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출발시간에 맞춰 도착만 잘하면 어렵지 않게 열차나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예매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명절 시즌에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이 줄어든 기차역이나 터미널 대신 명절연휴에 '사람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공항이다. 명절 연휴가 가까워 오면 1년에 몇 번 없는 연휴를 맞아 해외 또는 국내로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면서 공항은 큰 혼잡을 맞는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인천공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등 가까운 나라들과 제주도 같은 국내선 비행기가 운항하는 김포공항 역시 연휴만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일정을 마치면 돌아갈 '내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외국의 공항에서 입국 또는 출국을 하려 할 때 돌아갈 내 나라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난 2004년 아카데미 수상자 톰 크루즈와 캐서린 제타존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미널>은 공항에서 자신의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 남자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든 휴먼 드라마다.
 
 <터미널>은 감독과 배우의 이름에 비해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을 올렸다는 평가에도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터미널>은 감독과 배우의 이름에 비해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을 올렸다는 평가에도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 CJ 엔터테인먼트

 
2003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배우

1969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제타존스는 어린 시절부터 뮤지컬배우를 목표로 춤과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웠고 1981년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며 10대의 나이에 일찌감치 배우 커리어를 시작했다. 제타존스는 90년대 중반까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98년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상대역 엘레나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엔트랩먼트>에서 숀 코너리를 유혹하는 미모의 도둑 역을 맡은 제타존스는 할리우드 진출 초기만 해도 연기보다는 미모가 출중한 배우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2000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을 통해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2002년 드디어 그녀의 대표작 <시카고>를 만났다. <시카고>에서 뛰어난 노래와 연기를 선보인 제타존스는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열었다.

2003년 조지 크루니와 함께 조엘 코엔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참을 수 없는 사랑>에 출연한 제타존스는 2004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대배우 톰 행크스를 만나 <터미널>에 출연했다. 제타존스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미묘한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아멜리아를 연기한 <터미널>은 6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2억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터미널> 이후 곧바로 <오션스 트웰브>에서 브래드 피트의 전 애인이자 유로폴 소속 수사관 이사벨 라히리를 연기한 제타존스는 2005년 마틴 캠벨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7년 만에 재회해 <레전드 오브 조로>에 출연했다. 하지만 호화캐스팅을 앞세워 3억6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던 <오션스 트웰브> 이후로는 흥행에서는 좀처럼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제타존스는 2010년대 들어 톰 크루즈와 함께 한 <락 오브 에이지>, 제라드 버틀러,제시카 비엘, 우마 서먼과 함께 출연한 로맨스 영화 <당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요?>, 이병헌이 출연한 <레드:더 레전드>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2000년 25살 연상의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해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제타존스는 올해 팀 버튼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에 출연할 예정이다.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의 3번째 만남
 
 4년 동안 무인도 생활을 했던 톰 행크스에 공항노숙(?)은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을 것이다.

4년 동안 무인도 생활을 했던 톰 행크스에 공항노숙(?)은 그리 어려운 미션이 아니었을 것이다. ⓒ CJ 엔터테인먼트

 
지난 1998년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처음 만난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는 4년 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까지 가세해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함께 만들었다. <터미널>은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가 세 번째로 만난 작품인데 두 사람은 <터미널>에서도 명불허전의 호흡을 과시했다.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는 <터미널> 이후 11년이 지난 2015년 <스파이 브릿지>를 통해 4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사실 <터미널> 개봉 당시 스필버그 감독과 톰 행크스가 가지고 있던 인지도와 흥행파워를 고려하면 2억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은 결코 만족하기 힘들다(스필버그 감독의 전작이었던 <캐치 미 이프 미 캔>의 흥행성적이 3억5200만 달러, 다음 작품 <우주전쟁>은 6억300만 달러였다). 하지만 <터미널>은 대부분의 장면이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된 잔잔한 휴먼드라마 장르였음에도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을 남기며 선전했다.

지난 2000년 <캐스트 어웨이>를 통해 낯선 곳에서 표류하는 연기를 해본 적이 있는 톰 행크스에게 공항은 오히려 지내기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 톰 행크스는 <터미널>에서도 발군의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웃기고 감동시켰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년 연속 수상에 빛나는 톰 행크스에 대한 관객들의 눈높이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결국 톰 행크스는 주요 시상식에서 연기상 후보에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캐서린 제타존스는 10대 시절부터 항공사에서 20년간 근무하며 곧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퍼스크클래스 승무원 아멜리아 워렌을 연기했다. 아내가 있는 남자와 불륜관계에 있는 아멜리아는 공항에서 자주 마주치는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와 점점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의 감정까지 확인하지만 아멜리아는 눈 오는 날 택시 앞에서 마주친 나보스키와 가벼운 눈인사를 나눈 채 헤어지며 그가 꼭 가야 할 곳으로 보내준다.

비현실적이고 거짓말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터미널>은 놀랍게도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라는 이란인이 겪었던 실화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가는 길에 여권과 서류가 든 가방을 잃어버린 나세리는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파리의 한 국제공항에서 무려 18년 동안 생활했다. 그리고 그의 일기를 바탕으로 쓴 자서전 < The Terminal Man >은 영국과 독일, 일본,중국 등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공항직원이 된 <어벤져스>의 가모라
 
 <터미널>에서 평범한 공항직원을 연기했던 조 샐다나는 <아바타>와 <어벤저스> 등을 통해 세계적인 유명배우로 성장했다.

<터미널>에서 평범한 공항직원을 연기했던 조 샐다나는 <아바타>와 <어벤저스> 등을 통해 세계적인 유명배우로 성장했다. ⓒ CJ 엔터테인먼트

 
사실 <터미널>에서는 나보스키와 아멜리아의 메인 러브스토리보다 나보스키가 두 사람 사이에서 '오작교' 역할을 해줬던 서브 러브스토리가 관객들을 더 설레고 애타게 했다. 그리고 나보스키 덕분에 공항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조연 캐릭터 엔리케와 돌로레스를 연기했던 신예 배우들은 오늘날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한 번쯤 얼굴이나 이름을 보거나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배우로 성장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 나보스키에게 매일 퉁명스럽게 '부적격' 도장을 찍다가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나보스키와 친해지는 돌로레스 역은 <아바타>의 네이티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어벤져스>의 가모라로 유명한 조 샐다나가 맡았다. 재미 있는 사실은 돌로레스가 <터미널>에서 드라마 <스타트랙>의 팬으로 나오는데 샐다나는 실제로 5년 후 <스타트랙:더 비기닝>의 우후라 역으로 출연하며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돌로레스에게 첫 눈에 반했으면서도 용기가 없어 고백을 못하던 엔리케는 동전을 모아 근근이 끼니를 해결하는 나보스키에게 기내식을 제공하면서 돌로레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뻔히 보이는 남자들의 작업 수법이었지만 엔리케의 끈질긴 구애는 결국 결실을 맺는다. 엔리케를 연기한 멕시코 출신 배우 디에고 루나는 <로그원:스타워즈 스토리>와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스타워즈:안도르>의 카시안 안도르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공항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보스키의 순수함에 동화돼 그와 친구가 되지만 관세국경보호청 책임자인 프랭크 딕슨은 끝까지 원리원칙을 지키며 나보스키를 공항에서 쫓아내려 한다. <터미널>에서 본의 아니게 '빌런' 포지션에 있는 딕슨을 연기한 스탠리 투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나이젤과 <퍼스트 어벤저>에서 어스킨 박사,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서 주영 미국대사를 연기했던 배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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