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나 이제 유재헌하고 리문성도 헛갈린다. 유재헌하고 리문성이 다른 게 뭘까 생각하다 보니까 인생이랑 연극이랑 똑같은 거 아닌가 내 인생도 한 편의 연극이 아닌가 싶고." (재헌, 7회)
 

KBS 드라마 <커튼콜>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평생 북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머니 금순(고두심)을 위해 북에서 온 손자 리문성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재헌(강하늘)이 일상이 연기가 되면서 느끼는 혼란감을 표현한 대목이었다. 재헌은 문성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지금의 연기에 투영하며 '진짜 삶'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에서 재헌보다 더 '진짜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금순의 남한 손자녀들인 세연(하지원), 세준(지승현), 세규(최대훈)다. 이들 삼남매는 할머니 금순과 부모의 과업이었던 호텔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삶의 자세 또한 모두 다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삶은 타인의 욕망을 대신하거나, 감정에 매몰되거나 아니면 삶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나는 극 중 현실을 사는 이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재헌보다 더 '가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연 : 타인의 꿈을 내 것으로 삼은 삶
 
 세연은 호텔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세연은 호텔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온 인물이다. ⓒ KBS

   
금순의 손자녀 중 막내인 세연은 그 누구보다 할머니가 세운 낙원호텔에 애정을 지닌 인물이다. 미술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지만, 세연은 호텔을 키우고 지켜가는 걸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다. 이런 세연은 둘째 오빠 세규가 말하듯 "업무용"미소를 짓고 살아간다(5회). 도대체 세연은 왜 기계적인 미소에 익숙해진 걸까. 이에 대한 답은 6회 재현과의 대화 속에서 잘 드러났다. 세연은 6회 문성을 연기하는 재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게 많아지고 지켜야 할 게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갖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그럼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게 되거든."
 
이는 세연이 자신의 '진짜 감정'이 아닌 채로 살아왔음을 고백한 부분이었다. 세연이 자신의 감정과 접촉하지 못하고 살아온 이유는 이렇다. 금순의 뜻을 이어 호텔을 경영하던 삼남매의 부모는 해외 호텔체인 답사를 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세연의 큰오빠 세준은 호텔 때문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 믿고 호텔을 미워한다. 이에 세연은 자신만이 호텔을 지킬 사람이라 여기며 지금껏 살아온다. 세연은 그토록 좋아하는 미술을 "어째서 하지 않냐"는 재헌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아무리 가슴이 뛰어도 내가 호텔을 버리면 어떡해." (6회)
 
이는 세연이 타인을 지향하는 자아를 가지고 있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세연에겐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 중요한 타인인 부모 그리고 할머니의 욕망이 더 중요했고 이를 자신의 꿈으로 삼았던 것이다. 물론, 부모의 뜻을 이어받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연은 이 선택에 자신만의 의미를 불어넣지 못한 듯싶다. 단지 '나 밖에 없으니까'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결국 '의무감'에 묶여 살아갈 수밖에 없게 한다. 호텔을 선택한, 자신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 세연은 호텔과 자신의 삶을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의 감정과도 접촉하며 '진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세준 : 분노에 매몰된 삶
 
세연이 의무감에 자신의 감정과 접촉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면 장남 세준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물이다. 세준은 할머니를 애틋해 하면서도 할머니의 모든 삶이 담긴 낙원호텔을 매각하려 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존재인 이 집의 집사 정숙(배혜선)에게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평생 북에 남겨둔 남편 자식 기다리는 자리에 등대 같은 호텔 올릴 때까지 쉬지 않고 몰아쳤죠. 그 바람에 엄마 아빠 그렇게 가신 거예요. 우릴 할머니 도구로 쓴 거잖아요. 세연이 몰아붙여서 등대 올렸으니까 할머니 소원 푼 거죠." (6회)
 

이 말엔 세준이 부모의 죽음을 분노로 애도하고 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세준은 이 분노에 매몰되어 있다. 왜 이토록 화가 났는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화난 감정' 속에 빠져 살고 있기에 그의 사고는 좁아지고 말았다. 분노라는 감정이 이끄는 대로 상황을 곡해하고 미움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준의 말대로 그가 호텔을 싫어하게 된 이유가 부모의 죽음 때문이라면, 그의 분노는 사실은 슬픔의 표현일 테다. 감정표현이 적고, 권위 있는 장남의 모습을 유지하려 하는 그에게 슬픔은 드러내기 힘든 감정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슬픔을 분노로 치환해 표현한다. 그리곤 그 분노에 갇혀 버린다. 이런 세준에게 필요한 건 분노 뒤에 숨겨진 슬픔을 알아차리고 이를 표현하며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만 세준 역시 '진짜 삶'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준은 자신의 진짜 감정은 모른 채 분노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세준은 자신의 진짜 감정은 모른 채 분노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 KBS

 
세규 : 쾌락을 회피의 수단을 삼은 삶
 
한편 둘째 세규는 삶을 회피하는 인물이다. 그는 세연, 세준과는 달리 호텔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클럽에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며 노는 것으로 삶의 시간을 채워간다. 그러다 만난 여성들에게 따귀를 맞는 창피를 당하면서도 그는 이런 삶을 내려놓지 않는다. 세규의 이런 모습은 세연과 세준의 호텔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긴 하다. 8회 재헌에게 스스로 이렇게 말하듯 말이다.

"난 누구한테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실실 웃는 걸 선택한 거지."
 
문제는 세규가 이런 전략을 호텔 경영 뿐 아니라 자신의 삶 전반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과 문제들을 지긋이 바라보지 못하고 오직 쾌락을 통해 잊으려고만 한다. 그리고 이를 이렇게 항변한다.
 
"내일 일은 모르는 거거든. 그렇게 죽어라 열심히 살다 허무하게 퍽 죽을 수도 있는데. 이 얼마나 부질없고 억울하냐" (4회)
 
어쩌면 그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삶의 허무를 느끼고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사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흘려보내는 것'에 불과하다. 재현의 말마따마 "억울하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억울한 것"(4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세규는 주로 다른 가족들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하는데 언뜻 비치는 그의 시선은 참 따뜻하고 정확하다. 나는 세규가 자신의 따뜻함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를, 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호텔과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말이다.
  
 세규는 삶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세규는 삶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며 살아간다. ⓒ KBS

 
'진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재헌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연극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정신분석가 박우란이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에서 적었듯, 진짜 삶, 그러니까 주체적인 삶이란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연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재현이야말로 '진짜 삶'을 살고있는 것일테다. 반면, 삼남매는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왜 이런 욕망과 분노를 품고 있는지, 왜 삶을 피하려고만 하는지 고민해보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진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행인 건 이들 곁에 이런 모습을 평가하지 않고 지켜봐주는 금순이 있다는 것이다. 금순은 호텔경영을 둘러싼 갈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세연과 세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이들의 모습을 반영해줄 뿐이다. 세규에게도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훈수두지 않는다. 모두를 존중해주는 금순 덕분이었을까.

드라마의 8회에선 마침내 이들 삼남매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세연은 8회 "호텔은 내 삶의 전제"였다고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세준은 믿었던 김 이사(손종학)의 배신을 계기로 자신이 가족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세규 역시 "할머니가 떠난 후엔 낙원그룹 둘째가 아닌 박세규로 살아야 한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척 반가운 변화들이었다.
 
이들이 좀 더 치열하게 성찰하고 고민하며 '진짜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짜 현실 속 우리들에게도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삶을 마주하며 고민하는 '진짜 삶'을 살아내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커튼콜 하지원 지승현 최대훈 진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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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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