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러브빌런>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러브빌런>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러브빌런
이옥섭 / 2022 / 극영화 / 8분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메구(야마모토 메구 분)는 한국에 온 지 4년이 되었다. 남자 친구인 교환(구교환 분)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은데 상처를 주기는 싫다. 그가 너무 여리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자신이 먼저 계기가 되어 이별을 말하면 그는 분명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가 스스로 자신을 떠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 기회는 메구, 교환 커플과 다빈(김다빈 분) 세 사람이 차를 타고 어두운 도로를 질주하던 중 생긴다. 졸음이 쏟아지던 교환이 껌을 찾자 마지막 남은 껌을 씹고 있던 다빈이 입 안의 껌을 꺼내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껌 좀 씹으면 잠 좀 깨실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무엇까지 먹을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인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한 이옥섭 감독의 단편 <러브빌런>에는 이별하고 싶지만 먼저 말하기엔 어려움을 느끼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자신이 이별을 먼저 고할 수 없으니, 남은 방법은 상대가 반박할 수 없는 큰 잘못을 빌미로 삼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 방법을 찾는다. 영화는 메구라는 사람이 왜 이별을 하고 싶어 하는지, 두 사람이 지금까지 만나온 시간이 어떠했는지와 같은 곁가지의 이야기들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오직 하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별을 한다고 했을 때, 이 이별의 잘못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주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만 몰두한다.

다빈이 씹고 있던 껌을 교환이 건네받아 씹는 것을 빌미로 삼는 것이 처음의 방법이다. 이런 방법 정도면 쉽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던 교환과의 관계. 하지만 그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정도 선에서 어느 정도 상식적인 이유가 주어졌을 때 헤어지는 게 더 옳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이별을 하고 싶은 메구가 선택하는 다음의 방법은 역시 극단적이다. 자신이 토한 음식을 교환이 먹어야 다시 만나주겠다는 것. 결코 헤어질 수 없는 교환도 그녀의 제안에 응한다. 물론 그녀가 무엇을 토해낼지는 알지 못한 채로.

극단적이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을 계속해서 꺼내는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교환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에 가깝지만, '왜 이런 방법까지 내세우며 메구가 헤어지고 싶어 할까?' 가 오히려 더 궁금해진다.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옥섭 감독의 상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대리운전 브이로그>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대리운전 브이로그>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2.
대리운전 브이로그
구교환 / 2022 / 극영화 / 10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먼저 볼 필요가 있겠다. 다음과 같다.

우리 아버지는 옥수수 농장을 하신다. 아빠는 옥수수 농장을 이어받으라고 하지만 흠… 나는 춤을 춘다. 소정이는 내 춤을 좋아한다. 소정이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극 중 남자(구교환 분)의 목소리를 빌린 듯한 이 시놉시스와 영화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이는 것은 '대리운전'이라는 단어뿐이다. 남자가 실제로 대리운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처음 역시 그의 대리운전 콜이 잡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던 두 여자(박명신, 김재화 분)와 남자 앞에 놓인 2인승 쿠페다. 앞서 시놉시스 내용의 대부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 내용 전부도 딱히 중요해 보이진 않는다. 그를 기다리던 두 여자는 시놉시스에 나왔던 소정의 친언니들이고, 수정은 유부녀이며, 남자는 그런 그녀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감독 구교환의 연출작 <대리운전 브이로그>의 소재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어쩌면 식상하기까지 한 불륜과 그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 상황을 정리하려는 자들과 그러고 싶지 않은 당사자 사이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의 독보적인 연기력만큼이나 매력적이던 연출법이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 영화의 핵심은 불륜의 당사자인 남자가 상대의 가족을 만나 관계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하는 문제보다 남자를 불러낸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이 남자를 포기하게 만드는가 하는 데 있다(물론 남자의 결정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영화는 또 한 번의 비틀어진 시선을 던진다). 결과보다 방식이라니, 2X9(이옥섭 바이 구교환)의 이야기답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다. 굳이 지면을 빌려 이 작품의 시놉시스 전체를 옮겨 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과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프롤로그에 해당할 것 같은 내용이다) 남자의 말을 빌리고 있다는 것. 실제로 시놉시스에게 주어지는 역할과는 어울리지 않는 형식이다. 어쩐지 나는 이 에필로그가 남자의 변명과도 같이 느껴진다. 자신의 불륜을 감추기 위한 변명. 혹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늘어놓은 말(그렇다면 구교환 감독은 영화의 안팎을 모두 사용해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한 셈이 된다). 어쨌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사실은, 이 남자 꽤나 고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무서운 언니들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슈퍼스타 이효리>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슈퍼스타 이효리>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사람냄새 이효리
이옥섭, 구교환 / 2022 / 극영화 / 20분

