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개봉한 영화 <응징자>의 한 장면. 응징자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양동근과 주상욱

▲ 10월 30일 개봉한 영화 <응징자>의 한 장면. 응징자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양동근과 주상욱 ⓒ INVENT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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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망설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가 오래 좋아하던 사람에게 고백을 해야 하는 순간의 머뭇거림이라면, 안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는 이 영화처럼 '응징'하고 싶은 누군가를 갑자기 맞닥뜨려 말문이 꽉 막히는 순간의 답답함과 흡사하다. 안타깝게도 지금부터 이야기할 영화 <응징자>는 후자에 해당한다.

제목은 '응징'으로 돌려 말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한국영화에서 많이 사용해온 '복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전혀 의도치 않은 계기로 연쇄된 복수의 악순환을 꼬집었다면,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의 원인을 제공한 자와 끝없이 복수를 감행하는 자 사이의 대결구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과정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더 악인인지에 대해 사유하게 했고, 복수를 복수로 갚았을 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복수 뒤편의 허망한 얼굴도 함께 조명했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한국 스릴러 영화는 주된 코드로 복수를 사용해왔다. 그 이유는 복수가 아직도 장르 영화의 소재로서 충분한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마땅한 복수를 지켜보는 것은 스포츠 경기의 승리를 지켜보는 것 같은 짜릿함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는 곧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 파괴본능 등을 대신 분출시켜주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복수'는 한국영화에서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응징자>가 관객의 호응을 얻고 싶었다면 이러한 기존 복수 소재 영화의 관습을 과감히 깨거나, 관습 안에서도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한 방을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복수를 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극적인 장치들만 내세운다. 마치 MSG로 맛을 낸 음식처럼, 맵고 짜고 빤하다. 그래서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투적이며 예상대로다.

기발했던 <응징자>의 몇 가지 설정들

고등학생인 창식(양동근 분)은 같은 반 친구 준석(주상욱 분)을 '멍멍이'라 부르며 괴롭힌다. 정해준 시간 안에 캐러멜 심부름을 다녀오도록 시키고, 교생 선생님에게 민망한 질문을 하라고 협박한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준석은 창식의 괴롭힘이 싫지만 저항할 수는 없다.

창식은 부유한 집안에 공부도 잘하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지만 준석에게는 가난한 형편에 식구라고는 편찮으신 할머니뿐이며 친구도 없기 때문이다. 저항하면 준석의 편에 서줄 사람은 없다. 둘은 그렇게 극과 극이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우연히 준석과 창식은 조우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준석은 응징을 계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창식은 준석을 괴롭혔던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준석은 창식의 기억을 되찾아줄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이야기 구조가 간결하다 못해 간편하다.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을 괴롭힌 놈을 찾아가 혼내준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던 이야기라서 영화로 만들어도 될까 싶은 이야기를 <응징자>가 용감하게(?) 하고 있다. 통속적이지만 다른 지점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지켜본다. 다행히, 조금은 특이하다싶은 설정이 있다.

첫 번째는 창식이란 인물의 설정. 보통 학교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의 돈을 뺏고 수금(?)이 잘 안되면 때리는 것이 정석인데 창식은 괴롭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준석에게 지불한다. 더구나 준석은 장난감이 돼 주는 대가로 창식으로부터 받은 돈을 할머니 약을 사는데 쓰고 있다. 살짝 창의적이다.

두 번째는 창의적이라기보다 작위적인데, 바로 왕따 준석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둘은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어서 여자친구는 준석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자친구는 준석을 좋아한다. 이것을 위대한 사랑의 힘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설정이 기존의 학교폭력 소재의 서사를 빗겨간다.

10월 30일 개봉한 영화 <응징자>의 한 장면. 창식 역으로 분한 양동근이 직장 상사의 멱살을 잡고 있다.

▲ 10월 30일 개봉한 영화 <응징자>의 한 장면. 창식 역으로 분한 양동근이 직장 상사의 멱살을 잡고 있다. ⓒ INVENT D


대놓고 막장 코드? <응징자>의 한계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창의력' 발산은 여기까지다. 이후 전개되는 모든 상황은 영화 속 대사처럼 '막장'으로 흐른다. 추악한 과거를 기억 못하던 창식은 준석에게 복수당하면서 본래의 악한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후 벌어지는 성격 변화의 양상이 막장 드라마 캐릭터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의 눈에는 방금 전까지 커플티를 맞춰 입고 음식을 함께 먹던 약혼자도, 직장 상사도, 심지어 아버지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패륜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는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며, 돈을 권력 삼아 힘이 약한 동창을 괴롭히던 고등학생 창식의 모습으로 회귀한다. 세월과 변해버린 환경에 의해 억눌렸던 악마성의 자아가 다시 눈을 뜨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창식이 과거의 성격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느닷없다는 데에 있다. 그가 준석에게 충분히 악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멀쩡한 성인으로서의 모습, 지위, 주변 환경 등을 다 놓고 급히 다시 거칠어지는 준석의 모습은 마치 '소시오패스'를 보는 듯 낯설고,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더구나 복수의 방향이 일방에서 쌍방으로 바뀌면서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게 막나가는 준석과 창식의 모습은 다분히 영화적이라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만약 영화 <응징자>가 대놓고 '막장 드라마' 장르라고 홍보했다면 오히려 굉장히 재밌을 뻔 했다. 그 정도로 영화가 가진 설정, 서사, 인물 등 대부분의 요소가 갈 데까지 간다. 문제는 이런 막장 코드가 이미 관객들에게는 익숙하기에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는 주제마저 상투적이다. 힘이 아닌 돈으로 나뉘는 신 계급사회로서의 고등학교,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는지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주제의식 자체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차용된 느낌이 강하다. 주제가 좀 더 '심도' 있었다면 영화도 한층 '밀도' 있게 만들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기 잘하기로 정평이 난 양동근, 주상욱이 이 영화에서도 빛나는 연기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들의 연기가 영화에 과하게 희생된 측면이 있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영화는 관객을 '응징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 관객은 이 정도 영화에 박수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양동근 주상욱 이태임 응징자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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