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위로하는 벤투 감독 2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한국의 벤투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 손흥민 위로하는 벤투 감독 2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한 한국의 벤투 감독이 손흥민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록 패했지만 명승부였다. 2골 차로 끌려가던 게임을 순식간에 따라붙어 원점으로 돌리는 저력을 발휘했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은 28일 오후 10시(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에 위치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가나에 2-3으로 패배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승점 1점에 머물러 16강 전망이 사실상 어두워졌다. 최종전 상대인 포르투갈이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16강을 가장 먼저 확정한 가운데, 한국은 포르투갈을 이기더라도 '경우의 수'에 따라 우루과이-가나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또한 한국은 역대 월드컵 2차전 무승 기록을 11경기(4무 7패)째로 늘리며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가나전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와 '스결말(스포츠는 결과로 말한다)' 사이에서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는 경기였다. 벤투호는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 이어 또 한번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이번에도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힘은 부족했다. 가나전은 한국축구의 현 주소와 함께 더 발전한 부분과 퇴행한 부분이 복합적으로 공존한 경기였다.
 
긍정적인 부분은 월드컵에서 상대와 정면승부로 당당하게 맞서는 '능동적인 축구'를 했다는 점이다. 가나전 초반 20분은 그야말로 한국이 완벽하게 지배한 경기였다. 한국은 코너킥만 6개나 얻었내고 4개의 슈팅을 때리며 가나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흐름이 왔을 때 결정을 짓지 못했고, 전반 24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모하메드 살리수에게 선제골, 10분 뒤에는 조르당 아이유의 크로스에 이은 모하메드 쿠두스의 헤딩 추가골을 허용했다.
 
전반동안 한국은 약 55%의 점유율로 가나에 우위를 점했고, 체계적인 빌드업으로 상대에게 찬스를 많이 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반 유효슈팅 2개로 2골을 넣은 가나의 역습에 호되게 당했다. 특히 김진수-김문환이 버틴 측면이 가나의 피지컬과 스피드에 속수무책으로 뚫린 게 치명타였다. 한국이 이날 허용한 3골 중 2골이 풀백들이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와 상대의 공간침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벤투 감독이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지난 4년간 추구해온 '점유율 축구'와 '철저한 베스트 11 위주 전술'이 과연 월드컵에서 얼마나 통했는가하는 냉정한 진단이다. 벤투 감독은 줄곧 후방 빌드업을 통하여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를 추구했고, 이를 위하여 자신이 선호하는 선수들 위주로 일찍부터 주전 라인업을 거의 고정화했다.
 
이러한 벤투 감독의 '플랜A'는 지역예선까지는 통했지만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 겉보기에 점유율이 높아지고 팽팽한 경기였기에 보기에는 좋았을지 몰라도 정작 '실리'는 떨어졌다.
 
우루과이와 1차전 무승부로 잠시 벤투 감독의 점유율축구가 성공했다는 과대평가가 쏟아졌지만, 정작 우루과이는 이후 포르투갈전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약했다. 루이스 수아레스 등 공격진의 노쇠화로 인하여 전방압박과 에너지 레벨이 기대 이하였다.

그럼에도 한국전에서 골대를 두 번이나 맞히는 행운이 따라준 덕에 겨우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가나전에서는 점유율에서 크게 앞서고도 벤투 감독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선수비 후역습의 '철퇴축구' 세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것이 벤투호가 월드컵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객관적인 팩트다.
 
손흥민과 김민재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벤투호의 고질병인 '골결정력 부족'과 '수비불안'은 끝내 가나전에서 발목을 잡았다. 벤투호의 자랑이던 유럽파 공격진 삼각편대(손흥민-황의조-황희찬)는 월드컵을 앞두고 하나같이 폼이 정상이 아니었다. 황희찬은 부상으로 1, 2차전을 모두 결장했고, 황의조는 이적문제와 슬럼프로 부진이 길어지며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서 결정적인 노마크 찬스를 허공에 날다. 안면골절상을 입은 손흥민은 마스크 투혼을 펼쳤지만 역시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수비진도 벤투호에서 오랫동안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김진수와 김영권이 월드컵을 앞두고 폼이 극도로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김민재의 과부하를 초래했다. 김진수는 도움 하나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경기 내내 부정확한 크로스와 피지컬 열세를 드러내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또한 미드필드진은 정우영-황인범 등이 최선을 다했지만 과거의 김남일이나 김정우같이 노련하고 투쟁심있는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가 아쉬웠다. 벤투호는 주전들이 부진할 경우 마땅한 대체자가 부족했고, 수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스리백으로의 유연한 전술 변화 같은 대안도 없었다.
 
