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0년의 발걸음 포스터

▲ 동행: 10년의 발걸음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흔히 오케스트라를 서양 고전음악의 정수라고들 한다.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까지 한 데 어우러져 조화롭고 풍요로운 연주를 해내니 그 표현의 폭과 깊이가 다른 음악에 비할 바 없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가진 매력 만큼 구현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특정 부문이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금세 조화가 깨지기 십상이다. 몇몇의 실력이 처지거나 몇몇이 지나치게 나아가면 전체의 완성도가 무너질 때도 없지 않다. 지휘자가 전체를 균형있게 아울러야 하지만 성공한 오케스트라만큼 실패한 오케스트라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요컨대 오케스트라는 인간과 음악이 해낼 수 있는 드물게 섬세한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인천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특별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2011년 창단한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다. 브라인드란 말 그대로 이 오케스트라는 앞이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됐다. 시각장애인 전문 교육기관인 인천 혜광학교가 창설한 오케스트라로, 시작은 시각장애인은 현악기를 다룰 수 없다는 편견으로부터 출발했다. 혜광학교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악기를 들려준다. 불가능에의 도전을 함께 해보자고 독려한다. 그의 제안에 학생들이 응답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제약에도 악기를 들고 조금씩 전진해간다.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시각장애 오케스트라 10년의 기록

<동행: 10년의 발걸음>은 말 그대로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 지난 10년의 기록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져 어느정도 성과를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돌아본다. 모두의 편견에 맞서 시각장애인도 악기를, 특히 현악기를 다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게 첫 걸음이다. 악보를 볼 수 없으니 연주자들은 음악을 통째로 외워버린다. 그로부터 제 음악을 연주하고 곁에 있는 이의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조금씩 오케스트라의 면모를 띄기 시작한다.

눈이 보이는 이들도 하기 어려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해낸다는 건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혜광학교의 초대에 적극 응한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호평을 보내더니 인천시장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들의 지지도 이어진다.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뒤에 든든한 후원자들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도 빼먹지 않는다. 사회공헌활동으로 명성 높은 이건그룹이 오케스트라를 후원해 학생들이 세계적 음악가로부터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면 등도 인상 깊게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음악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며 점차 자존감을 쌓아가는 모습은 음악과 교육이 만나 이룩한 멋스런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인터뷰를 붙여 이끌어가다

국악인 오정해와 협연한 공연들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오정해가 시각장애인들과의 협연에서 느낀 감격을 인터뷰를 통해 풀어놓고 이후 해당 공연장면을 붙이는 식이다. 오케스트라는 점차 수준을 높여가고 지역을 넘어 전국, 나아가 세계로 향해간다.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지난 10년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며 성공적인 성장기란 점에서 영화적 가치가 충분하다. 시각장애인의 악기연주도 놀라운 일인데, 비전공인들이 오케스트라를 이룬다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다만 이 다큐멘터리가 오케스트라의 지난 시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제목인 '동행'과 달리 영화는 곁에서 함께 살핀 다큐멘터리가 되지 못했다. 이사장과 교사, 두어명의 학생들과 지휘자며 공연자, 시장과 국회의원 정도가 인터뷰를 통해 옛 일을 회상하는 게 영화의 기본적 얼개다. 때문에 영화는 현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동행: 10년의 발걸음 스틸컷 ⓒ (주)디오시네마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공연장면 역시 화질과 음감이 떨어지는 자료화면으로 영화의 질감이 잘 살지 않는다. 처음부터 영화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다큐의 완성도를 담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연주자들을 좀 더 가까이서 따라붙지 못한 점도 아쉽다. 인터뷰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정도를 넘어 이들의 일상을 비추었다면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나가며 느꼈을 고충을 보다 깊고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동행: 10년의 발걸음>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존재 자체가, 또 불가능에 도전하는 이들의 도전기가 빛바래지 않는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이는 누구든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의 공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이들의 시도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의도한 것도 바로 그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동행: 10년의 발걸음 (주)디오시네마 이재호 혜광브라인드 오케스트라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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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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