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밖은 겨울> 메인포스터

영화 <창밖은 겨울> 메인포스터 ⓒ 영화사 진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현실의 시간은 결코 뒤로 돌아서는 법이 없다. 이미 지나온 길에는 미련 따위 없다는 듯 항상 앞만 바라보고 걷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람은 다르다. 잠시 멈추는 법도 없이 나아가기만 하는 시간 위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종종 뒤를 돌아보곤 한다.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로 시선이 닿는 탓인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위에 놓여있기만 하는 탓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가끔 생각하고 떠올린다. 추억, 기억 혹은 미련과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에 놓여있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리는 텁텁하고 쓰라린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행위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고향 진해로 내려와 시내버스를 몰고 있는 석우(곽민규 분)는 어느 날 터미널에서 누군가 두고 간 MP3를 발견한다. 뒷모습만 얼핏 봤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아는 사람인 듯한 모습에 그 길로 유실물 보관소로 달려가 담당자인 영애(한선화 분)에게 그 유실물을 맡긴다. 영애는 그 MP3가 분실된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석우는 그럴 리가 없다며 주인이 찾아오길 기다리자고 한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라고 믿고 싶은 그다. 두 사람은 그렇게 대합실에 남겨진 MP3를 매개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화 <창밖은 겨울>은 사랑이라는 감정 위에 놓여 있는 두 사람의 거리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사소한 이야기조차 금방 퍼질 만큼 작은 회사 안에서 서로 말도 한번 나눠본 적 없던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이 극의 중심에 있다. 여기에 하나의 레이어가 더 놓인다. 그 과정에서 점차 드러나는 두 사람 각자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다. 지나온 시간에 두고 온 석우와 영애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바라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소재다. 누군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할 때 생기는 어떤 사소한 궁금증과 개인적인 사정과 배경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를 통해 이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각자의 유실물로 치환되어 극 중 MP3의 상징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연결고리가 된다.

"MP3라고 했죠? 근데 그거 그냥 버린 거 아니에요? 여기 비싸고 좋은 것들도 많은데 절대 찾으러 안 와요. 사실은 버리고 싶은데 잃어버린 척하는 거 아닐까요?"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2.
영화를 들여다볼 때 인물이 놓인 자리를 자세히 관찰하면 의외의 것들을 얻게 될 때가 있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석우와 영애다. 고향으로 내려와 버스 일을 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 남자와 매표소에서 일을 하면서 유실물 보관소 담당이기도 한 여자. 감독은 두 사람을 왜 이런 장소에 놓아두었을까? 자고로 운전기사라면 지역에서 같은 노선만 오래 운행한 사람을 제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고, 유실물 보관소 같은 귀찮은 일이야 누구도 나서서 맡으려 하지 않을 테니 돌아가면서 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영화가 두 사람을 이런 애매한 자리에 세우고 굳이 어떤 책임을 부여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답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유실물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정확하게 유실물이라는 대상이 놓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MP3다. 어떤 승객에 의해 대합실에 존재하게 된 (버려진 것인 것 잃어버린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없고, 이후에 두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세우게 되므로) 휴대용 기계. 이 작은 기계는 영화의 처음에서 석우와 영애를 잇는 장치이자 작품의 커다란 뼈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MP3라는 유실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이탈하더라도 두 사람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대상의 존재 가치가 여기에만 있다면 영화는 그 중심에 커다란 동공(洞空)을 남긴 채 그저 그런 로맨스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작품이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데에는 하나의 이유가 더 존재한다. 소재의 속성을 인물의 내러티브와 연결시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일이다.

유실물은 누군가 잃어버린 물건을 뜻하는 단어다. 어딘가 두고 가져가지 못했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렸거나, 심지어는 의도를 갖고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버리고 간 물건도 모두 여기에 속한다. 영화는 이 유실물의 속성을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거 어떤 지점에 대한 기억과 미련의 지점에 연결시키고자 한다. 이 글의 처음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멈추는 법이 없는 시간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장소(때)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에 비추어 말이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두고 온 것인지, 타인에 의해 망가진 것인지, 또는 도망쳐 온 것인지와 같은 이유에 대해서는 극 중 석우와 영애가 그렇듯 각자의 사정에 맡긴다. 영화 속 유실물은 그렇게 존재의 가치를 하나 더 갖는다.

