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저마다 영화를 고르는 각자의 기준이 있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영화를 고르는 가장 보편적인 기준은 바로 '배우'다. 배우들 역시 영화의 흥행이 차기작의 몸값과 직결되기 때문에 흥행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평소 방송출연을 꺼리던 배우들이 신작영화의 개봉시기가 다가오면 토크쇼나 예능프로그램 등에 열심히 출연하며 자신이 나오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다.

하지만 화려한 배우진이 꼭 높은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에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는 황정민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전국 259만 관객으로 만족할 만한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정우와 강동원,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등이 출연했던 윤종빈 감독의 <군도> 역시 역대 오프닝 최고기록을 세우고도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기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이름 있는 배우들을 무조건 많이 캐스팅하는 것보다는 작품의 이야기와 스타일에 맞도록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캐스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손에 꼽힐 정도로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면서도 각 배우들에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기면서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08년 송강호와 이병헌, 정우성이 출연했던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놈놈놈>)이다.
 
 2008년 개봉작 중에서 <놈놈놈>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과속스캔들>뿐이다.

2008년 개봉작 중에서 <놈놈놈>보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과속스캔들>뿐이다. ⓒ CJ ENM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들

영화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다. 2022년에 제작된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시대배경을 2022년으로 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여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다양하게 제작되는데 한국의 경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 강점기'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라는 독특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된 바 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거장' 임권택 감독에 의해 3편까지 제작된 <장군의 아들>은 조선제일의 주먹 김두한이 종로를 노리는 일본의 야쿠자 보스 하야시 패거리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세 편 합쳐 서울에서만 119만 관객을 동원한 <장군의 아들>은 박상민과 신현준, 김승우, 황정민 등 남자배우들뿐 아니라 방은희와 송채환, 오연수 등 신인급 여성배우들도 대거 배출한 시리즈다.

2004년에 개봉한 양윤호 감독의 액션드라마 <바람의 파이터>는 방학기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렸다. 특히 최배달 역을 맡은 양동근이 과격하고 화려한 액션장면들을 잘 소화해내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캐스팅 당시에는 비가 하차하고 양동근이 합류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려가 있었지만 전국 23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서도 비교적 선전했다.

2019년에 개봉해 전국 280만 관객을 동원했던 유해진, 윤계상 주연의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이나 독립운동가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일제에 항거해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말모이>는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썼던 염유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총칼이 아닌 글로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2002년 초에 개봉한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는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실패해 2009년에도 한국이 여전히 일제 식민지라고 가정한 '대체역사물'이다. 아무리 가상이지만 1988년에 나고야 올림픽이 열리고 2002년 월드컵을 일본이 단독 개최하는 등 대한민국의 역사들이 모두 일본의 것이 된 설정이 상당히 충격적이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아쉬웠지만 장동건과 나카무라 토오루의 연기대결은 <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의 볼거리다.

660만 관객이 즐긴 김지운표 액션 코미디
 
 박도원 역의 정우성은 우월한 기럭지를 앞세워 각종 멋진 액션장면들을 소화했다.

박도원 역의 정우성은 우월한 기럭지를 앞세워 각종 멋진 액션장면들을 소화했다. ⓒ CJ ENM

 
사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겐 커다란 비극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어쩔 수 없이 '독립운동'과 '반일', '항일' 등을 주제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놈놈놈>은 시대배경만 일제 강점기로 잡았을 뿐 세 주인공이 만주에서 보물을 쫓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오락영화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관객들도 <놈놈놈>의 장르를 잘 이해하고 660만 흥행으로 화답했다.

