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이 드라마는 한가위만큼 불행한 날이 없는 사람을 위한 드라마다. 큰집에 가는 순간 집에 가고 싶고,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송구스럽고, 어딜 가고 싶어도 자격지심 때문에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수많은 취업준비생을 위한 드라마다. 천 번을 흔들려도 어른이 되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청춘을 위한 드라마, 바로 <미생>이다.

명절이 괴로운 미생들에게   

 tvN <미생>의 한 장면.

tvN <미생>의 한 장면.ⓒ CJ E&M




tvN이 제작한 드라마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했다. 바둑기사를 꿈꾸던 장그래의 고군분투 취업기를 담은 드라마로, 케이블 채널 드라마로는 이례적인 시청률 10%를 찍은 기념비적 드라마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로맨스도 없고 신파도 없이 잔잔하게 구성됐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엄청났다. 비록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책이었지만, 정부가 '장그래법'이라 불리는 비정규직 종합대책까지 내놓았으니 말이다.

주인공 장그래는 한때 바둑기사를 꿈꾸었지만 실패하고, 무역회사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모든 것에 척척박사인 주인공이 아니다. 항상 실수하고, 좌절한다.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다는데, 장그래는 인간미 그 자체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 명문대를 나와 한 번에 취업에 성공한 장백기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의욕만 과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사와 부딪친다. 유일한 여자주인공 안영이는 회사 내에선 성차별에 시달리고, 회사 바깥에선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다. 상사에게 사내 괴롭힘을 당하고, 사내 정치로 말수와 웃음기를 잃는 한석률도 어디에나 있을 법하다.

물론, 가장 공감받는 캐릭터는 장그래다.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계약직 신분이지만,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라며 눈물을 닦는 그의 모습은 명절이면 작아지는 우리와 닮았다. 우리를 본다. 노력도 많이 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받고 싶어 고군분투하지만, 장그래는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허락되지 않은 욕심으로 치부 받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다. 청년 실업률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청춘의 이야기가 장그래다.

장그래는 늘 우리 곁에 있다 

 tvN <미생>.

tvN <미생>.ⓒ CJ E&M


어느 날처럼 혼자 카페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카페는 고요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렸다. 옆 테이블에서 남자가 그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지방에서 올라온 듯했고,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그의 어머니는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자식을 볼 생각에 들뜬 듯했다. 하지만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은 자기소개서 시즌이다. 주요 기업들의 공개 채용 시기와 추석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편하게 내려갈 수 없었고, 자기소개서 작성과 인적성 공부를 핑계로 고향 방문을 피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이 그렇다. 부모님의 한숨이 모두 나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의 모든 한숨을 대신 쉬어주듯이 쉴 새 없이 한숨만 나온다. 부모님의 노후가 불안한 이유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적어서 그런 것인데, 괜히 나 때문인 듯하다. 슈퍼맨 같아 보이던 아버지의 등이 작아 보이고, 평생 40대일 것만 같던 엄마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는 것도 모두 나 때문인 것 같다. 회원가입을 할 때 적는 신분란에 죄인을 적어야만 할 듯하다. 별 하나하나에 꿈을 적을 수 있을 만큼 꿈이 많았는데, 이젠 취업 성공이라는 하나의 꿈만 남았다. 그런데, 그 꿈이 정말 꿈만 같다. 

이런 암담한 드라마를 왜 추석 때 봐야 하냐고? 장그래는 미생도 미생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장그래는 바둑기사라는 꿈을 이루는 데에 실패했고, 결국 정규직 전환에도 실패했다. 겨우 계약직 사원이 되었으나 정규직이 되는 것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그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저 매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여정에 몸을 맡긴 미생이었지만 정말 묵묵히 열심히 해냈다. 그의 성실과 인내가 궁극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추석 때 우울한 우리네 취업준비생에게 한줄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갈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처럼, 기업 인사팀이 보낸 딱딱한 문자 한 통에 쓰러지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을 가위로 찢고 싶은 취준 미생들이여. 드라마 <미생>을 보며, 이번 명절을 잘 버티길 바란다. 비록 힘든 나날이지만, 이 끝엔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좋은 종착지가 있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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