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금토 오후10시 방송)는 참 독특하다. 경쾌함 속에 묵직한 메시지가 있고, 한없이 웃기다가도 곧잘 심각해진다. 천지훈(남궁민) 변호사의 과거 이야기들이 나왔던 7,8회는 슬프기까지 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즐기며 드라마에 빠져들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곤 한다.
 
이 독특한 드라마를 이끄는 이는 바로 천지훈. 고데기로 말은 파마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체크무늬 촌스러운 양복을 입지만, 누구보다 기발한 방식으로 의뢰인들을 구해내는 그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지곤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과 그 표정마저 읽을 수 없게 선글라스를 늘 쓰고 다니는 그는 분명 '사연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연이 밝혀진 7,8회 방송분을 보면서 나는 내가 느낀 불안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천지훈 변호사는 애도하는 중이다. 경쾌하고 당당한 모습과 달리 그의 마음은 상실의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 보여지는 경쾌함과 마음 속 슬픔의 격차가 내겐 불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파마머리에 선글라스, 체크무늬 양복이 트레이드 마크인 '천원짜리 변호사' 천지훈

파마머리에 선글라스, 체크무늬 양복이 트레이드 마크인 '천원짜리 변호사' 천지훈 ⓒ SBS

   
애도하는 사람들의 마음
 
누구나 사랑하는 이를 잃는 경험을 한다. 조부모, 애인 혹은 배우자, 형제자매, 친구, 때로는 자녀 그리고 반려동물까지. 상실은 살면서 겪어내야 하는 가장 두려운 일 중 하나다. 이런 상실에 따르는 심리적 경험을 '애도'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애도할 때 우울과 불안, 슬픔 등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가 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애도 중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병리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동반되는 애도를 경험한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함께 겪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연이어 잃거나, 자살 등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죽음을 맞닥뜨릴 때, 살인, 자연재해, 테러 등으로 인해 너무나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동반하는 애도 경험을 하고, 이럴 땐 적절한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애도처럼 심리적 고통 속에 있을 때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대처방식을 작동시킨다. 심리학자 래저러스와 포크먼은 대처를 '개인의 자원을 청구하거나 초과하는 특수한 외적 내적 요구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하면서 '정서중심대처'와 '문제중심대처'로 나누었다. 정서중심대처는 정서의 수용과 조절, 사회적지지 추구 등을 통해 접근하지만 때로는 정서를 억압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문제중심대처는 정서를 돌보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발생한 상황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방식이다.
 
애도에서도 이 두 가지 대처방식이 작동하는데 이는 개인의 기질과 성격, 처한 환경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이는 자신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타인에게 지지를 구하며, 슬픔이 충분히 수용 받기를 바란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며 상실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해 슬픔을 잊으려 한다.
 
천지훈 변호사의 애도
 
그렇다면, 드라마 속 천지훈 변호사는 어떨까? 우선, 지훈은 '트라우마'급의 애도를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훈은 타인에게 알릴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아버지 김윤섭 의원(남명렬)을 "아버지 같은 검사가 되고 싶었을" 만큼 (7회) 존경해왔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의 비리를 알게 되고 이를 직접 수사한다. 이 과정에서 윤섭은 자살을 하고 지훈은 이 장면을 목격한다. 여기서 지훈은 이미 두 번의 상실을 경험했다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정직함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도 일종의 심리적 상실이었을 테고, '자살'을 목격한 일은 분명 트라우마로 마음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지훈은 "모두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다가와 준 사람"(8회)인 약혼녀 주영(이청아)마저 잃는다. 주영 역시 '살해'라는 용인하기 힘든 방식으로 죽음을 맞는데 지훈은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상실을 연거푸 겪은 셈이다. 지훈이 겪은 이 상실들은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남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것들이다.
  
 지훈은 주영과 사랑에 빠지지만, 주영마저 세상을 떠난다.

지훈은 주영과 사랑에 빠지지만, 주영마저 세상을 떠난다. ⓒ SBS

 
이런 상황에서 지훈은 자신의 감정을 돌보기보다는 철저하게 '문제중심대처'로 일관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는 슬픔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아버지의 죽음에 따르는 의문을 풀기 위해 나선다. 주영의 죽음 후에도 그는 정서적인 위로와 지지를 구하기보다 주영의 죽음에 대해 수사하면서 그녀의 뜻을 이어받아 '천 원짜리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는 그가 슬픔을 표현하고 위로받는 것 대신 택한 나름의 '문제중심' 애도로 볼 수 있다.
 
지훈의 이런 모습은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아버지를 둔 그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을 억누르며 자라났을 것이다(7회에 따르면 짜장면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참아내는 수단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장례식 때도 그는 슬픔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처럼 정서를 억압하며 살아 올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애도 과정에서 맞닥뜨린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도록 수사해야 하는 검사라는 직업상, 그는 감정을 배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익혀왔을 것이다.
 
건강한 면과 그렇지 않은 면 
 
지훈의 이 같은 애도방식은 건강한 면과 그렇지 못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선 지훈의 '문제중심' 애도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흔히 겪기 쉬운 감정인 죄책감으로부터 그를 보호했다. 8회 형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너의 수사 때문이야"라고 말했을 때에도 그는 '자기 탓'하지 않고, '반드시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감정보다 주변의 문제상황을 먼저 보는 그의 시각이 자책의 덫에서 그를 구한 셈이다. 주영이 하고자 했던 일을 대신하며 고인의 뜻을 따르는 애도 역시 타인을 돕고, 스스로에게도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강한 면을 지니고 있다.
 
반면 그의 애도는 철저하게 정서를 외면하고 있다. 지훈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통곡하지 않으며, 8회 주영을 떠올리며 눈물이 흐르는 찰나에 주영의 첫 의뢰인이었던 현 사무장(박진우)를 맞닥뜨리고는 선글라스로 슬픔에 젖은 자신의 눈을 가린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정서를 외면한다.
 
하지만,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외상적 상황에서는 '문제중심대처'보다 '정서중심대처'가 더 효과적이라는데 동의한다. 예측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는 놀라고 화나고 슬픈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고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고 수용해주는 게 우선되어야 마음의 건강을 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지훈의 애도엔 많은 아쉬움이 있다. 냉철하게 수사하고, 헌신적으로 의뢰인을 돕는 그의 모습이 매력적이면서도 어딘지 위태해 보이는 것은 돌보아지지 않은 슬픔들이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지훈 변호사가 자신의 슬픔을 돌볼 수 있기를, 그래서 선글라스 뒤 그의 눈을 보다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천지훈 변호사가 자신의 슬픔을 돌볼 수 있기를, 그래서 선글라스 뒤 그의 눈을 보다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SBS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훈이 시보로 온 마리(김지은)와(3회)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는 양상구씨(7회)에게 건넨 말이다. 나는 이제 그가 '여러 가지 해결 방법'에는 자신의 정서를 돌보는 것도 포함됨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들을 수용해주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보이며 위로받았으면 한다. 그럴 때 그가 돌보는 의뢰인들처럼 그 역시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행인 건, 이런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사무장은 3회 지훈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리에게 "나도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그게 천변인 것 같아.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라고 말한다. 사실, 사무장의 방식이 옳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애도를 하고 그 애도의 방식은 일단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존중과 수용만이 억눌러왔던 정서를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수용하는 기반이 되어 준다.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활약하면서 그가 자신의 정서도 돌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드라마의 말미쯤엔 선글라스 뒤에 숨겨진 그의 매력적인 눈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천원짜리 변호사 남궁민 이청아 상실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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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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