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 NEW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크린에 대고 박수를 보냈다. 러닝타임이 2시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작품인데도 도중 시계 한 번 쳐다볼 짬 없이 몰입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박진감에 당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지금껏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단연 첫 손에 꼽을 만하다.
 
'인조는 청 문물의 도입을 주장하는 소현세자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인조가 총애하는 궁녀 소용 조씨가 세자와 세자빈을 무시로 헐뜯었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안 돼 병을 얻었고 그로부터 며칠 만에 죽었다. 세자의 시신은 온몸이 새까맣고 이목구비에서 피가 쏟아졌는데, 낯빛이 중독된 사람 같았다. 세자빈은 훗날 효종이 된 새 세자를 저주했다는 이유로 인조로부터 사약을 받았다. 세자의 아들인 원손 역시 인조가 유배를 보낸 뒤 죽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른바 '소현세자 독살 사건'에 대한 모든 것이다. <인조실록>의 기록 중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은 그 비중에 견줘 유난히 소략하다. 당시 세자의 후손 역시 절멸되어 역사적 맥락을 '야사' 등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다. 다만,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영조처럼 소현세자 역시 아버지인 인조가 죽였다는 걸 의심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달랑 이 여섯 문장의 역사적 사실만으로 빼어난 대하 사극 한 편을 직조해낸 감독에 경의를 표한다. 그의 정교하고도 묵직한 영화적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기록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의 공백을 도무지 허구 같지 않은 허구로 기막히게 채워냈다. 심지어 주인공 천경수(류준열 분)가 실존 인물인 양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류준열과 유해진, 최무성, 조성하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력을 상찬하는 건 되레 그들에게 누가 될 것이다. 그들의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귀와 눈을 내내 붙잡는다. 허투루 지나가는 장면이 단 한 군데도 없다. 흑백 영화인 양 장면의 2/3가 어두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하는데도 계속되는 반전의 묘미가 어둠을 걷어내고 있다.
 
압권을 하나만 꼽기도 어렵다. 탄성을 자아내는 주옥같은 순간이 많아 누구든 주저하게 될 것이다. 어의 이형익(최무성 분)이 세자에게 침을 꽂을 때 촛불이 꺼지는 장면, 인조(유해진 분)가 세자빈 앞에서 능청스럽게 이형익의 칠칠맞음을 질타하는 장면 등 침을 꼴깍 삼키게 되는 순간이 한둘 아니다.
 
천경수가 원손을 살리기 위해 아픈 동생에게 가지 않고 다시 궁궐 안으로 달려가는 장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원손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권력 나눠 먹기에 골몰하는 인조와 최대감을 쳐다보는 천경수의 눈빛은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천경수가 인조와 최대감을 비롯한 대소 신료들을 향해 외치는 장면이다. 

영화가 끝난 뒤 깨달은 것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 NEW

   
처음엔 '올빼미'라는 영화 제목이 무척 낯설었다. '소현세자 독살 사건'과 도무지 연결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빼미'라고 하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떠올리게 돼서다. 어설픈 공부가 가져온 게으른 지적 관성이 영화적 상상력을 방해하고 있는 꼴이라 자책하면서 객석에 앉았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영화 제목 '올빼미'가 바로 그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주지하다시피, 미네르바는 지혜와 철학의 여신이고, 올빼미는 미네르바를 상징한다. 분명 황혼이 깃들 무렵에 나래를 편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의 현현을 익숙한 역사를 통해 증명하려는 영화였다.
 
역사적으로 소현세자의 죽음은 엄혹한 시대 상황과 군주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파국이었다. 망국일지언정 명나라를 섬겨야 한다는 명분과 신흥 대국 청나라의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는 실리 사이에서 불안해하던 인조는 애꿎게 세자를 희생양 삼았다. 그 와중에도 인조에 맞서 세자를 두둔하던 세력들조차 자신의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 됐다.
 
볼모였을지언정 선진 문물을 경험하고 환국하여 새 세상을 꿈꾸던 소현세자와 세자빈은 조선의 노회한 기득권 세력에게 조리돌림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혈육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데다 끝 모를 권력 다툼으로 경세가로서 그의 지혜와 철학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영화에선 그려지지 않지만, 참담한 그의 처지를 통해 당시 백성의 고통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없다지만, 소현세자가 왕위를 계승했다면 이후 조선 사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는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흔히 다뤄지는 수행평가의 단골 주제다. 교과서 서술도 대개 비슷한 뉘앙스지만, 아이들도 주저 없이 실사구시의 학풍이 정착되어 공리공론의 폐습이 사라졌을 것이라 답한다. 몇몇 아이들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망국의 시작점으로 단언했다.
 
비유컨대, 소현세자를 '미네르바의 올빼미'로 여기는 셈이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는 그의 황망한 죽음을 무심히 적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나마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 차마 역사적 사실을 비틀 수 없었기에, 그를 대신할 가상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등장시킨 듯하다. 그것도 밤에만 앞을 볼 수 있는 진짜 올빼미로.
 
소현세자는 비명에 죽었지만,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던 천경수는 진실을 증언한다.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영화 <올빼미>의 한 장면. ⓒ NEW

 
'소현세자도 학질로 죽었고, 인조도 4년 뒤 학질로 죽었다.'
 
영화는 관객에게 묵직한 주제 하나를 건네며 매조지었다. 그저 실록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적은 거지만,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맞혀보라는 감독의 '시험 문제'로 여겨졌다. 소현세자는 죽임을 당한 뒤 학질이라는 병명을 뒤집어쓴 거고, 얄궂게도 인조는 그에게 뒤집어씌운 병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을 대조하려는 거다.
 
그러나 혈육조차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한 권력에 치를 떨었다거나 단순히 인과응보의 메시지로 읽었다면,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미네르바의 올빼미' 천경수는 비정하고 무능하고 불의한 인조의 행태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존재다. 소현세자는 권력이 죽였지만, 그 권력은 오래지 않아 민심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저명한 이탈리아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일갈했다. 역사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그 역사를 모티프로 한 영화도 마찬가지일 테다. 이 영화를 보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고, 영화 속 인조와 기득권 세력이 지금의 권력자들과 겹쳐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난세일수록 영웅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조변석개하는 부박한 민심이라도 우리 사회 어디선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갯짓을 하며 솟구쳐 오르길 염원한다. 천경수의 말과 행동에 빙의되어 가슴 졸이는 관객들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영화는 '올빼미'라는 세 글자를 스크린에 새기면서 끝난다. 언뜻 관객을 향해 '올빼미'가 되라는 주문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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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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