희망을 살린 것은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젊은 피'들의 활약이었다. 한국이 후반 끌려가던 상황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조규성과 이강인의 힘이 컸다. 황의조를 대신하여 가나전에서 선발출장한 조규성은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최초로 한 경기 멀티골을 터뜨린 선수에 이름을 올리며 'K리그 득점왕'의 위력을 증명했다. 우루과이전에 이어 또다시 교체투입된 이강인은 1분 만에 적극적인 전방압박으로 상대의 공을 탈취한 뒤 예리한 크로스로 조규성의 첫 만회골을 도우며 월드컵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조커'로서 최상의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이들은 벤투호에 있어서 이른바 '플랜B'에 가까운 존재였다. 유럽파를 중용하던 벤투호에서 조규성이 중용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또한 이강인은 그동안 월드컵을 앞두고 평가전에서도 벤투호에서 채 1분도 기용되지 않다가, 극적으로 최종엔트리에 승선한 선수였다. 정작 이제는 월드컵에서 "이강인을 안 뽑았으면 어떡할 뻔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후반 가나가 리드하는 상황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벤투호가 보여준 축구는 무엇이었나. 조규성이 기록한 두 골은 모두 역습 상황에서 측면으로부터 낮고 빠르게 올려준 크로스를 타깃맨이 헤더로 마무리하는 단순한 패턴이었다. 이는 한국축구의 장점인 전형적인 측면 플레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가나가 결승골 이후 노골적으로 라인을 내리고 잠그기에 돌입하면서, 벤투호도 빌드업 대신 아예 조규성의 머리만 노리고 측면에서 묻지마 롱볼을 날려대는 '뻥축구'에 의존했다.
 
하지만 2골 허용 이후 가나 수비가 조규성을 집중견제하기 시작하자 이후로는 크로스가 번번이 차단당했다. 벤투 감독은 미드필드를 빼고 황의조까지 투입하여 아예 노골적으로 중원과 빌드업을 포기하면서 한번에 공을 문전까지 올려댔지만 역부족이었다. 부상으로 공중볼 경합이 불가능한 손흥민을 대신하여, 키가 작은 김진수가 문전으로 침투하여 헤딩 경합을 벌여야하는 안스러운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차라리 조규성-황의조 외에 공중전과 볼경합에 능한 장신 공격수 자원을 엔트리에 한 명이라도 더 발탁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4년간 그토록 공들여 준비했다는 플랜A보다, 벤투호에 뒤늦게 합류한 선수들이나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없이 택한 플랜B가 실전에서는 더 잘먹혔다는 현실은, 우리가 가나전의 내용을 복기하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심판 판정도 우리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앤서니 테일러 주심은 가나의 첫골 상황에서 명백히 핸드볼이 의심되는 장면이 있었음에도 직접 VAR 판독조차 하지 않고 득점을 인정해버렸다. 경기 막판에는 한국이 가나를 몰아붙이며 코너킥을 얻어낸 상황이었음에도 그대로 종료 휘슬을 불어버렸다.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벤투 감독에게 오히려 레드카드를 내밀기도 했다.

벤투 감독은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벤치에 앉을 수 없게 되며 한국은 가뜩이나 벼랑끝에서 사령탑 공백이라는 변수까지 안게 됐다. 만일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면 벤투 감독은 어쩌면 자신의 한국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하는 씁쓸한 순간이 될수 있다.  
 
태극전사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 최선을 다했다. 아쉬운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의 보여준 노력과 헌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석패와 심판 판정 논란이 모든 결과를 미화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 현실은, 벤투호를 믿고 투자했던 지난 4년의 시간에 비하여 그에 걸맞는 결실을 보여줬는가하는 아쉬움이다. 다시한번 기적만을 기대해야하는 포르투갈전은 벤투호의 '라스트 댄스'일까, 아니면 '또다른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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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벤투호 테일러주심 조규성 이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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