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모리스(유승현)와 유안(박한근)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모리스(유승현)와 유안(박한근)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프로스랩

  
어두침침하고 어딘가 음산한 무대 위에 두 그림이 놓여있다. 다른 듯 비슷한 모습을 한 두 그림은 '유안'과 '모리스'가 그린 자화상이다. 유안은 자신의 피로 그린 그림을 남겼고 모리스는 자신의 뼛가루가 묻은 그림을 남겼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갤러리 관장 케이가 이 그림의 진실이 밝혀진 뒤 뒤집힐 세상을 떠올리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달에 대해서
 

<달과 6펜스>는 서머짓 몸이 쓴 동명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은 창작 뮤지컬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던 화가 유안, 무료하지만 규칙적인 삶을 살던 유안의 아내 미셸, 갤러리 관장 케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가진 화가 모리스가 나온다.
 
유안과 케이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다. 우연히 모리스를 알게 된 케이가 유안에게 그를 소개시켜주면서 4명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작품은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인생 이야기도 한다.
 
 유안(박한근)이 빛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유안(박한근)이 빛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달과 6펜스 공식 트위터

   
'달'은 이들의 꿈과 이상이다. 유안에게 달은 '예술'이자 '모리스'다. 개미와 닭피 등 충격적인 재료로 독특한 그림을 그리는 모리스를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느새 그의 예술성에 빠져들어 미치도록 따라가고 싶어 했다. 모리스의 구박에도 그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쉬었던 이전의 작업 방식과 다르게 며칠 밤을 새우며 그림에만 미쳤다.
 
 모리스(유승현)이 미셸을 바라보고 있다

모리스(유승현)이 미셸을 바라보고 있다ⓒ 달과 6펜스 공식 트위터

 
모리스에게도 달은 '예술'이다. 모리스는 "예술이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감정이 지나가는 빈껍데기야"라는 말처럼 오로지 그 순간의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낸다. 사회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모리스가 유안을 만나면서 조금씩 바뀐다. 인상 쓰며 자기주장만 펼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했으며 유안이 없는 미셸의 집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미셸(김히어라)이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미셸(김히어라)이 앞쪽을 응시하고 있다ⓒ 달과 6펜스 공식 트위터

 
미셸에게 달은 '자유'가 아니었을까. 미셸은 찻잔, 의자, 화분을 줄 맞춰 가지런히 정리한다. 일정 시간이 되면 창문 너머 들리는 아이들 소리에 시간을 짐작하고 저녁 준비를 한다. 누군가가 화병의 나뭇잎을 흩트리면 당장 달려가 정리할 만큼 '안정'에 집착한다. 그런데 미셸은 모리스가 그린 자신의 그림을 보고 '달'을 깨닫는다. 이곳에 스스로 갇혀 있을 게 아니라 자유를 원하는 욕구를 깨닫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 떠난다. 미셸이 부엌을 어지르고 떠나는 마지막 모습에서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케이(유현석)가 테이블에 앉아 생각하고 있다

케이(유현석)가 테이블에 앉아 생각하고 있다ⓒ 달과 6펜스 공식 트위터

 
케이의 달은 '유안'이다. 케이가 꿈꾸는 이상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 케이는 늘 유안을 위하고 걱정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으며, 그림이 되어가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봐야한다. 예술가인 유안과 모리스의 모습을 비예술가인 케이의 눈과 입을 통해 들으니 두 화가의 이야기가 더 비극적이고 특별해진다. 케이의 달이 유안임은 '여섯 번째 손가락' 넘버에서 알 수 있다.
 
"너도 누군가의 여섯 번째 손가락이야"
 
유안이 말하길 예술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다. 그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유안은 본인에게도 그 손가락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모리스를 만난 후 그 손가락이 가짜였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만들어졌고 모리스는 태어났다고 말한다. 이때 케이는 "너도 누군가의 여섯 번째 손가락이야 너도 누군가의 달이야"라고 말한다. 예술가들의 아픔을 나타내는 이 장면에서 유안과 케이의 달을 짐작할 수 있다.
 
 뮤지컬 <달과 6펜스> 중 '불쾌한 테이블' 넘버의 한 장면

뮤지컬 <달과 6펜스> 중 '불쾌한 테이블' 넘버의 한 장면ⓒ 프로스랩

 
'불쾌한 테이블' 넘버에서 인물들의 성격과 가치관이 드러난다. 미셸의 집 테이블에 4명이 앉아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모두 다른 말, 다른 생각을 한다. 모리스는 "입 닥치고 그려야 할 걸 그리면 된다"며 "예술은 세상에 던지는 비웃음"이라고 말한다. 유안은 "학교에서 배우는 미술의 기본기, 화가가 되기 위한 개인의 노력, 혼자만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케이는 "예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며 "평가가 있어야 예술이 존재 한다"고 말한다. 미셸은 "한 순간의 자유"라는 소절을 넌지시 부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유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쾌한 테이블'은 인물들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완벽한 장면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 표정, 찻잔을 드는 방법까지 제각각이다. 멜로디에 맞춰 바뀌는 조명 아래서 간단한 안무가 이어지는데 찻잔을 인물의 머리에 붓는 등 상징적인 행동들도 담겨있다.
 
특히 다 같이 부르는 "예술이 대체 뭐지"라는 소절에 이어 미셸, 유안, 케이, 모리스 순으로 "한 순간의 자유 한 순간의 느낌" "혼자 해내야 만하는 치열한 싸움" "그저 세상에 던지는 비웃음" "예술은 혼자 완성될 수 없어" 라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을 노래한다. 4개의 달과 그림자가 그려지는 장면이다.
 
유안과 모리스의 자화상이 같이 걸린 이유
 
유안과 모리스는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같이 있게 됐고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닮아간 이유는 뭘까.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유안은 오래전부터 본인도 모르게 예술로서 욕망을 불태울 일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는 죽어서 인정 받는다'는 말도 있듯이 그 욕망이 모리스를 만나 표출됐다. 따라서 결국 유안은 모든 시간과 에너지, 욕망, 욕구를 폭발시키고 스스로 그림이 됐다.
 
모리스 죽음의 동기는 유안이다. 상상해오던 작품의 완성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유안이 먼저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고 나면 뼛가루로 대신 그림을 그려줄 케이까지 있으니 안심이 됐을까. 모리스는 죽는 순간 비로소 예술은 같이 하는 거라는 걸 깨닫는다.
 
유안과 모리스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프기는 했지만 '달이 되고 싶었던 6펜스' 유안과 '달이 되어 버린 6펜스' 모리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지막 순간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
 
자신의 혼을 바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죽음. 어쩌면 식상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과 6펜스>는 예술가와 비예술가를 모두 작품에 등장시켰고, 이때까지 예술에 대해 다뤘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전문용어 사용이 적다는 점이 신선하다. 특유의 어둡고 신비스러운 무대 분위기와 노래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처음엔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예술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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