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문제가 한국만큼 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다른 나라라 해서 이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파트 형태 공동주택이 밀집한 서울 등 대도시의 삶은 다른 나라에선 그리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구조물 안에 많은 세대를 몰아넣고 단가를 아끼기 위해 방음시공조차 부실하게 하는 관행으로 인하여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되곤 하였다. 특히 아이를 키우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행위는 과거라면 충분히 용인될 거주자의 자유 영역임에도 공동주택에선 자제해야 할 잘못이 되곤 하니 사람의 삶을 위축시키는 주거의 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층간소음이 갈등의 원인이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터넷 상에선 우퍼를 사서 천장에 부착하라거나 귀신소리처럼 들리는 음악을 세게 틀어놓으라거나 하는 것이 대책으로 언급되기까지 할 정도다. 이쯤 되면 정말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영화며 소설이 흥행을 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다.
 
사잇소리 포스터

▲ 사잇소리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층간소음이 스릴러 소재가 됐다

13일 개봉한 김정욱 감독의 <사잇소리>도 그런 영화다. 걸그룹 '티아라' 출신 류화영과 드라마 <스토브리그>로 얼굴을 알린 박진우가 주연을 맡았다.

이야기는 어느 아파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족들과 함께 401호에 사는 작가지망생 은수(류화영 분)는 공모전 소재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가족이 잠든 새벽마다 글을 쓰는 그녀에겐 답답한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다름 아닌 윗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이다. 무던한 가족들은 잠만 잘 자고, 곤두선 은수만 천장에 대고 막대기질을 할 뿐이다.

상황은 한 순간에 진전된다. 다름 아닌 공모전에 입상한 선배의 강연에서다. 선배는 지망생들에게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쓰란 것이다. 은수에게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윗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가만히 앉아 스트레스를 받느니 소리의 근원을 추적해보겠다 마음을 먹는다. 은수는 501호에 누가 사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베일에 싸인 5층 남자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그 모습을 바꿔간다. 젊은 여성이 중년의 남성을 추적한다는 설정은 그 힘의 비대칭성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과 맞물려 이색적인 감상을 안겨준다. 추적당하는 게 아니라 추적하는 과정으로부터도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인가, 제작진이 반드시 고심했어야 할 이 같은 질문에 대하여 감독이 어떠한 답을 내렸을지 적잖이 궁금하다.
 
사잇소리 스틸컷

▲ 사잇소리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일상을 공포로 전환한다는 것

일상을 공포로 전환하는 건 공포물의 오랜 관심이다. TV 속에서 귀신이 기어 나오게 했던 <링>이나 이불 속에서 귀신 얼굴을 맞닥뜨리게 한 <주온> 같은 영화는 꼭 그런 이유로 공포물의 명작으로 남았다. 층간소음이란 설정 역시도 일상적 소재를 공포로 전환하기 좋은 장치였을 것이다. 소음은 나는데 그것이 뭐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없다는 것, 얇은 한 층의 벽을 두고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웃의 관계는 예기치 못한 공포를 불러오기 좋은 설정이었을 테다.

불행히도 영화는 이 같은 설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여성 주인공이 남성의 뒤를 쫓아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이 제대로 긴장을 빚어내지 못한다. 더욱이 인물은 거듭 보통의 인간이라면 하지 않을 결정을 반복하고, 그로부터 위험을 초래하기 일쑤다. 제대로 긴장을 끌어내지 못하니 무리수를 두는 것인데 그로부터 영화가 휘청거리기 시작한다는 점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적잖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혹평을 내기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기발할 수 있었던 공포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가 편치가 않다.

공포는 알지 못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두렵다. 악당은 카메라 앞에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카메라 뒤에 숨어 거듭 주인공과 관객을 위협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너무나 빨리, 그리고 허술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층간소음이라면 더욱 자연스럽고 집요하며 해소하기 어려운 공포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층간소음을 소재로 쓴 영화는 이보다는 나았어야 하는 것이다.
 
사잇소리 스틸컷

▲ 사잇소리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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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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