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 스틸컷

영화 <탄생> 스틸컷 ⓒ 민영화사

 
영화는 사실과 허구의 중간 어디쯤의 이야기다. 사실을 의미하는 팩트와 허구라는 뜻의 픽션을 합쳐 '팩션'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사극 영화가 전형적인 '팩션'이다. 코로나 방역 지침의 완화와 맞물려 최근 봇물 터지듯 '팩션'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영화 <탄생>이 개봉했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종교 영화지만, 장르상 '어드벤처 드라마'로 분류돼 있다. 영화 홍보물엔 '새로운 세상을 꿈꾼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모험'이라는 소개 글이 덧붙여져 있다.
 
등장인물부터 배경과 내용 전개, 심지어 대사 하나까지 허구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대본은 당대의 사료와 가톨릭 문서 등을 샅샅이 뒤져가며 고증했고, 학계와 종교계 인사들의 검증까지 거쳤다고 한다. 굳이 허구라면, 영화 속 유일한 가상 인물인 김선(송지연 분)과 제작 과정의 CG가 전부다.
 
종교를 소재로 한 상업 영화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지나치게 팩트를 강조하면 호흡이 길어지고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는 건 상업 영화의 불문율이다. 대번 지루하다거나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십상이다. 더욱이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무려 150분이나 된다.
 
가톨릭에 문외한이라면 몰입하는 데 조금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마치 의학을 다룬 드라마에서 자막 없이는 당최 대사가 무슨 뜻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것처럼, 가톨릭의 의례에 관한 장면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물론, 그것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방해가 되진 않는다.
 
 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엄숙하고 딱딱한 종교 영화에 재미의 요소를 입힌 건 누가 뭐래도 화려한 면면의 캐스팅이다. 윤시윤(김대건 역), 안성기(유진길 역), 윤경호(현석문 역), 이문식(조신철 역), 이경영(이응식 역), 김강우(정하상 역), 신정근(임치화 역), 김광규(임치백 역)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망라돼 있다. 영화가 '배우 놀음'이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종교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도 유머러스하게 눙치는 배우들의 대사로 인해 훨씬 편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 장면에 울컥하다가도 이내 살포시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은 그들의 연기에 빚지고 있다. 과잉된 몸동작과 어색한 말투일지언정 그마저 없었다면 내내 바짝 긴장하며 관람했을 성싶다.
 
영화의 제목인 '탄생'은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나왔다는 역사적 의미를 담은 것이다. 마침 작년 2021년은 그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1821년에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846년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여 만에 스물다섯의 나이로 한강 변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러나 '복선의 예술'이라는 영화 장르에서 제목은 늘 중의적 의미를 담기 마련이다. 오로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숭고한 일대기를 소개할 목적이었다면, 상업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설마 종교 영화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19세기 조선의 현실 보여주는 영화
 
 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영화 <탄생> 스틸 이미지. ⓒ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실존했던 등장인물에서 가톨릭이라는 공통된 연결 고리만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종교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역사 영화다. 서세동점의 19세기 초 조선이 처한 현실과 동아시아 정세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어서다. 청년 김대건의 고뇌는 기실 당대 조선 지식인의 처지를 상징한다.
 
'1845년, 조선 근대의 길을 열다.' 영화의 부제로 내건 문구다. 1845년이면, 김대건이 조선인 최초로 신부가 되어 조선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시작한 해다. 곧, 영화에선 김대건 신부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선교 사업을 우리나라 근대의 시작점으로 설정하고 있는 셈이다.
 
학계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역사의 시대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을 전근대와 근현대의 분기점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되면서 우리 역사가 비로소 세계사의 흐름에 편입되었다는 인식에서다.
 
