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이란 대표팀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를 보도하는 미 CNN 방송 갈무리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이란 대표팀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를 보도하는 미 CNN 방송 갈무리 ⓒ CNN

 
월드컵에 나선 이란 대표팀 선수들이 국가 부르기를 거부했다.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21일(현지시각)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앞서 국가가 울려 퍼졌으나, 선발로 출전한 11명 전원이 누구도 따라부르지 않았다.

지난 9월부터 이란 전역에서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에 연대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관련 기사: 이란 유명 여배우, 히잡 벗고 반정부 시위 연대).

이란에서는 9월 13일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한 20대 여성이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전통 의상)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의문사를 당한 사건을 계기로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이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반정부 시위 지지하는 이란 선수들... 국가 연주 때 '침묵' 

이란 정부는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군경을 동원해 유혈 진압에 나섰다.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현재까지 400명 넘는 시위 참가자가 사망했고, 1만6800여 명이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대표팀의 주장 에산 하즈사피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이란)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라며 "가족을 잃은 분들께 위로를 전하며, 이란 대표팀은 그들을 지지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란 대표팀은 이날 경기에 앞서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로 국가 제창을 거부할지를 선수들의 의견을 종합해 결정하겠다"라고 밝혔고, 선수들의 뜻에 따라 국가를 부르지 않은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의 축구 해설가 게리 리네커는 "이란 선수들이 축구의 힘을 선을 위해 쓰고 있다"라고 추켜세웠고, 미국 CNN 방송은 "이란 선수들이 국가 연주 때 침묵함으로써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라고 전했다. 

경기장을 찾은 이란 관중들도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소리를 지르거나 야유하면서 '여성의 자유를 원한다' '여성 생명 자유' 등의 구호를 적은 팻말을 들었다. 이란의 한 관중은 AP통신에 "정부가 국민을 죽이고 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란 대표팀을 이끄는 카를로스 케이로즈 감독도 "월드컵 규정을 어기지 않고, 스포츠 정신을 지킨다면 선수들이 조국에 있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항의할 자유가 있다"라고 선수들을 지지했다.

잉글랜드 선수들, 차별 반대 '무릎 꿇기'... '무지개 완장'은 못 찼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 AP


상대 팀인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도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경기 시작 직전 그라운드에서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는 이른바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펼쳤다. 

2016년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무릎을 꿇은 채 국민의례를 거부한 데서 비롯된 무릎 꿇기는 2020년 5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는 사건이 촉발한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확산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의 성소수자 및 이주 노동자 인권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무릎 꿇기를 했다.

다만 '무릎 꿇기'와 함께 예고했던 '무지개 완장' 착용은 끝내 불발됐다. 잉글랜드,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7개 팀 주장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카타르의 여러 차별과 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하트에 숫자 '1'이 적힌 '원 러브'(One Love) 완장을 차기로 했다.

그러나 카타르와의 관계를 의식한 FIFA는 사전에 승인받지 않은 완장을 착용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라며 난색을 보였다(관련 기사: 해리 케인 등 유럽 주장들, 월드컵서 '성소수자 연대' 완장 찬다).

'무지개 완장' 차면 옐로카드... FIFA 엄포에 물러선 유럽 팀들

유럽 7개 팀 주장들은 벌금을 내서라도 무지개 완장을 착용하겠다고 맞섰으나, FIFA가 경기에서 옐로카드(경고)를 주겠다고 엄포를 놓고 결국 물러났다. 주장 선수가 옐로카드 누적으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면 팀 전력에 엄청난 타격이기 때문이다.

유럽 7개 팀은 공동 성명을 통해 "FIFA가 '무지개' 완장을 차면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라며 "선수들이 제재를 받게 놔둘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덴마크 축구협회는 별도의 성명에서 "FIFA의 결정에 극도로 실망했다"라고 유감을 표했고, 독일 축구협회도 "FIFA가 인권과 다양성에 관한 목소리를 금지한 것은 실망스럽고, 유례가 없다"라고 항의했다.

다만 FIFA는 유엔 산하 기관과 협력해 사회적 의미를 담은 완장을 만들었고, 8강전 때 제공하기로 했던 '차별 반대'(#NoDiscrimination) 완장을 모든 경기에 허용한다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이날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은 이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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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이란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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