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종자기는 백아의 거문고 연주(演奏)를 듣고, 그의 마음을 알아채곤 했다고 한다. 백아가 산(山)을 떠올리며 연주를 하면 이를 들은 종자기는 태산과 같은 연주라 말하고, 백아가 강(江)을 마음에 품고 연주를 하면 종자기는 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백아에게 '연주'란 곧 생각이자 마음이었고, 그의 가까운 벗이었던 종자기는 백아의 연주로부터 생각을 읽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생겨난 말이 '지음'이고, 백아가 종자기의 죽음 앞에서 거문고 줄을 끊은 일을 두고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 한다.

유희열과 이소라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누나는 목소리를 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가 그냥 자기인 거야. 지금 제일 괴로운 사람이 누나야. 그런데 이 순간이 여행 온 거 잖아. 이런 얘기는 누나도 부모님도 못해. 누나의 동료들 밖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자꾸 끌고 가는 거야." (유희열)

"사는 이유나 존재가치가 노래 말고는 없기 때문에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리는 거야." (이소라)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그리고 노홍철. 네 사람은 아일랜드 뮤지션의 성지인 슬래인 캐슬을 방문하기 전날 저녁 다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눴다. "나 거기서 노래하고 싶었는데, 희열이랑." 이소라는 설레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간단한 식사와 함께 슬래인 캐슬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계획을 짜던 중 유희열은 작심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바람이 분다'를 거기에서 부르자." 자신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노래를, 그것도 슬래인 캐슬이라는 음악의 성지에서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박수, 환호, 물개박수. 이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라의 반응은 달랐다. 아니, 이상했다. "...아니, '바람이 분다'를 할 순 없고 다른 노래를 해야 되겠다."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유희열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멋있지 않을 거야." 이소라는 오랜기간 같이 호흡을 맞춰왔던 세션들이 없는 환경을 지적하며,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 말을 들은 윤도현은 "우리가 너무 쉽게 얘기를 했구나"라며 미안함을 드러냈다. "'바람이 분다' 는 내가 부르기가 너무 벅차, 항상..." 무엇이 그를 그토록 벅차게 만드는 것일까.

다음 날, 슬래인 캐슬에서 'Falling slowly'를 부르고 나서 유희열은 다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안 써도 되니까 '바람이 분다' 한번 해볼래? 소리가 너무 좋으니까." 완강히 거부했던 이소라는 마음을 바꿔 '바람이 분다'를 부르겠다고 선뜻 대답한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예민하고 까칠했지만, 그건 철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뮤지션의 것이었다. 어느새 노래에 완전히 집중한 그의 얼굴은 달콤한 사탕와 초콜릿을 입안에 넣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또 하나의 자아가 담겨 있었다.

이소라의 노래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 JTBC


무엇이 그의 마음을 바꿔놓았던 것일까. 그건 '유희열'이라는 존재였다. 이소라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그는 이소라가 왜 그토록 완벽함을 추구하고, 언뜻 보기에 '유난을 떤다'고 여길 만큼의 강박에 시달리는지 얘기했다. 유희열은 자신이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이소라가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꺼내놓았는데, '노래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는 질문에 이소라가 '생각이요'라고 대답했다며, "누나는 음악을 만들 때나 대할 때나 노래할 때 목소리를 내서 그냥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라 설명한다.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 유희열이라는 존재 앞에 이소라는 자신의 속내를 조금 더 꺼내놓는다. "사는 이유라든지 존재 가치가 다른 거 외에는 없는데, 이걸 그냥 해버리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거야." 아, 이제서야 '이소라'라는 가수, 그라고 하는 한 인간이 조금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이소라에게 노래란 그런 값어치를 지닌 것이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래할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이 이소라 본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유희열은 계속해서 이소라를 끄집어낸다. '지음'인 그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소라가 "희열이는 진짜 오래 전에서부터 봤으니까" 라고 말할 만큼 두 사람은 90년대를 함께 했던 대표적인 뮤지션들이었고, 실제로 이소라의 정규 2집 <영화에서처럼>(1996)의 'Happy Christmas'의 경우에는 유희열이 작곡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만큼 오랜 기간 그리고 끈끈한 정을 나누며 교류를 해왔던 사이이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지음'이기에 슬래인 캐슬에서 '바람이 분다'를 부르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또, JTBC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성립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이었다.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비긴 어게인>의 한 장면 ⓒ 비긴 어게인


고작 2회가 방송됐을 뿐인데 <비긴 어게인>은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고, 매회마다 쏟아지는 무대들은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힐링'을 선물하고 있다. 1회에 비해 시청률은 다소 하락했지만(5.097%→4.378%), 화제도 면에서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가장 핫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뜨거움의 중심에는 역시 이소라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소라라는 백아의 지음인 종자기 유희열이 있다. tvN <알쓸신잡>에서 성실한 '청자' 역할을 하고 있기에 자칫 간과하기 쉽지만, 그는 대중음악사에 기록된 엄청난 뮤지션이 아니던가.

또, 'Rock 바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허당끼를 발휘하고 있지만, 누구나 인정할 만큼 노력파인 타고난 뮤지션인 윤도현과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쏟을 수 있을 만큼 감성적인 노홍철은 누구보다 훌륭한 청자의 역할(<알쓸신잡>에서 유희열의 역할이랄까)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 나갈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들의 버스킹이 얼마나 사람들의 가슴 속을 파고들어 각인될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 <비긴 어게인>을 통해, 감히 그들의 '종자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일까.

비긴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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