이는 무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의 침탈에 식민지로 전락한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근대라고 하면, 대체로 서구 문물과 제도가 도입된 시기를 의미한다. 청나라를 오가던 사신과 역관에 의해 그것들이 소개되어 자생적으로 조선의 가톨릭교회가 형성되었으니, 영화가 규정하는 근대의 정의가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다만,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선 김대건 신부로부터 시작된 근대는 그러한 교과서적 정의와 다르다고 은연중에 강조한다. 영국이 아편전쟁을 도발해 청나라를 굴복시키고 수많은 이권을 강탈했지만,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신부들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섰다는 식이다. 되레 조선의 민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처럼 그려져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세실 제독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제국주의자들과 신부들을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장면마다 역력하다. 그래선지 전후의 맥락이 종종 끊기는 느낌이 든다. 영화 속 세실 제독이 조선 침략을 위해 선교사들을 이용했다고 분개하는 다블뤼 신부의 말은 과연 고증된 것인지 의문이다.
 
 영화 <탄생> 스틸컷

영화 <탄생> 스틸컷 ⓒ 민영화사


제국주의의 광풍이 전 세계에 몰아치던 19세기,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을 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 건설에 앞장섰고, 문명개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전통문화를 무참히 짓밟았다. 심지어 원주민 학살에 협조한 이들도 드물지 않았다.
 
섣불리 일반화시킬 수 없다는 건 안다. 구한말 헐버트나 베델처럼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도 있고, 반대로 이완용처럼 일본인보다 더 일본을 위해 살다간 한국인도 있는 법이다. 당시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로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의 헌신적 삶을 폄훼해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 묘사되는 그들의 삶은 지나치게 '납작하다'. 그저 조선을 위해 살았고, 조선을 위해 죽었다는 것뿐이다. '조선을 위해'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표현은 관객에게 종교 영화의 한계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기 위해서 '약간의 무리수'는 불가피하다고 여긴 걸까.
 
조선을 위해 산 프랑스 선교사들의 잇따른 순교는 결과적으로 프랑스군의 조선 침략을 불러왔다. 머지않아 일본을 시작으로 서구 열강들과 강제적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끝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다. 프랑스는 선교 활동의 자유를 조약 체결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다. 물론, 식민지 조선에서 선교 활동은 자유였다.
 
영화 <탄생>이 놓친 것

영화에서는 짐짓 모르는 척 눙치고 있지만, 김대건 신부의 '탄생'과 동일시한 조선 근대의 '탄생'은 어찌 됐건 제국주의 침략과 궤를 같이한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서로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평등한 세상"이라는 대사만으로 서구의 근대가 끼친 해악을 덮을 순 없다. 선교사들이 설파한 만민평등의식은 되레 제국주의 침탈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김대건 신부가 도탄에 빠진 조선의 민중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써 가톨릭을 전하려 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인 사제로서 그 역시 조국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그가 꿈꾼 빈부귀천이 없는 평등 세상이 당시 제국주의 국가의 '도움' 없이 조선에 이식될 수 없음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선교 활동의 자유가 조선 민중의 삶을 구원하진 못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박해가 없었다면 봉건적 신분제가 사라지고 김대건 신부가 꿈꾼 만민평등사회가 도래했을까. 신분제의 폐지로부터 시작된 근대적 개혁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우리의 참혹했던 식민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역사 교사라서일까. 청년 김대건의 불꽃 같은 생애보다 그를 둘러싼 시공간적 배경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사제 서품 당시 조선을 위하여 일하게 해달라는 기도와 대륙을 제패한 제국들이 조선을 복속시키지 못한 이유를 조선 민중의 강력한 저항 의지 때문이라고 단언하는 영화 속 김대건의 대사가 '국뽕'으로 읽히는 것도 그래서다.
 
사족. 아무리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기 위한 영화라지만, 조선교구 설립에 공헌한 정하상 바오로와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김대건 신부를 그림자처럼 보필하고 함께 순교한 현석문 가롤로, 역관으로 선교사들의 활동을 도운 조신철 가롤로 등의 업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 건 못내 아쉽다. 이들 모두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 가톨릭 103위 순교성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영화에선 함께 신학생으로 파견됐다 풍토병에 걸려 숨진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물론, 조선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토마스조차 존재감이 미미하다. 김대건 신부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하긴 이들은 아직 시성은커녕 시복되지도 못했다. 최양업 신부는 당시 유일한 조선인 사제로서 전국을 걸어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다 마흔의 나이에 객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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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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