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과 <보헤미안 랩소디> 등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출세작은 지난 1995년에 개봉한 범죄 스릴러 <유주얼 서스펙트>였다. 수천 만 달러가 사라진 부두 폭발사고의 용의자 5명 중에서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는 카이저 소제의 걸음걸이가 바뀌는 반전엔딩을 통해 수 많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이는 범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유주얼 서스펙트>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반전영화는 4년 후 다시 관객들을 찾아왔다. 바로 1999년에 개봉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였다. <식스 센스>는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는 한 문장으로 전 세계 극장가를 충격에 빠트렸고 샤말란 감독은 단숨에 '반전영화의 장인'으로 떠올랐다. 그 후 샤말란 감독의 스릴러 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은 반전이 무엇인지부터 찾으려 했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 이후 영화계에서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제작할 때 반전요소를 넣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는 존 쿠삭과 레이 리오타, 아만다 피트 등이 출연했고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한 범죄 스릴러 <아이덴티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는 영화의 진범이 밝혀지고 영화가 모두 끝난 후에도 관객들의 가슴 한 켠을 찜찜하게 만드는 조금 색다른 반전이 있는 영화다.
 
 <아이덴티티>는 2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배가 넘는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아이덴티티>는 2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3배가 넘는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다양한 캐릭터 연기할 수 있는 배우

뉴욕에서 나고 자란 아만다 피트는 90년대 중반 영화배우로 데뷔해 1996년 <어느 멋진 날>과 <그녀를 위하여>, 1999년 <러브 이즈 매직>, 2000년<나인 야드> 등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2000년대 들어 <위트>,<데이트 스쿼드>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활동범위를 넓히던 아만다 피트는 2002년 <하이 크라임>,<체인징 레이스> 등에 출연하다가 2003년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스릴러 영화 <아이덴티티>에 캐스팅됐다.

아만다 피트는 <아이덴티티>에서 라스베이거스의 매춘부 패리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28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아이덴티티>는 세계적으로 90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아이덴티티>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아만다 피트는 같은 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부유한 독신남 잭 니콜슨을 반하게 한 미모의 경매사 마린을 연기했다.

2003년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인지도가 부쩍 올라간 아만다 피트는 2005년 애쉬튼 커쳐와 로맨스 드라마 <우리, 사랑일까요?>, 그리고 같은 해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과 <시리아나>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TV 시리즈 <엑스파일>의 외전 격인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에서 극장판의 오리지널 캐릭터 다고타 휘트니 요원 역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아만다 피트는 2009년 '재난 영화 전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 2012 >에서 의대생 케이트 커티스를 연기했다. 특히 < 2012 >에서는 <아이덴티티>에 함께 출연했던 존 쿠삭과 이혼한 부부 사이로 출연했다(<아이덴티티>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우연히 만난 사이였다). 2억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돼 7억6900만 달러의 수익을 낸 < 2012 >는 현재까지도 아만다 피트의 배우 커리어에서 최고 흥행작으로 남아있다. 

아만다 피트는 2010년 잭 블랙 주연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잭 블랙의 짝사랑 상대를 연기했지만 영화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고 흥행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00년대까지 영화 위주로 활동하던 아만다 피트는 2010년대 들어 <야망의 함정>과 <벤트>, <굿 와이프> 시즌4 등에 출연하며 주활동 무대를 드라마로 옮겼다. 아만다 피트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4개의 시즌에 걸쳐 제작·방영된 드라마 <브록마이어>에 출연했다. 

공포영화 공식 따르다가 '다중인격'으로 방향전환
 
 아만다 피트가 연기한 패리스는 9명이 사망한 모텔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아만다 피트가 연기한 패리스는 9명이 사망한 모텔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아이덴티티>는 다중인격에 관한 영화다. 사실 영화에서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은 그렇게 특별한 소재는 아니다. 유명한 반전영화였던 <식스 센스>와 <프라이멀 피어>를 비롯해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 한국의 호러 영화 <장화, 홍련>,마블의 슈퍼히어로영화 <인크레더블 헐크>도 이중인격을 다루고 있다. 심지어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 23 아이덴티티 >에서는 무려 23개의 인격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이덴티티>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네바다 주의 허름한 모텔에 모이게 된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11명의 사람들이 한 명씩 살해 당하는 내용을 그린 범죄 스릴러 영화다. 원인을 일 수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생존자들의 공포심은 점점 커지지만 현장에 남겨진 유일한 단서는 카운트다운을 하듯 발견되는 방 열쇠 뿐이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던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희생자는 점점 늘어갔다.

하지만 모텔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중인격으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고 있는 말콤(프루이트 테일러 빈스 분)이라는 연쇄살인 용의자가 만든 인격이었다.

영화 후반에는 말콤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악한 인격' 로즈(고 레이 리오타 분)를 '선한 인격' 에드(존 쿠삭 분)가 응징하고 판사는 말콤의 사형집행을 무기한 연기한다. 하지만 말콤의 머리 속에 있던 진짜 '악한 인격'은 로즈가 아닌 어린 아이 티모시(브렛 로어 분)였다.

사실 단순히 범죄 스릴러 영화로 보면 <아이덴티티>의 이야기 진행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우연히 불특정 다수가 특정 공간에 모이게 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며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공포영화의 뻔한 '클리셰(일관되게 나타나는 경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는 뻔한 공포영화의 공식에 다중인격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자칫 단순한 공포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어제 계단 위에서 거기 없었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오늘도 거기에 없었다. 제발, 그가 가버렸으면 좋겠다"라는 휴즈 먼스의 'Antigonish'라는 시 도입부가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이 대사는 처음에는 말콤의 목소리로, 마지막에는 티모시의 목소리로 나오는데 이는 티모시의 인격이 말콤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영화가 주는 반전의 의미를 이해하면 마지막 내레이션은 더욱 소름 끼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패리스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에드
 
 존 쿠삭은 살인용의자 말콤이 만들어낸 11개의 인격 중에서 '선한 인격' 에드를 연기했다.

존 쿠삭은 살인용의자 말콤이 만들어낸 11개의 인격 중에서 '선한 인격' 에드를 연기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

 
모텔 살인사건은 모두 말콤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사실 <아이덴티티>에서 6명을 죽인 살인 용의자 말콤은 영화 속에서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여배우 캐롤라인(레베카 드 모레이 분)의 운전기사이자 전직경찰 에드와 오렌지 농장을 가꾸며 살길 꿈꾸는 라스베이거스의 매춘부 패리스, 그리고 살인범을 호송 중인 네바다 교정청 소속의 교도관 로즈였다.

특히 존 쿠삭이 연기한 에드는 휴직 중인 경찰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며 모텔에 모인 11명 중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다. 에드는 자신이 말콤이 만들어낸 많은 인격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악한 인격' 로즈를 끝까지 처리하고 유일한 생존자인 패리스에게 다중인격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고 숨을 거둔다(하지만 에드의 희생은 패리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신을 흉악범을 호송하는 교도관이라 했던 로즈는 알고 보니 호송 도중 진짜 교도관을 살해하고 로버트(제이크 부시 분)와 차를 훔치고 달아나다가 폭우 때문에 모텔에 들르게 된 범죄자였다. 영화 후반부 에드와 패리스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 받은 로즈는 에드와의 총격전 끝에 사망한다. 로즈를 연기한 레이 리오타는 1990년 <좋은 친구들>로 유명세를 떨친 배우로 지난 5월 신작 촬영 차 도미니카 공화국에 갔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이덴티티 제임스 맨골드 감독 아만다 피트 존 쿠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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