 여성 캐릭터들은 나약하고 수동적이며 늘 피해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작을 각색하면서 이를 바꿔보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지킬 앤 하이드>의 안일한 선택이 다소 아쉬운 이유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한 장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한 장면 ⓒ 오디컴퍼니

 
그래도 명성은 납득할만한 <지킬 앤 하이드>
 
아쉬운 점이 컸던 작품이지만 명성을 납득할만한 점들도 많다. <지킬 앤 하이드>는 배우들의 역량이 최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1인 2역을 하는 지킬은 소름이 돋는다. 지킬과 하이드가 대립하는 넘버인 'Confrontation'에서는 지킬과 하이드가 한 소절씩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얼굴을 좌우로 돌릴 때마다 지킬로 변했다가 하이드로 변한다. 분명 관객들은 모두 숨죽인 채 관람하고 있지만 감탄하고 있는 게 공기로 느껴질 정도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지금 이 순간'이 최고였다면 공연을 보고 나서는 'Confrontation'을 잊지 못한다. 또한 루시, 엠마, 앙상블 등을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믿고 듣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과 합쳐지면 감동이 더해진다.
 
<지킬 앤 하이드>는 '논레플리카' 공연 양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국내화한 작품이다. 논레플리카는 원작을 가져와서 공연 할 때 각 프로덕션에 따라 의상, 대사, 연출 등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 <지킬 앤 하이드> 프로덕션은 지킬을 젊은 남성으로 만들었고 시즌을 거듭할수록 의상과 무대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지킬 앤 하이드>는 모든 시즌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아쉬운 부분들이 많지만 중독적인 넘버, 화려한 무대, 배우들의 열연을 보면 오랜 세월 사랑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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