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는 도하의 아침이다. 어제의 흥분은 어디로 간 것인지 너무도 평화로운 새벽이다. 경기장에서 두 시간을 쉼 없이 응원하고 뛰어다녔더니, 오늘은 한참을 늦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잠이 깼다. 아, 여전히 흥분상태인 건가? 카타르 5일차, 나는 드디어 대한민국의 첫 경기를 관람했다.

"우리 10시 반에 양고기 집에서 만나요!"

에듀케이션 시티는 지난번 크로아티아와 모로코의 경기에서 한 번 갔던 길이라 자신감이 가득한 채, 친구들을 모았다. 일단 4시 경기이니 점심을 든든하게 '도하 최고의 양고기 집'에서 먹고, 전날 셔틀버스로 고생하긴 했지만 수끄 와키프의 분위기를 충분히 즐긴 후 셔틀로 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한국전이 있는 날이라서 그렇기는 했겠지만, 양고기 식당에는 한국 사람들이 연이어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까지의 월드컵 원정에서는 보기 힘든 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고 있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수끄 와키프의 전통시장에서 주전자를 발견! 주전자에 신기해하는 관광객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너무 좋아요.

▲ 수끄 와키프의 전통시장에서 주전자를 발견! 주전자에 신기해하는 관광객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너무 좋아요. ⓒ 이창희

 
수끄 와키프의 거리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고풍스런 거리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봅니다. 와~ 뙤약볕이네요.

▲ 수끄 와키프의 거리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고풍스런 거리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봅니다. 와~ 뙤약볕이네요. ⓒ 이창희

 
날씨도 너무 좋고, 정말 '카타르 사랑해요'! 카타르 월드컵 내내 하늘이 파랗습니다. 너무 예쁜 풍경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 날씨도 너무 좋고, 정말 '카타르 사랑해요'! 카타르 월드컵 내내 하늘이 파랗습니다. 너무 예쁜 풍경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 이창희

 
지난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는 날부터 이번 카타르를 준비한 일행은 모두 여덟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여행에 따라나설 만큼 성장을 했고, 어른 여덟은 아이들까지 열이 되었다. 여기에 어른들의 친구들까지 하나 둘 더해지니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든든했다. 우리의 월드컵 여행은 보통 이전 월드컵이 끝나는 날 시작되지만, 본격적인 준비는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 1년 전부터 시작된다. 이번에는 하야카드를 미리 신청해야 하는 절차가 추가되어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졌지만, 어김없이 준비의 시간은 흘렀고, 여행을 준비한 우리는 오늘 경기와 함께 모두 모였다.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4년 만이었다.
 
우루과이전을 보러 에듀케이션 시티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와~ 어딘가 한국같은 하늘이 예쁘네요!

▲ 우루과이전을 보러 에듀케이션 시티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와~ 어딘가 한국같은 하늘이 예쁘네요! ⓒ 이창희

 
한국전의 환희는 따로 기록하지는 않으련다. 대한민국은 우루과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기죽지 않는 경기력과 움직임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이 모습을 경기장에서 골대 바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없던 기운도 되살아났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티켓을 사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한국전은 붉은 악마 응원석으로 신청을 했는데, 골대 뒤에서 쉼 없이 응원을 하는 악마들에 목소리를 더하자니 편안한 관람은 아니었다.

"여러분, 여기 축구 보러 오신 거 아닙니다, 응원하러 오셨잖아요! 그동안 축구 많이 보셨잖아요. 오늘은 선수들을 응원합시다!"

골대 뒤 모여든 붉은 악마의 숫자는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응원을 주도하시는 분의 절실한 목소리는 우리를 경기장의 그들과 함께 뛸 수밖에 없게 했다. 그들이 경기를 하는 내내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지는 응원은, 어느새 경기장 곳곳에 채워진 대한민국의 관중들과 섞여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끝없이 외치는 '대한민국'이 관중석에서 되돌려져 내 귀에 다시 들리는 느낌은 무척이나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작지만 강한 붉은 악마! 골대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 쉼없이 경기를 응원합니다.

▲ 작지만 강한 붉은 악마! 골대 뒤에 옹기종기 모여서, 쉼없이 경기를 응원합니다. ⓒ 이창희

 
이런 쉼 없는 두 시간의 응원은 20년 전, 아직 20대였던 2002년의 월드컵이 마지막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는 원정 관람을 떠나더라도 '나이 들었음'을 핑계로, 붉은 악마의 응원석보다는 편안한 관중석을 선택하곤 했었다. 하지만 다시 그들 안에서 손뼉을 치고 구호를 외치는 두 시간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20년의 시간 여행도 선물해 주었다.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해 뛰어주는 선수들과 관중석을 꽤나 채웠던 우리의 서포터들이 가장 큰 감동이었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단이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며 경기장을 도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밖으로 나왔더니, 지하철로 이동하는 길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경기가 하나 둘 쌓여가면서, 이들의 시스템도 점점 더 정비가 되고 있는 게 느껴지는 것이, 쏟아져 나온 4만 2천의 사람들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분명히 첫 번째 미국과 웨일스의 경기를 보고 난 후 느꼈던 혼돈의 카오스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게 분명하다. 아마, 월드컵이 끝날 때쯤에서야 완벽해질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2002년 월드컵 기념 머플러가 2022년 카타르에! 20년 전에 만들어진 머플러를 들고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찾은 아빠가 앞자리에 있습니다. 멋져요~~~ ^^

▲ 2002년 월드컵 기념 머플러가 2022년 카타르에! 20년 전에 만들어진 머플러를 들고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찾은 아빠가 앞자리에 있습니다. 멋져요~~~ ^^ ⓒ 이창희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4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들은, 복잡한 지하철을 뚫고 도하의 우리 숙소에 모두 모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야기가 멈출 수는 없었고, 오늘 경기의 흥분도 함께하니 배가 되었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른들의 여행을 따라나선 아이들은 신기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분명히 한 번의 월드컵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겠지만, 우리의 여행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이것도 우리에게 쌓여가는 행복의 확인이기도 하다. 다음의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어제 오후, 에듀케이션 시티에서의 당당했던 국가대표팀의 모습은 앞으로도 얼마간 월드컵을 즐겨야 하는 대한민국의 팬들에게도 충분한 에너지를 전해 주었다. 최근 몇 번의 월드컵에서 연이어 보여줬던 무력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앞으로 이어질 여행도 더욱더 기운 내서 즐길 수 있겠다. 오늘은 밤 10시에 미국과 잉글랜드를 보러 나가야 한다. 숙소의 대장님은, 아빠를 따라나선 대견한 아들에게 대접하겠다며 만들어 놓으신 카레 냄새가 숙소에 가득하다. 꼬마 손님과 점심을 먹고, 다시 도하 탐험을 나가봐야겠다. 오늘은 어디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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