김지운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심플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 전개 등도 재미 있지만 <놈놈놈>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개성 있는 세 주인공의 매력이다. 귀신 같은 사격실력을 자랑하는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분)과 만주의 악명 높은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분), 그리고 무서운 과거를 숨기고 있는 임기응변에 능한 강도 윤태구(송강호 분) 등 세 주인공은 최고의 배우들을 만나 관객들을 쉴 새 없이 즐겁게 한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귀시장에서의 총격신과 함께 영화 후반부 만주의 사막에서 벌어지는 추격신은 <놈놈놈>의 백미로 꼽힌다. 특히 일본군에게 쫓겨 위기에 빠진 윤태구와 박창이를 뒤늦게 등장한 박도원이 본의 아니게 구해주는 장면은 상당히 통쾌하다. 영화 속 설정에서 '손가락 귀신'으로 불리는 윤태구는 엄청난 생존본능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지만 사실 박도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윤태구의 목숨은 이미 여러 차례 위태로웠을 것이다.

경쾌한 만주웨스턴을 표방한 <놈놈놈>의 음악은 김지운 감독의 전작 <달콤한 인생>의 OST를 담당했던 달파란과 최동훈 감독의 <타짜> OST를 맡았던 장영규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2008년7월에 발매된 <놈놈놈> OST는 무려 40개의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산타 에스메랄다의 곡을 새로 편곡한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는 모 아이스크림 CM송과 결합돼 온라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작품활동이 다소 뜸해졌지만 2000년대는 김지운 감독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2000년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블랙코미디 <반칙왕>을 연출해 서울에서만 78만 관객을 동원한 김지운 감독은 2003년 호러 장르의 <장화, 홍련>을 만들었다. 2004년에는 액션 느와르 <달콤한 인생>을 통해 이병헌과 처음 만난 김지운 감독은 2008년 <달콤한 인생>의 비장함을 쏙 뺀 신나는 만주웨스턴 <놈놈놈>을 연출했다.

이성민-곽도원-진선규 등 단역으로 출연
 
 친일파 김판주는 박창이와의 갈등 끝에 총을 겨누다가 박창이의 칼에 의해 살해 당한다.

친일파 김판주는 박창이와의 갈등 끝에 총을 겨누다가 박창이의 칼에 의해 살해 당한다. ⓒ CJ ENM

 
<놈놈놈>에서 박창이가 두목으로 있는 마적단 창이파는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조선인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만주에는 창이파 외에도 삼국파라는 또 하나의 마적단이 등장한다. 창이파와 달리 조선과 중국, 몽골, 러시아 등 여러 나라 국적의 조직원들이 모인 마적단으로 창이파와 달리 상당히 허술하게 나온다. 그 중 배우 윤제문이 연기한 삼국파의 조선인 부두목 병춘은 과거 윤태구와 인연이 있었던 사이로 나온다.

배우 송영창이 맡은 조선 출신의 친일 반민족행위자 김판주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마적단 두목 박창이에게 보물지도를 가져다 달라고 제안한다. 김판주는 박창이가 지도획득에 실패하자 불만을 늘어 놓으며 박창이에게 총을 겨누지만 역으로 박창이의 칼에 맞고 살해 당한다. 김판주의 금고 앞에는 마치 명언인 듯 한자들이 써 있는 족자들이 보이는데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물답게 '일확천금','부귀영화' 같은 말들이 쓰여있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과 조한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여주인공 정한경을 연기했던 이청아는 <놈놈놈>에서 박도원과 함께 사는 소녀 송이 역으로 출연했다. 전체 출연분량이 5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역할인데 박도원이 끌고 온 윤태구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윤태구에게 물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박도원의 부름에 물을 주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버리고 이 때문에 윤태구는 동물들처럼 물을 입으로 핥아서 마신다.

<놈놈놈>은 개봉 당시만 해도 세 주인공을 제외하면 조연 캐스팅이 화려한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단역들 중에는 오늘날 인기배우가 된 인물들도 적지 않다. 박도원과 함께 사는 주방장 역은 올해 하반기 영화 <리멤버>와 드라마 <형사록>을 선보인 이성민이 맡았다. 이 밖에 귀시장 패거리 역으로 곽도원과 진선규가 출연했는데 이들은 영화 속에서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배우 본인들도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을 제대로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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