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사극 <슈룹>의 최근 방영분들은 젊은 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놓고 독살설이 제기되는 장면들을 보여줬다. 이 와중에 세자의 아들인 원손까지 동일한 논란에 휩싸이는 안타까운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이 드라마 속의 세자와 원손은 왕후 임화령(김혜수 분)의 핏줄을 타고났다. 이들은 임화령보다 막강한 대비(김해숙 분)나 영의정 황원형(김의성 분)과 대립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런 구도는 이들과 관련된 독살 의혹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독살설 많이 제기됐던 조선왕조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슈룹>에서처럼 독살설이 많이 제기됐던 시대는 조선왕조 때였다. 이 왕조에서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임금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독살설도 자주 제기됐다. 군주 27명 중 11명인 문종·단종·예종·연산군·선조·효종·현종·경종·정조·고종·순종과 관련해 그런 의혹들이 있었다.
 
독살설이 이 시대 사람들을 얼마나 강하게 지배했는가는 조선왕조가 끝난 뒤에 발생한 사건들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두 군주인 고종과 순종의 사인에 대한 의심은 1919년 3·1운동과 1926년 6·10 만세운동으로 발전했다. 두 사건은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식에서 발생한 일이기도 하지만, 두 전직 군주의 사망 원인에 대한 대중적 의구심으로 인해 크게 증폭된 일이기도 하다.
 
독살설은 소현세자나 효명세자 같은 왕위계승권자들과 관련해서도 일어났다. 음력으로 인조 23년 6월 27일자(양력 1645년 7월 20일자) <인조실록>은 만 33세 나이로 급사한 소현세자의 시신을 묘사하면서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모두 피가 흘러나왔다"라고 한 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라고 서술했다.
 
병자호란 패전 뒤에 인질이 되어 청나라에 끌려간 소현세자는 청나라 사람들의 호감을 사서 자기 위상을 강화시켰고, 이는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 인조가 그를 경계하는 원인이 됐다. 그는 아버지의 의심을 받으며 청나라 생활을 하다가 귀국 2개월 만에 위와 같은 상태로 발견됐다. 뒤이어 소현세자의 부인이 시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소현세자의 아들들까지 제주도로 유배됐기 때문에, 그가 독살됐으리라는 의혹은 더욱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군주나 왕위계승자와 관련된 독살설은 군주가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왕조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왕의 조정은 실권이 없고 무사들의 조정인 막부(바쿠후)가 지배한 1185년부터 1867년까지의 일본 왕조에서는 군주나 태자 독살설이 제기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힘없는 군주나 후계자를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 별로 없는 곳에서는 이들과 관련된 독살설이 나올 여지가 많지 않았다. 조선왕조에서 독살설이 끊임없이 발생한 것은 이 나라 군주들이 어느 정도 힘이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정 운영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군주권이 강했다. 중국 황제가 훨씬 막강했다는 점은 중국에서 환관의 정치적 비중이 컸던 데서도 나타난다. 황제권이 막강하다 보니 황제를 보좌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강해졌던 것이다.
 
중국 황제가 훨씬 강했다는 점은, 한국과 달리 중국 정치사에서는 탕평책이 강조되지 않은 데서도 느낄 수 있다. 특정 당파의 독주를 억제하는 탕평책은 군주권을 강화하고자 할 때 내세우던 논리다. 중국 황제들이 탕평책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조국가의 권력구조와 독살설의 상관관계
 
독살설은 군주권이 희박했던 1868년 이전의 일본 왕조보다는 군주가 어느 정도 힘이 있었던 한국 왕조에서 더 많이 제기됐다. 또 군주권이 훨씬 막강했던 중국 왕조보다는 군주권이 '어느 정도'에 그쳤던 한국 왕조에서 더 많이 나왔다. 왕조국가의 권력구조가 독살설의 많고 적음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판단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조선왕조의 경우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우세를 점한 가운데 군주가 어느 정도 권력을 행사하는 양상이 전개됐다. 최종 결정권은 군주에게 있었지만, 최종 결정의 내용을 채우는 권한은 양반 사대부들에게 있었다.
 
조정의 신하가 된 사대부들은 왕으로부터 봉급을 받는 샐러리맨들이었지만, 이들 대다수는 지주가문의 일원이었다. 자기 부모가 지주가 아니면, 문중이 지주가문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군주의 정책이 지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때는 '아니 되옵니다'를 연발하며 군주의 의지를 꺾었다. 이들은 봉급을 받을 때는 신하였지만, 군주의 개혁을 막을 때는 지주계급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조선의 사대부들이 군주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군주들은 전체 사대부들을 억누를 힘은 없었지만, 상당한 권력을 행사할 정치적 자원을 갖고 있었다.
 
조선 군주들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갖고 있었고, 자신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군주의 토지에는 이 땅을 소작하는 농민들이 있었고, 군주의 궁궐에는 그를 보좌하는 궁녀와 환관들이 있었다. 일왕(천황)과 확연히 대비되는 이 같은 정치적 자원은 조선 군주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사대부들과 대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랬기 때문에 양측의 대결에는 어느 정도로나마 긴장감이 조성될 수 있었다. 군주 쪽이 밀리기는 했지만, 군주 역시 힘이 없지 않는 데다가 최종 결정권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대결을 지켜보는 쪽은 손에 땀이 날 수 있었다.

군주와 사대부의 대결, 그리고 해결 양상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그런 구도로 전개되는 군주와 사대부의 대결이 정점으로 치달은 뒤에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해소되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이 대결로 인해 극대화된 정치적 긴장이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에 의해 해소되지 못할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비정상적 방식에 의해 긴장이 해소되곤 했다.
 
1506년 중종반정이나 1623년 인조 쿠데타(인조반정) 때처럼 사대부들의 쿠데타에 의해 군주가 교체되는 것이 그중 하나이고, 독살이 의심되는 정황에 의해 군주가 교체되는 것이 또 하나였다.
 
사대부들이 여론의 우위를 쥐고 있고 임금의 군대 내에 분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전자의 방법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고 친(親)사대부적인 군주가 옹립되기 쉬웠다. 반면, 사대부들이 확실한 여론의 우위를 쥐지 못하고 임금의 군대도 동원하기 힘든 경우에는, 독살로 의심되는 정황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고 반(反)사대부적인 군주가 사라지는 일들이 있었다.

사대부들이 쿠데타를 성사시킨 사례가 2건이나 되고, 군주 27명 중 11명과 관련해 독살설이 존재한다는 것은 조선왕조의 정권교체가 실상은 상당히 불안정했으리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외형상 평화롭게 보이는 정권교체도 실제로는 독살 등을 수반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전직 대통령이 죽지 않고 살아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왕조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전직 임금이 죽은 상태에서 신임 임금이 왕좌에 앉는 것이었다.
 
그런데 독살로 의심되는 정황에 의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경우, 새로운 정권 담당자들이 반드시 겪게 되는 난점이 있었다. 죽은 군주의 정통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바꾼 경우에는 이전 군주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 있었지만, 독살로 정권을 바꾼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독살로 군주를 바꾼 세력이 선왕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들의 범행을 실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선왕을 최대한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선왕의 정책을 파괴하는 '묘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 난점이 있기는 했지만, 독살은 쿠데타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방법으로 인식됐다. 독살은 사대부들이 군주에 대한 자신들의 우위를 입증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배치되는 군주를 배제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인식은 조선시대에 독살설이 자주 제기되도록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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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 제15회 임종국상..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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