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사극 <슈룹>에서 묘사되는 중전과 후궁들의 자녀교육 열기는 오늘날의 학부모들에 뒤지지 않는다. 이 드라마 제2회는 왕실 여성들이 궁궐 밖의 학자나 성균관 유생을 몰래 불러들여 왕자들에게 비밀 과외를 시키는 장면을 보여줬다. '입시 코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JTBC < SKY 캐슬 >(스카이 캐슬)에 등장했던 학부모들에게 밀리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능가하는 면도 있을 정도다.
 
자녀를 명석하게 키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다를 바 없겠지만, 이 드라마를 움직이는 궁궐 학습 열기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점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왕실의 학습열을 추동하는 힘이 주로 왕실 내부에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대 임금들의 학업을 추동한 힘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왕족들도 학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조선시대 왕실의 학습열을 추동하는 원동력은 왕실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더 많이 생성됐다. 이 점은 궁궐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인 역대 임금들의 학업을 추동한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대통령은 국정 운영만 잘해도 지지율이 올라가지만, 옛날 임금들은 그것에 더해 공부까지 잘해야 칭송을 받았다. 국정 운영과 공부를 다 잘해야 했으므로, 오늘날의 대통령보다 훨씬 바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군주의 학업 책임이 꽤 과중했다. 군주는 궁궐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관념이었다.
 
조선시대 군주들을 그런 방향으로 몰아간 사람들은 유교 사대부들이었다. 이들이 군주에게 공부를 강권한 이유는 왕조를 유교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가가 유교 이념에 따라 작동하려면 군주를 유교 공부로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었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목적도 있었다. 유교 사대부들은 거의 다 지주 가문에 속해 있었다. 본인이나 부모가 지주가 아닌 경우에는 지주들로 구성된 문중의 후원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이들은 유교이념 확산뿐 아니라 지주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인단체 대표들이 대통령과 세미나를 자주 하게 된다면,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국가가 운영될 가능성이 커진다. 대통령이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세미나를 자주 열게 된다면, 국가 운영에서 노동자와 대중의 이익이 좀더 고려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그런 목적을 띤 세미나를 자주 열었다. 경전을 연구하는 자리라는 의미를 가진 경연(經筵)이란 세미나를 열어 군주의 국가 운영을 사대부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했다.
 
경연은 원칙상 하루에 세 번 있었다. 조강·주강·석강이 그것이다. 이게 힘들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열었다.
 
경연이 열리면 임금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정면에 신하들이 앉았다. 좌측에는 1품 신하, 우측에는 2품 신하가 앉았다. 다른 신하들은 정면을 차지했다. 이런 상태에서 읽고 해설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경연이 진행됐다. 주된 교재는 사서삼경 같은 유교 경전이나 <고려사>·<춘추>·<한서>·<통감강목> 같은 역사서였다.
 
임금은 국정 운영 중에도 매일 같이 이런 경연을 준비했다. 하루에 세 번 준비할 때도 있었다. 경연에 참석해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토론을 해야 했으니, 경연과 경연 중간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유교 사대부들이 이런 부담을 가중시켰으니, 궁중의 학습열을 추동한 힘은 <슈룹>에서처럼 왕실 내부가 아니라 유교 사대부들에게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연에서 군주와 신하 간에 실랑이가 벌어진 일도 있다. '시집 좀 읽으면 안 되겠느냐?'는 군주와 '시집은 안 된다'는 신하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사례가 있다.

왕의 학습에서 '시' 배제한 신하들
 
  tvN <슈룹> 한 장면.

tvN <슈룹> 한 장면. ⓒ tvN

 
신하들은 왕의 학습에서 시(詩)를 가급적 배제했다. 물론 완전히 막은 것은 아니다.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403년 사이에 나온 춘추시대의 시를 모은 책으로 유교 경전에 포함돼 있는 <시경>을 공부하는 것만큼은 막지 않았다. 하지만 <시경> 이외의 시집은 원칙상 배제했다.
 
이에 대해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이 불만을 품었다. 그는 불만을 신하들에게 털어놓았다. 음력으로 성종 15년 10월 9일자(양력 1484년 10월 28일자) <성종실록>에 따르면, 이 임금은 명나라에서 편찬된 <문한유선>이란 시집을 공부하자고 주장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그래서 성종은 뜻을 꺾어야 했다.
 
신하들은 "저속한 내용이 담긴 시집은 안 됩니다"라며 반대했다. 그러자 성종은 "숙녀가 남자를 유혹하는 시가 나오는 <시경>도 공부하는데, <문한유선>이 안 되는 이유는 무어냐?"고 물었다. 신하들은 "<시경>은 이미 사서삼경이란 경전에 포함됐으므로 <문한유선>과는 다릅니다"라고 답했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로 임금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신하들이 군주의 문학 공부를 막을 때 내세우곤 하던 명분이 있었다. 문학에 심취하면 국정을 제대로 돌아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시집 공부를 막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조 임금처럼 국정을 너무 열심히 체크하는 군주는 신하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시집 공부를 차단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전에 심취한 사람에 비해 문학에 심취한 사람은 자유로운 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군주가 유교 이념에 얽매이기를 바라는 사대부들의 입장에서는 군주가 영혼의 자유를 갖게 되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도 사대부들의 고려 사항에 포함됐으리라고 볼 수 있다.
 
임금과 사대부는 정치 영역에서는 주군과 신하의 관계였지만, 경연 같은 학습 현장에서는 학생과 스승의 관계로 역전됐다. 이런 경연 자리에서는 신하들이 '갑'이 되어 거리낌없이 임금을 나무라곤 했다.
 
일례로, 젊은 개혁파인 조광조는 중종 임금에게 "요즘 공부하실 때마다 자세가 좋지 않으니 바로 앉으시라"고 충고했다. 이 시대의 정4품 신하 중 하나는 "여색에 빠지는 자는 용렬한 임금입니다"라고 중종에게 말했다. 이 시기에 중종은 홍희빈이라는 후궁에게 푹 빠져 있었다.
 
사대부들의 입장에서는 임금을 학생 신분으로 내려앉히는 학습의 장을 많이 만드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왕실의 학습열을 높이는 것이 사대부들에게 유리했다. <슈룹>에서는 왕실의 교육열이 '자가발전'되고 있지만, 그 발전기를 돌리는 사람들은 주로 사대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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