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자유계약선수) 대박'은 모든 프로스포츠 선수들이 꿈꾸는 로망 중 하나다. 'O년에 OO억'같은 천문학인 액수가 보도될 때마다 대중들에게는 마치 비현실적인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FA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수들에게는 돈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아야 하는 세상의 냉혹함을 가장 뼈저리게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야구 베테랑 내야수 김상수는 최근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kt 위즈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kt는 지난 24일 김상수와 4년 총액 29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은 뒤 줄곧 삼성 한 팀에서 활약한 프렌차이즈 선수였던 김상수는 처음으로 팀을 옮기게 됐다.
 
이보다 앞서 포수 박세혁은 22일 NC와 계약기간 4년, 총액 46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박세혁은 2012년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47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뒤 통산 782경기에 출전한 베테랑이며 2019년엔 두산의 주전 포수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박세혁 역시 두산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프로의 세계가 되어 FA가 되어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아 팀을 옮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김상수와 박세혁의 경우에는 이번 FA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왕조 시대의 주축 선수'이면서도 기대에 못미친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클럽맨으로 남을수도 있었던 김상수와 박세혁이 사실상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적을 선택해야만했던 배경도, 본인의 아쉬운 성적이 비롯된 원소속팀의 저평가 때문이었다.

김상수는 2010년대 전반기 삼성 왕조시대의 주전유격수로 활약했지만, 하지만 부상과 기복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상수는 첫 FA 자격을 얻은 2019년에도 3년간 18억 원에 삼성과 계약했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봐도 프랜차이즈에 국가대표 경력까지 갖춘 20대 내야수로서는 이례적인 '헐값' 계약에 가까웠다. 또한 김상수는 팀 사정에 따라 2루수로의 보직 변경도 기꺼이 감수하며 묵묵히 헌신했다.
 
또한 경기외적으로 김상수가 삼성 팬들은 물론이고 야구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팬서비스였다. 김상수는 '연쇄사인마'라는 팬들의 장난스러운 별명을 얻을 만큼 KBO리그에서 팬서비스에서 친절하고 성실한 대표적인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KBO리그 일부 선수들의 불친절한 팬서비스가 수면 위로 불거졌을 때, 정반대의 사례로 부각됐던 선수가 바로 김상수였다.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김상수가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일때도 마냥 비판하기보다는 팬들이 애정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응원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삼성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번째 FA에서도 김상수의 가치를 그리 높게 평가해주지 않았다. 물론 구단마다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김상수는 30대에 접어들었고 올해는 부상으로 겨우 72경기 출장에 그치며 하락세가 뚜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와 2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김상수는 현재 확실한 주전이나 리그 탑플레이어는 아닐지 언정, 공수주 모든 면에서 활용가치가 높은 선수임은 분명하다. 삼성이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줄 노련한 베테랑이나 백업 요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무엇보다 팀에 오랫동안 헌신해온 프랜차이즈 선수를 이렇게 홀대해서는 안 됐다.
 
반면 내야진에 고민을 안고 있던 kt는 합리적인 투자로 김상수라는 검증된 자원을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단번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김상수는 군에 입대한 주전 유격수 심우준의 공백을 메울수 있고, 유사시 2루로도 활용가능하다. kt는 "김상수는 공수주를 두루 갖춘 내야수로, 센터 라인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선수다. 중고참으로서 내야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영입 이유를 밝혔다.
 
박세혁은 김상수보다도 반응이 더 싸늘하다. 그나마 김상수는 전 소속팀 팬들의 동정과 격려라도 받았지만, 박세혁에게는 그런 것도 보이지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올해 포수 '빅4'(양의지, 유강남, 박동원) 중 하나로 꼽혔고 우승팀 주전포수였다는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4인방 중에서 가장 낮은 대우로 FA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FA로서는 결코 작은 규모의 계약은 아니지만, 비교대상이 하필 최고대우를 받은 양의지(6년 152억)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인다.
 
박세혁은 2018년에도 양의지가 NC로 옮기면서 두산의 주전 자리를 꿰찬 바 있다. 하지만 양의지가 올해 친정팀 두산으로 전격 컴백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공교롭게도 박세혁은 양의지가 떠난 NC의 유니폼을 입게되면서 결과적으로 두 선수가 맞트레이드된 모양새가 됐다. 박세혁으로는 두 번이나 양의지의 그림자를 지워야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질긴 인연을 이어갔다.
 
올겨울 박세혁을 향한 평가는 혹독했다. 박세혁은 2021년(타율 .219, 30타점)과 2022년(타율 .248, 3홈런 41타점)으로 부진을 거듭하며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두산의 최대 약점은 포수"라고 지적하면서 노골적으로 박세혁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모양새가 됐다.

두산은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일찌감치 양의지 영입에 올인했고, 그의 복귀가 성사되자 두산 팬들은 일제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반면 구단과 팬들로부터 철저히 관심밖으로 밀려난 박세혁은 다행히 NC에 둥지를 틀게 됐지만, 양의지를 놓친 데 실망한 NC 팬들의 반응 역시 '꿩대신 닭'이라며 시큰둥한 분위기다. 최근에 보여준 기량이라면 4년 46억이라는 대우도 지나치게 과도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 것도 박세혁으로서는 부담을 느낄 법하다.

최근 몇 년간 FA 시장에서는 '의리보다 실리'가 강조되는 추세다. 팀의 상징과도 같던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FA가 되어 잇달아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게 그리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됐다. NC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양의지를 비롯하여, 나성범(NC→KIA)-박해민(삼성→LG)-손아섭(롯데→NC),박건우(두산→NC) 등이 잇달아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선수도 구단도 철저한 비즈니스와 이해관계 앞에서 냉정했다. 
 
이중 박병호(히어로즈→kt)는 친정팀에 외면받았던 '저평가 FA의 부활'에 관한 최대 모범사례라고 할수 있다. 박병호는 올시즌 전 3년 30억원에 친정팀 키움 히어로즈를 떠나 kt와 FA 계약을 맺었다. KBO리그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을 넘겼고, 4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던 당대의 거포가 최전성기를 보낸 키움을 떠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박병호는 FA직전 2년간 부상과 부진을 겪었고 30대 중반을 넘어섰다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병호는 kt 이적 직후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올해 박병호는 3년 만에 다시 30홈런을 넘겼고 압도적인 홈런 1위를 달린 끝에 3년 만에 홈런왕을 탈환했으며 포스트시즌 무대도 밟았다. kt로서도 당초 주전 1루수 강백호의 백업 요원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다는 기대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엄청난 대활약이었다.
 
노장의 클래스를 믿어주고 다시 기회를 준 kt가 아니었다면 박병호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다. 한때 "전성기가 지난 선수에게 30억도 너무 많은 게 아니냐"는 일부 우려의 시선은 지금 와서는 알고보니 '최고의 계약'이었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아마 김상수와 박세혁으로서도 듣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정든 팀을 떠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팀을 떠나게된 김상수와 박세혁같은 저평가 FA들에게는, 이번 이적이 박병호처럼 오히려 전화위복을 위한 반전의 기회가 될수도 있다. 과연 이들이 자신을 홀대한 친정팀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