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의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와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최다관객영화(910만, 감독판 포함) <내부자들>, 강우석 감독의 <이끼>와 <전설의 주먹>, 김수현 신드롬에 불을 지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포털사이트를 통해 연재됐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웹툰 산업이 크게 발전하면서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는 장편 웹툰들은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명확하기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기에도 용이하고 많은 인기를 얻었던 웹툰들은 그만큼 흥행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의 판권을 미리미리 확보해 두려는 제작사들의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하지만 웹툰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영화계에서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의 웹툰처럼 당시 영화로 만들어졌던 단골문학은 바로 소설이었다. 1998년 김승우와 명세빈이 주연을 맡았던 장현수 감독의 <남자의 향기> 역시 1995년에 출간돼 150만 부를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처절한 멜로 영화였다.
 
 <남자의 향기>는 1995년 출간돼 15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남자의 향기>는 1995년 출간돼 15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한국 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 감독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장현수 감독은 지난 1984년에 설립해 봉준호와 장준환, 허준호, 최동훈 등 많은 영화감독들을 배출하며 '한국의 영화사관학교'로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1기 출신이다. 당시 <구로 아리랑> <영원한 제국>의 박종원 감독, <결혼 이야기> <총잡이>의 김의석 감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오병철 감독, 영화 평론가 겸 교수 유지나 등이 장현수 감독과 함께 영화아카데미 1기를 수료했다.

영화아카데미 수료 후 고 곽지균 감독 밑에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젊은 날의 초상>의 조연출로 참여했던 장현수 감독은 1992년 정보석, 배종옥, 강석우 주연의 <걸어서 하늘까지>를 통해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걸어서 하늘까지>는 이듬해 최민수와 김혜선 주연의 드라마로도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현수 감독은 <걸어서 하늘까지>를 통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장현수 감독은 1994년 한국형 액션 누와르의 걸작으로 꼽히는 <게임의 법칙>을 연출하며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게임의 법칙>은 '박중훈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으로 실제로 박중훈은 <게임의 법칙>으로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6년 심은하와 정우성 주연의 <본 투 킬>을 연출한 장현수 감독은 1998년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자의 향기>를 선보였다.

이미 <게임의 법칙>을 통해 남성관객들의 정서를 어떤 식으로 파고 들어야 하는지 일고 있던 장현수 감독은 <남자의 향기>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한 여자를 신앙처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잘 표현했다. 1998년 9월에 개봉한 <남자의 향기>는 서울에서만 15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전도연과 박신양이 주연을 맡아 서울관객 70만을 모은 <약속>의 열풍에 밀려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진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0년대 들어 장현수 감독의 행보는 썩 순조롭지 못했다. 2001년에 선보인 코미디영화 <라이방>이 흥행 참패한 장현수 감독은 2004년 이병헌, 최지우 등 스타배우들을 캐스팅해 가벼운 터치의 로맨스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연출했다. 하지만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전국 86만 관객으로 반전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장현수 감독은 2013년에 만들고 2016년에 개봉한 <애비>를 끝으로 10년 가까이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멜로왕자' 김승우의 숨어있던 색다른 매력
 
 부드러운 멜로연기 전문배우로 명성을 얻은 김승우는 데뷔작 <장군의 아들> 이후 오랜만에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부드러운 멜로연기 전문배우로 명성을 얻은 김승우는 데뷔작 <장군의 아들> 이후 오랜만에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영화 <남자의 향기>는 1995년에 출간돼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하병무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남자의 향기>는 한 여자를 신앙처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로맨스 소설의 주요 고객인 여성독자들은 물론이고 로맨스 소설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성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각 군부대의 병사 휴게실 책꽂이에는 어김없이 소설 <남자의 향기>가 꽂혀 있었을 정도.

영화 <남자의 향기>는 어린 시절부터 오누이로 지내던 은혜(명세빈 분)를 지키기 위해 젊은 나이에 조직폭력배가 되는 권혁수(김승우 분)의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3권으로 이뤄진 소설을 런닝타임 104분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이 많았지만 주인공 권혁수의 조폭생활은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표현됐다. 이 때문에 전작 <게임의 법칙>에서 보여준 장현수 감독의 스타일을 살리느라 멜로드라마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서 쌍칼 역할로 데뷔했던 김승우는 영화 <고스트 맘마>와 <꽃을 든 남자>, 드라마 <신데렐라>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부드러운 귀공자' 이미지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남자의 향기>에서 폭력조직의 행동대장 역을 맡아 거친 액션연기를 선보이며 색다른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김승우는 <남자의 향기> 이후 <신장개업>과 <라이터를 켜라> 같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며 멜로에만 갇혀 있던 연기영역을 넓혔다.

같은 해에 개봉한 <남자의 향기>와 <약속>은 스토리 면에서 닮은 듯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약속>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공상두(박신양 분) 대신 감옥에 들어간 엄기탁(정진영 분)을 죽게 둘 수 없어 공상두가 마지막에 자수를 하러 간다. 하지만 <남자의 향기>에서는 폭력남편(고 조민기 분)을 죽인 은혜를 대신해 권혁수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고 대신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비록 영화는 큰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남자의 향기>는 2003년 <야인시대>의 김두한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안재모와 신예스타 한다감(개명 전 한은정)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방영되기도 했다. 영화보다는 하병무 작가의 원작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남자의 향기>는 20% 내외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시청률 30~50%를 기록하던 인기 드라마가 즐비했던 그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그리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다.

'청순가련 배우' 명세빈의 영화 데뷔작
 
 <남자의 향기>로 영화에 데뷔한 명세빈은 청순한 매력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남자의 향기>로 영화에 데뷔한 명세빈은 청순한 매력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1996년 신승훈 5집의 <내 방식대로의 사랑>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명세빈에게 <남자의 향기>는 실질적인 연기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였다. 명세빈이 연기한 신은혜는 평생 동안 권혁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지만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게 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영화의 흥행과 별개로 명세빈은 <남자의 향기>를 통해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여성배우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약속>에서 공상두에게 엄기탁이라는 듬직한 부하가 있었다면 <남자의 향기>의 권혁수에게는 장세진이 연기한 장승화라는 충신이 있었다. 권혁수가 등장하기 전 폭력조직 흑성회의 최고주먹이었던 장승화는 권혁수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그를 형님으로 모신다. 장승화는 권혁수가 감옥에 간 후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은혜를 사심 없이 돌보는 충심을 보였다.

엔딩 크레딧에 '선글라스 사내'로 등장하는 이범수는 지금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건설사의 분규 문제로 건설현장을 습격했다가 권혁수에게 얻어 맞는 역할로 짧게 등장했다. 이범수는 전체 출연분량이 3분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코믹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이범수는 이듬해 개봉한 <태양은 없다>에서 홍기(이정재 분)를 괴롭히는 사채업자로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초반부에 짧게 등장하는 김승우와 명세빈의 아역은 현재 관객들에게 굉장히 잘 알려진 유명배우들이 연기했다. 권혁수의 아역을 맡아 은혜에게 몹쓸 짓을 한 동네 양아치들을 혼내주던 배우는 바로 현재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와 영화 <데시벨>에 출연하고 있는 김래원이다. 그리고 신은혜의 아역을 연기하며 대부분의 출연장면에서 고개를 숙인 채 울기만 하던 배우는 올해 <그린마더스클럽>에 출연했던 이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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