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경기장까지 두 시간이 걸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카타르에서 4일차, 세 번째 경기를 보는 날이다.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 형님을 경기장에서 직접 영접하는 날이라 기대가 크다. 아침에 일어나니 6시 반이었고, 오후 1시 경기이니 넉넉하게 시간을 내도 10시에만 출발하면 될 것 같았다. 보통의 경기장은 1시간 이내에 이동이 가능하니까! 근데, 오늘의 경기가 열리는 알 베이트 경기장은 알코르라는 도시에 있어서 일찍 출발해야 하는 거였다. 헉, 여유가 없다. 서두르자!
 
수크 와키프의 오래된 광장에는 이미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팬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며 응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광장의 풍경과 월드컵의 환희가 함께하는 소중한 풍경이다.

▲ 수크 와키프의 오래된 광장에는 이미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팬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며 응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광장의 풍경과 월드컵의 환희가 함께하는 소중한 풍경이다. ⓒ 이창희

   
수크 와키프의 오래된 거리 아직은 한산한 거리가 너무 예쁜 하늘과 잘 어울려서 환상적이예요!

▲ 수크 와키프의 오래된 거리 아직은 한산한 거리가 너무 예쁜 하늘과 잘 어울려서 환상적이예요! ⓒ 이창희

   
비둘기들의 샘? 물이 흐르는 샘에 비둘기들이 목을 축이고 있었어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 비둘기들의 샘? 물이 흐르는 샘에 비둘기들이 목을 축이고 있었어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 이창희

 
급하게 아침을 먹고 경기장으로 이동한다. 지하철로 팬 페스트가 있는 중심부인 수크 와키프까지 이동하고, 거기에선 경기장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타기로 한다. 근데, 오늘의 경기장 가는 길은 정말, 나의 20년이 넘는 축구 직관 역사에,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다. 시내 중심부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연한 베이지색의 오래된 건물들 앞으로 초록의 나무들이 가지를 드리운 광장은, 열기를 끌어올리는 크로아티아 팬들로 가득했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고층 빌딩의 장관에 감탄을 하며, 크로아티아 서포터의 출정식도 구경하면서 한껏 기운 장전해서 출발했는데! 헐? 이거 이상하다. 분명히 도시를 벗어나서 외곽으로 향해야 하는 버스가, 갑자기 시티투어를 시작하는 거다.

갑자기 이상한 길로 가는 버스
 
본의 아닌 시티투어 중 발견한 스타디움974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눈 앞에 컨테이너 974개로 지었다는 스타디움974가 나타났습니다.

▲ 본의 아닌 시티투어 중 발견한 스타디움974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중 눈 앞에 컨테이너 974개로 지었다는 스타디움974가 나타났습니다. ⓒ 이창희

 
한참을 움직였는데, 출발한 곳의 반대쪽에서 헤매질 않나, 바다 건너에서 보였던 빌딩 숲을 한참 헤매질 않나… 이거 뭔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버스의 승객들이 다들 웅성거린다. 옆자리의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크로아티아 유니폼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훔쳐듣자니 이렇다.

"헤매고 있어. 내비게이션을 못 보네. 뭐, 경기까지 시간도 남았는데, 우린 좋지 뭐."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경기는 1시인데, 셔틀은 9시에 탔고, 경기장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면 10시에 도착할 테니, 약간을 헤매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경기 관람 일정에 쫓기느라 이렇게 바다 건너의 빌딩 숲까지 와볼 생각은 없었는데, 나름 재밌다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분명 9시에 수크 와키프의 경기장 셔틀 허브에서 출발한 버스는 10시가 다 되도록 도하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초조해진 오늘 경기의 당사자인 크로아티아와 모로코의 서포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다급하게) 노노노노~~ 빠져나가지 말고, 직진!!!"
"직진이라고!!! 좌회전 말고!!!"


급기야,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모로코 서포터가 자신의 전화기에서 구글맵을 켰고, 내비게이션 대로 기사분에게 안내를 시도한다. 분명, 이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오늘 알코르에도 처음이고, 알 베이트 경기장도 태어나서 처음인 사람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 웃긴 풍경이었다. 스스로도 실수를 아는 듯, 잔뜩 겁을 먹은 버스 기사가 오른쪽으로 안 빠지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직진이라도 하면, 버스에서는 환호와 함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기사가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하다못해, '직진, 오른쪽, 왼쪽'과 같은 기본적인 어휘도 알아듣지를 못하신다. 이 버스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스페인어와 아랍어, 영어와 한국어까지, 수많은 언어들로 얘기를 건네 보았지만, 긴장한 기사님은 정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셨다.
 