이 작품은 티빙(Tving) 오리지널 예능 '서울 체크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수 이효리의 영화 주연 데뷔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미 상영회와 프로그램을 통해 전체 편집본이 공개된 바 있기에 작품에 대한 인지도 역시 높은 상황. 인디 신에서 최고의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가 제작 및 연출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불우하게 살아가는 삼 남매 교환(구교환 분), 시영(홍시영 분), 달기(심달기 분)가 슈퍼스타 이효리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첫째 교환의 상태를 이용해 코피로 혈서를 쓰며 생계를 유지하던 중 효리(이효리 분)로부터 의뢰를 받게 되는 것이 이들 만남의 첫 시작이다. 효리의 집으로 초대까지 받게 된 삼 남매는 과거 한 방송에서 만난 인연을 떠올리지만 서로의 다른 기억으로 갈등을 겪는다.

익숙한 배우와 신선한 소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작품은 생각보다 무서운 작품이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모습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가장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는 것은 타이틀에 쓰인 '사람냄새'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이 표현을 처음 만나고 나서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 좋은'으로 이해하고자 하지만 극 중에서 이 표현이 활용되는 방향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한다. 문자 그대로의 '사람냄새'에 가까운 이 표현은 작품 내내 트림을 하는 효리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개를 먹었다는 나쁜 말을 들어서 나쁜 행동을 했을 뿐'이라는 결말과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해낸다.

과거 한 방송에서 만났다는 삼 남매와 효리의 기억이 다른 부분 역시 미디어의 속성과 선을 넘는 대중의 관심과 행동으로 인해 유명인이 겪는 고통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 방송에서 삼 남매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에 막내인 달기에게 받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효리. 달기는 '햄스터'라고 대답하며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그 대답이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시청자들에게 그 대답을 공개하게 되고, 그녀의 선의는 햄스터 80마리라는 선물로 돌아와 삼 남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는 세 사람이 멀쩡한 집을 두고 허름한 텐트를 길거리로 들고 나와 갓길 주차 구역에서 노숙을 하는 이유가 된다.

멈추지 않고 코피를 흘리는 사람과 이를 통해 돈을 벌어 살아가는 가족, 햄스터에게 멀쩡한 집을 내주고 길거리로 내몰리고도 그 햄스터들을 어떻게 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 남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잡아먹을 생각을 했다는 슈퍼스타까지. 극 중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이상한 모습을 갖고 있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가 생각하는 '평범함'과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접하며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고 때로는 비난하거나 그 삶을 난도질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만 찾아다니는 미디어의 속성과 이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오랜 세월 톱스타의 자리에서 자신을 송출하는 미디어의 속성과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는 대중의 속성을 모두 지켜봐 온 이효리라는 사람의 지난 세월과 경험이 모두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또 향유하고 있는 문화와 미디어의 속성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즉흥적이고 일방적이고 또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 모든 이야기가 단지 한 사람의 톱스타에 대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이미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짧은 단편 작품 속에 이렇게 눌러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며, 이 두 감독의 주체할 수 없는 재능을 최대한 오래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다른 두 단편 <러브빌런>과 <대리운전 브이로그>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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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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