MP3라는 유실물이 존재하게 된 배경을 두고 자신들 역시 추정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기라도 한 듯, 버려진 것이라고 또는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장면을 통해 석우와 영애는 유실물이 가진 내적 속성을 서로 나누어 갖게 되고, 이 지점으로부터 각자의 과거에 놓인 이야기를 스크린 앞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유실물의 배경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보이는 두 사람의 태도는 각자의 과거에 놓인 유실물(감정)을 지금껏 어떤 방식으로 대해 왔는지를 암시하고 있는 복선이기도 하다. 이 영화 <창밖은 겨울>에서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유실물은 꽤,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3.
유실물의 속성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MP3가 남겨지게 된 배경에 대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선을 둔다. 과거의 개인적인 사건이 연결된 석우에게는 이 물건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고 믿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의 유실물이 버려진 것이라 믿고 있는 영애는 그 반대다. 누구도 찾으러 오지 않는 유실물 보관소의 수많은 물건을 오래 지켜봐 온 입장. 더 이상의 기다림과 믿음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유실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한 사람은 정(正)의 방향으로 또 한 사람은 반(反)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극 중 두 인물의 행동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남겨진 MP3의 수리와 행방의 문제로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움직이지만, 실제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석우뿐이다. 영애 역시 어떤 행동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유실물의 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석우의 모습에 이끌린 행동에 가깝다.

앞서, 이 영화에서 극 외부에 그려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와 극 내부에 놓여 있는 두 사람의 과거 무엇에 대한 이야기는 연동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남겨진 것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남자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과거에 놓인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지금까지도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떨어지지 못한 채 계속 붙들려 있는 석우와 굳이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추려고 하지 않는 영애다. 유실물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처럼 과거를 대하는 모습까지 다른 두 사람.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과거를 대하는 각자의 태도를 수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영화감독의 일과 전 여자 친구 수연, 그리고 아버지와 탁구다. 아직 발목에 매달려 있는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기 위해서, 또 모른 척했던 과거를 일부러 꺼내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 위해서. 이번에는 두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영애 씨 말대로, 그거 버려진 거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쉽지는 않다. 지금까지 남겨진 과거에는 그 과거대로, 오래 지워내고자 했던 과거에는 또 그 과거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남는다. 코앞에 놓인 탁구대를 보고도 모른 척하던 영애의 마음과 전파사와 고물상을 수소문해가며 어떻게든 그 MP3를 고치고자 했던 석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유실물이 두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이 연결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석우와 영애는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서로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찾았던 태성 문구사의 할아버지 말이 정확하다. 골목을 돌고, 돌고, 또 돌고. 목적지를 위해 길을 찾는 일이 그러하듯 사람의 마음도 다를 바 없다. 고치자고 마음만 먹으면 수소문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라켓을 잡고자 하면 팔목 보호대를 나눠서 낄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모든 일이 하염없이 걷고 또 걷는 일과 같고, 돌고, 돌고, 또 돌아야만 하는 험난한 과정과도 같지만. 그날 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같이 자전거도 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놓지 않는 마음이다.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영화 <창밖은 겨울> 스틸컷 ⓒ 영화사 진진


04.
정(正)과 반(反)이라는 단어로 두 사람을 표현했던 것은 단순히 드러나는 행동에 대한 것이다. 적어도 두 사람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내면의 결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영화 역시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고 있다. 불쑥 등장해 자신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기사와 달리 두 사람의 거리는 제법 오랫동안 일정하게 유지된다. 유실물의 배경에 대해 버려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던 영애가 이제 정말 돌아갈 자리가 없는 유실물을 집으로 가져와 각자의 이름을 붙여주는 장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후반부에서 두 사람 사이에 항상 놓이던 빈 의자 한 개만큼의 거리가 사라졌을 때, 관객은 내적 환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타이틀대로, 창밖의 계절은 자연스럽게 바뀌어 간다. 시간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계절 또한 그 변화를 멈추는 법이 없다. 예외도 없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갈수록 봄과 가을의 길이가 짧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순서도 모양도 항상 우리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의 계절이 창밖으로 지나고 있다. 매년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조금은 지루하고 식상할 법도 한데.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계절이 있을 뿐, 이 계절의 순환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작품이 다시 영화 밖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과 이런 자연의 섭리를 너무도 잘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계절의 외형은 반복되지만, 그 계절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기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과 지나온 어떤 계절에도 유실물과 같은 이야기를 남기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짙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때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품에 안아 마음을 키우며 성장한다. 이상한 사람이었던 공 기사와 이제 제법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옆에서 걸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가듯이.

"영애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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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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