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영화 포스터

▲ <우수> 영화 포스터 ⓒ (주)률필름


폐업을 앞둔 사진관을 운영하는 중년의 사장(윤제문 분)은 한때 절친했던 대학 후배 철수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장례식장인 전라남도 광양이 너무 멀어 가지 않으려던 사장은 실은 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빈소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다음 날, 사장은 술 먹자는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는 후배(김태훈 분)와 결혼식 당일 예식장에 가지 않아 평생의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지금까지 껄끄러운 사이인 옛 애인 은주(김지성 분)와 함께 조문을 위한 짧은 하루 여행길에 오른다.

영화 <우수>는 과거 절친했던 후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조문 길에 동행하는 옛 친구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메가폰은 황충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단편 영화 <자살은 살자다>(2006), 장편 영화 <일시>(2020)를 연출하고 <경주>(2013), <춘몽>(2016),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후쿠오카>(2020) 등 10여 년간 장률 감독의 영화에 참여하여 시나리오, 연출, 프로듀싱의 역량을 쌓은 오세현 감독이 잡았다. 

그는 10여 년 전 친구의 부고를 접한 후 빈소에 도착하기까지 느낀 '감정', 오래전 친구와 칼국수를 먹기 위해 내비게이션에 삽교천을 설정하고 출발했다가 허허벌판에 도착했던 황망한 '기억', 그리고 과거 반지하에 거주할 적에 방충망을 비집고 들어와 형광등을 해로 착각하고 자라던 닭의덩굴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걱정'을 "철수의 죽음이 그들을 '우수천'으로 초대했다"는 문장에 덧붙여 <우수>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이야기한다. 오롯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 녹아있는 셈이다.
 
<우수> 영화의 한 장면

▲ <우수> 영화의 한 장면 ⓒ (주)률필름

 
오세현 감독은 <자살은 살자다>에서 좌우 다른 2개의 프레임에 '자살'과 '살자'의 행위를 하는 한 명을 등장시키는 실험을 한 바 있다. <일시>는 하루 2시간만 깨어 있을 수 있는 로스토프 증후군에 걸린 사람이 주인공으로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살하려고 떠났지만, 오히려 살고 싶다고 칭얼대는 느낌의 영화"라고 설명한다. <우수>엔 <자살은 살자다>와 <일시>에서 천착했던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또한, <일시>에 이어 다시금 '로드무비'의 형식으로 해답을 찾는다.

한편으론 장률 감독의 영향도 감지된다. 죽음의 이미지를 계속 소환하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나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후쿠오카>처럼 <우수>도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형식으로 묘사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죽은 철수가 사장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스친다. 마치 유령으로 존재하는 사장이 자신의 장례식을 보는 느낌이니까 말이다. 때론 꿈의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묘한 구석들은 한바탕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현실과 판타지의 영역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기에 해석은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사장과 은주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다. 김지성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은주가 첫 등장과 첫 대사가 마음에 무척 들어 자기 입으로 직접 내뱉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10여 분에 달하는 롱테이크로 구성된 이 장면은 오세현 감독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촬영 일정을 맨 끝으로 잡았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우수> 영화의 한 장면

▲ <우수> 영화의 한 장면 ⓒ (주)률필름


오세현 감독은 <우수>의 연출 의도를 "걸음을 내딛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방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부박한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외롭고 약할지언정 곁에 있는 사람이란 것을 말하고 싶다"고 밝힌다. 기실 영화에서 철수가 누구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지 구분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철수의 죽음이 사장, 후배, 은주를 모이게 하고 그들을 우수천으로 초대한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을 박평식 평론가의 20자평대로 "상념에 성찰을 얹은 혼곤한 여정"으로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곳에 도착하지 못한 세 친구, 바꾸어 말하면 길을 잃었을 지도 모를 우리에게 영화는 추운 겨울이 가고 곧 봄을 맞이하게 된다는 절기 '우수(雨水)'처럼 따뜻한 격려의 말을 던진다.

"얼마나 잘못 온 거야?"

"많이 잘못 온 건 아니고 좀 덜 온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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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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