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뮤지컬 영화는 2006년에 개봉했던 <삼거리극장>과 2011년에 개봉한 <멋진 인생>을 끝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2022년 9월 류승룡, 염정아 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뮤지컬 영화가 오랜만에 개봉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국 100만 관객을 살짝 넘기며 흥행에는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의 뮤지컬영화로 관객들에게는 대단히 반가운 작품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리고 2022년 12월 21일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또 한 편의 한국 뮤지컬영화가 관객들을 만났다. 천 만 영화를 두 편(<해운대> <국제시장>)이나 연출했던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이었다. 지난 2009년부터 원작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를 연기했던 배우 정성화가 영화버전에서도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았다. 다만 영화 <영웅>은 <아바타: 물의 길>과 개봉시기가 겹치면서 기대했던 만큼 폭발적인 흥행성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인생은 아름다워>와 <영웅>이 개봉하기 전까지 한국 영화계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뮤지컬 영화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의 관객들에게 뮤지컬 영화는 그리 낯설지 않은 장르다. 그동안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들을 꾸준히 접했기 때문이다. 그 중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지난 2006년 영화화된 빌 콘돈 감독의 <드림걸즈>는 비욘세와 제이미 폭스, 에디 머피 등이 출연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영화다.
 
 <드림걸즈>는 지난 2021년 재개봉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영화다.

<드림걸즈>는 지난 2021년 재개봉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영화다. ⓒ (주)영화사 오원

 
어깨 들썩여지는 뮤지컬 영화의 매력

배우와 영화감독, 댄서, 안무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던 고 진 켈리가 1952년에 만든 <사랑은 비를 타고>는 미국영화연구소가 지난 2007년에 선정한 100대 영화에서 5위, 최고의 뮤지컬영화 순위에서는 1위에 올라있는 뮤지컬 영화다. 82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8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1966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사운드 오브 뮤직>도 레전드 뮤지컬 영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지난 2002년 개봉했던 캐서린 제타 존스와 르네 젤위거, 리처드 기어 주연의 <시카고>는 21세기 뮤지컬 영화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시카고>는 4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쏠쏠한 흥행성적을 올린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조연상(캐서린 제타 존스)을 비롯해 5개 부문을 수상하며 최고의 뮤지컬 영화로 명성을 날렸다.

<시카고>의 영광을 이은 뮤지컬 영화는 2017년 골든글로브 7관왕과 아카데미 6관왕에 빛나는 <라라랜드>였다.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겸비한 여성배우로 인정 받던 미아 역의 엠마 스톤은 <라라랜드>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연기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라라랜드>는 세계적으로 4억 4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국내에서도 3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2010년대 들어 월트디즈니는 1990년대 자신들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실사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는 뮤지컬영화 업계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 엠마 왓슨이 벨을 연기한 2017년 <미녀와 야수>를 시작으로 윌 스미스가 램프의 요정 지니 역을 맡은 2019년 <알라딘>, 어벤저스의 '해피' 존 파브로가 감독으로 부활을 선언한 <라이온 킹>이 세 편 연속으로 세계흥행 1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이 밖에도 앤 해서웨이와 아만다 샤이프리드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레 미제라블>과 '울버린' 휴 잭맨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쇼맨> 등 성공한 뮤지컬 영화들은 아주 많다. 하지만 굳이 영화화할 필요가 없었던 뮤지컬 영화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캣츠>였다. <캣츠>는 4대 걸작 뮤지컬로 꼽히는 레전드 뮤지컬을 9500만 달러나 들여 영화화했지만 엄청난 혹평 속에 고작 73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비욘세의 실제 이야기와 흡사한 스토리
 
 비욘세는 <드림걸즈> 속 디나처럼 걸그룹 활동을 하다가 솔로로 변신했다.

비욘세는 <드림걸즈> 속 디나처럼 걸그룹 활동을 하다가 솔로로 변신했다. ⓒ (주)영화사 오원

 
영화 <드림걸즈>는 지난 1981년 처음 무대에 올라 이듬해 미국 연극계의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토니상에서 6개 부문을 휩쓸었던 전설적인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유명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로도 활동했던 다이애나 로스가 속했고 훗날 전 세계 걸그룹의 모태가 되는 슈프림스라는 팀의 시작과 성장, 갈등 그리고 화해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로 국내에서도 2009년과 2015년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영화 <드림걸즈>는 캐스팅 당시부터 팝스타 비욘세가 다이애나 로스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디나 존스 역을 맡으며 크게 화제가 됐다. 실제로 비욘세 역시 로스처럼 3인조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로 활동하다가 솔로가수로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다만 팀 해체 후 슈프림스 멤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이애나 로스와 달리 비욘세는 데스티니스 차일드 멤버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다.

