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넘버 3>의 마동팔 검사로 영화계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배우 최민식은 <쉬리>의 박무영과 <파이란>의 이강재, <취화선>의 장승업,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최익현, <명량>의 이순신 등 선역과 악역을 가리지 않고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다. 모두 최민식의 연기인생은 물론이고 한국영화 역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명연기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기억하는 최민식의 진짜 '인생캐릭터'는 따로 있다. 바로 지난 2003년 박찬욱 감독이 연출했던 <올드보이>의 오대수다. '말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15년간 사설감옥에 갇힌 남자 오대수를 완벽하게 연기한 최민식은 <올드보이>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해 국내외 9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당시 최민식과 <올드보이>를 통해 한국영화의 팬이 된 해외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최민식은 <올드보이>를 통해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공공의 적> <오아시스>의 설경구와 함께 '남자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2003년 <올드보이>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던 최민식은 2004년 신인감독의 잔잔한 휴먼드라마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최민식이 눈과 어깨에 잔뜩 들어 있던 힘을 빼고 시골 중학교의 관악부 선생님으로 변신했던 류장하 감독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최민식이 <올드보이>의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최민식이 <올드보이>의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 청어람

 
시골학교 배경 영화가 가진 묘한 매력

지방의 인구감소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작은 소도시나 군 단위에 위치한 학교들 역시 적은 학생수 때문에 학교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지방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숫자가 점점 줄어 들면서 한 명의 선생님이 학년 전체 학생들을 모두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시골의 작은 학교에는 그 나름의 '낭만'이 있고 이 때문에 영화에서도 시골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심심찮게 제작되곤 한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연기본좌' 이병헌의 풋풋하던 시절을 볼 수 있는 <내 마음의 풍금>은 강원도 산 속 마을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에 부임한 젊은 총각선생님을 짝사랑하는 17살 늦깍이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충무로의 떠오르는 젊은 배우였던 전도연은 <내 마음의 풍금>으로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대세'로 떠올랐고 청춘스타 이병헌 역시 영화 쪽에서 첫 번째 흥행작을 배출했다.

시골분교로 부임한 촌지교사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 차승원 주연의 <선생 김봉두>도 시골 초등학교의 매력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선생 김봉두>는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장규성 감독의 경험담이 담긴 시나리오에 처음으로 단독주연을 맡은 차승원의 물 오른 코믹 연기, 그리고 시골분교 학생 역을 맡은 아역배우들의 순수한 연기가 더해지면서 전국 24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9년에 개봉해 12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킹콩을 들다>는 시골학교의 역도부 코치로 부임해 2000년 부산 전국체전에서 여자 중·고등부에 걸린 15개의 금메달 중 14개를 휩쓸었던 고 정인영 코치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범수가 시골여중의 역도부 코치로 부임한 1988년 역도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실제로 <킹콩을 들다>를 이범수의 '인생연기'라고 평가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시골마을과 학교가 언제나 대중들에게 정겨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8년에 개봉했던 영화 <동네사람들>에서 기철(마동석 분)이 기간제 체육교사로 부임한 시골마을의 여자고등학교는 외지사람을 배척하고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가득한 곳으로 나온다. 물론 영화 속에서 기철은 복싱 동양챔피언 출신이기 때문에 마동석이 휘두르는 '정의의 주먹'으로 군수(장광 분)의 비리는 어렵지 않게 밝혀진다.

좋은 배우들이 선보이는 착한 이야기
 
 최민식은 트럼펫을 직접 배우며 영화 속 OST에서도 직접 트럼펫을 연주했다.