참다못한 승객이자 서포터들이 내비게이션을 자처하다.  모두가 구글맵을 켜고, 각자의 언어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장면인데, 한가해 보이나요?

▲ 참다못한 승객이자 서포터들이 내비게이션을 자처하다. 모두가 구글맵을 켜고, 각자의 언어로 길을 안내하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장면인데, 한가해 보이나요? ⓒ 이창희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을 켰고, 기사 옆에 서포터 세 사람이나 달라붙어 손짓 발짓, 그리고, 기사님이 무언가 잘 해냈을 때는 커다란 응원으로 길을 안내했다. 원래대로라면 1시간이 걸렸을 거리는 결국 두 시간을 꼬박 채워서 도착했고, 이마저도 도착하지 못할까 봐 버스 안의 사람들은 창밖의 경찰을 불러대며 도와달라 외치기까지 했다. (통행 관리를 하기 위해 거리에 나와있던 경찰들은 우리를 보며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침내 경기장이 눈앞에 나타났다. 안도가 되었지만, 초행길의 우리는 원래 셔틀버스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구글맵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기사를 몰아붙였다. 마지막엔 버스 안의 분위기가 험악하기까지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소형차의 주차장 안내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고, 소형차가 아니니 못 들어온다는 경찰의 '도움'으로 경찰 통제선 안쪽에 간신히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이때도 그 미국 커플의 대사가 웃긴데, 옮겨보자면 이렇다.

"아직 환호할 때가 아니야. 우리 차에서 내리면, 여기를 탈출하면 오늘을 축하하자!"

흡사 유명한 야구선수인 요기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아서 혼자 킥킥대며 웃었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베두인 족의 천막을 본떠 만들었다는 알 베이트 경기장에 들어왔다. 오늘의 경기를 보기 위한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마 축구 원정 응원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테지만, 앞으로 다시 이런 경험은 안 하고 싶다. 어떻게 경기장 이동 셔틀의 기사가 경기장으로 오는 길을 모를 수가 있냐는 말이지.

여기서 오늘 함께 이동하며, 이 소동을 함께했던 미국인의 명언 하나 더. "문제는 저 기사, 오늘 본부로 못 돌아간다는 거야." 아, 정말 걱정이긴 하다. 내리기 직전 승객들의 추궁에 의하면, 기사님 오늘 1일 차라던데 말이다.
 
천신만고 끝에 경기장! 경기장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몰려든 서포터들로 가득했어요. 그 동안 버스에서 벌이던 사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풍경입니다.

▲ 천신만고 끝에 경기장! 경기장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몰려든 서포터들로 가득했어요. 그 동안 버스에서 벌이던 사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풍경입니다. ⓒ 이창희

 
어제까지는 저 중앙에! 월드컵 트로피가 놓여있었는데, 하루만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식전행사의 장면이예요.

▲ 어제까지는 저 중앙에! 월드컵 트로피가 놓여있었는데, 하루만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식전행사의 장면이예요. ⓒ 이창희

   
경기가 끝난 후 나오는 길, 평화로운 알베이트 경기장입니다.  경기를 마치고 다시 또 셔틀로 수크 와키프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뒤를 돌아보니! 오늘의 혼란은 다 어디로 갔는지, 평화로운 알베이트의 전경입니다.

▲ 경기가 끝난 후 나오는 길, 평화로운 알베이트 경기장입니다. 경기를 마치고 다시 또 셔틀로 수크 와키프로 이동하기로 결정하고, 뒤를 돌아보니! 오늘의 혼란은 다 어디로 갔는지, 평화로운 알베이트의 전경입니다. ⓒ 이창희

 
사실 오늘의 경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원래라면 월드컵 트로피가 있어야 할 킥오프 행사에서 트로피가 사라진 게 놀라웠고, 처음으로 현장에서 본 모드리치의 고군분투로는 크로아티아가 쉽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 크로아티아의 다음 경기에서는 더 멋진 모습을 기대해야지. 

이렇게 카타르에서의 4일차가 지나갔다. 한국의 1차전인 우루과이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친구들이 입국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내일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첫날 들렀던 도하 최고의 양고기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어제 (11월 22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메시의 아르헨티나도 이기고, 오늘은 일본이 독일마저 이겼으니, 우리도 기대할 수 있을까? 공은 둥글고, 축구의 신이 아시아에 깃든 것일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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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여행기 카타르2022 월드컵 크로아티아 알베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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