<드림걸즈>는 뮤지컬 영화 중에서도 노래의 비중이 유독 높은 작품이다. 뮤지컬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 중에는 대사 몇 마디 후 여지없이 이어지는 노래에 적응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욘세와 제니퍼 허드슨처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에 의해 불려지는 영화 속 노래들은 2007년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3곡이나 올렸을 만큼 완성도가 대단히 높다(하지만 정작 수상은 <불편한 진실>의 멜리사 에더리지에게 돌아갔다). 

<드림걸즈>는 흑인들 인권의 격변기였던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 곳곳에 흑인들의 인권문제가 담겨 있다. 실제로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은 영화의 스토리와 연결돼 있고 지미 얼리(에디 머피 분)는 자신의 노래를 백인가수에게 빼앗기기도 한다. 드림즈의 메인보컬이 에피 화이트(제니퍼 허드슨 분)에서 디나(비욘세 분)로 바뀐 것도 디나가 백인들에게 통하는 외모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드림걸즈>를 연출한 빌 콘돈 감독은 감독과 각본가를 겸하는 인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영화 <시카고>와 <위대한 쇼맨>의 각본을 썼다. 콘돈 감독은 2011년과 2012년에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브레이킹 던> Part1과 Part2를 연출하며 15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세계적으로 12억 73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디즈니의 뮤지컬 영화 <미녀와 야수> 실사판을 연출했다.

비욘세마저 능가한 제니퍼 허드슨의 에너지
 
 제니퍼 허드슨은 <드림걸즈>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영화 속에서 자신의 분량이 이렇게 많을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제니퍼 허드슨은 <드림걸즈>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영화 속에서 자신의 분량이 이렇게 많을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 (주)영화사 오원

 
<드림걸즈>는 개봉 당시 팝스타 비욘세가 다니 존스 역에 캐스팅되며 큰 화제가 됐지만 정작 영화가 공개된 후 관객들에게 가장 큰 환호를 받은 배우는 따로 있었다. 바로 2004년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연기에서는 사실상 신인이나 다름 없었던 제니퍼 허드슨이었다. 영화가 공개될 때만 해도 그 어떤 관객도 허드슨이 최고의 팝스타 비욘세를 능가하는 에너지를 발산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허드슨은 드림즈의 메인보컬이었지만 평범한 외모 때문에 디나에게 메인보컬 자리를 빼앗기고 조금씩 추락하는 에피 화이트를 연기했다. 에피는 홀로 낳은 딸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지만 일자리를 구하러 가서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은 노래 밖에 없다며 가수로서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강단 있는 캐릭터다. 신예에 가까웠던 제니퍼 허드슨은 <드림걸즈>를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를 포함해 무려 6개 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 

걸그룹 드림즈의 결성과 성장, 갈등, 화해의 과정을 그린 <드림걸즈>에서 그룹의 갈등을 조장한 '빌런' 역할을 한 캐릭터는 바로 드림즈가 속한 회사의 대표 커티스 테일러였다.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흑인직원을 채용하고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을 LP로 취입하는 등 개념 있는 제작자로 나오지만 후반엔 디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악덕사장이 된다. 물론 커티스 역의 제이미 폭스는 2년 전 레이 찰스를 연기했던 배우답게 노래실력 만큼은 '명불허전'이었다.

스탠딩 코미디언 출신의 배우 에디 머피는 <드림걸즈>에서 제임스 브라운, 마빈 게이 등 여러 R&B가수들을 모티브로 창조해낸 인기가수 지미 얼리를 연기했다. 얼리는 드림즈의 멤버 로렐(애니카 노니 로즈 분)과 장기불륜(?) 사이였는데 결혼생활 정리문제로 다툼과 화해를 반복했다. 결국 얼리는 커티스와의 음악적 견해차이로 갈등을 빚다가 레코드사와 결별했는데 공교롭게도 지미는 레코드사를 나온 후 마약과다복용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드림걸즈 빌 콘돈 감독 비욘세 제니퍼 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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