최민식은 트럼펫을 직접 배우며 영화 속 OST에서도 직접 트럼펫을 연주했다. ⓒ 청어람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던 현우(최민식 분)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랑하는 연인과도 헤어지고 생계를 위해 삼척의 중학교 관악부 임시교사로 부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최민식의 차기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극적인 이야기의 굴곡 없이 흘러가는 영화의 구성 때문에 밋밋하다고 느끼는 관객이 적지 않았고 실제로 전국 71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관악부를 '밴드부'라고 부르며 관악부가 면학분위기를 흐린다고 생각하는 당직 선생(엄효섭 분)을 제외하면 <꽃피는 봄이 오면>은 착하고 따뜻한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하는 착한 영화다. 상업영화로서 변화무쌍한 스토리 진행은 없지만 주인공 최민식을 중심으로 김호정, 장현성, 윤여정 배우, 김영옥 배우 등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명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흔히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인격적으로 뛰어나고 능력 있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어 어떤 성과를 이루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는 오히려 현우가 도계와 순수한 관악부 아이들에게 동화되는 과정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처음 도계에 왔을 때 자판기 커피를 마시다가 바로 뱉었던 현우가 영화 말미에는 같은 커피를 맛있게 먹는 장면은 그만큼 현우가 도계생활에 익숙해졌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극 중에서 주인공 현우가 트럼펫을 전공했고 영화의 배경이 중학교 관악부이다 보니 영화 속에서 음악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음악은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허진호 감독의 <행복>, 김태용 감독의 <만추> 등의 음악을 담당했던 조성우 음악감독이 맡았다. 특히 영화의 메인테마곡 <옛 사랑을 위한 트럼펫>은 여러 캐릭터들에 의해 영화 내내 수 차례 반복해서 연주된다.

<꽃피는 봄이 오면>을 연출한 류장하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2기 출신으로 11기 봉준호, 장준환 감독보다는 한 기수 후배, 13기 김태용, 민규동 감독보다는 한 기수 선배다. 영화아카데미 9기 출신 허진호 감독 밑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 조연출, <봄날은 간다> 조연출과 각본에 참여했던 류장하 감독은 2004년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데뷔했고 2008년에는 강풀웹툰 원작의 <순정만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아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어머니
 
 경험이 많지 않은 신예배우였던 장신영에게 <꽃피는 봄이 오면>은 첫 번째 상업 장편영화였다.

경험이 많지 않은 신예배우였던 장신영에게 <꽃피는 봄이 오면>은 첫 번째 상업 장편영화였다. ⓒ 청어람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현우의 어머니는 다 큰 현우에게 소소한 잔소리를 하는 전형적인 어머니지만 지방에서 혼자 사는 아들의 집에 반찬을 싸 들고 방문할 정도로 다정한 면도 가지고 있다. 특히 인생에 회의를 느낀 현우가 밤 늦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라고 푸념을 늘어놓자 어머니는 현우에게 "어이구... 넌 지금이 처음이야. 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는 현답을 내놓기도 했다.

<선생 김봉두>와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아역배우 이재응은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관악부의 트럼펫 연주자 재일 역을 맡았다. 떡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밤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일은 본의 아니게 끼니를 거를 때가 많은데 '혼밥을 싫어하는' 현우가 재일의 끼니를 챙겨주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더욱 각별해졌다. 

도계로 들어가는 초입엔 아담한 약국이 하나 있는데 현우는 이곳에서 소화제를 구입하면서 약사 수연과 인연을 맺었다. 휴먼드라마라는 영화의 장르를 잊은 일부 관객들은 현우와 수연의 러브라인이 그려질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현우에게는 영화 초반부에 소개된 연희(김호정 분)라는 연인이 있다. 도계의 따뜻함을 상징하는 인물 수연을 연기한 장신영은 <꽃피는 봄이 오면>을 통해 청룡영화상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실미도>의 684부대 막내 훈련병을 연기하며 졸지에 천만 배우가 된 김강우는 2004년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도계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주호 역을 맡았다. 주호는 현우와 수연의 사이를 의심해 현우에게 주먹을 날리다가 경찰조사를 받기도 한 열혈 청년으로 친구 사이인 수연을 남몰래 짝사랑한다. 영화 막판에는 현우의 차를 정비해 주고 현우에게 사과를 하면서 쌓였던 오해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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