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조지아, 러시아어로 그루지야라고 알려진 나라가 있다. 남으로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북으로는 러시아와 맞댄 동유럽 국가다. 남으로 팽창하려는 러시아와 지속적 갈등을 벌이며 EU와 나토에 가입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어 국제 뉴스에 등장하기도 한다.

인구가 채 400만 명이 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함을 벗지 못한 조지아는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때문에 미국의 조지아주와 자주 혼동되며 이보다도 덜 유명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때도 많다. 조지아가 배출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역시 스탈린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수장을 배출했으나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지 못한 조지아는 민족주의적 성향과 함께 반러시아 감정이 두드러진 국가로 꼽힌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포스터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강인한 민족주의 가운데 쇠락하는 현실

여기 조지아의 오늘을 다룬 영화가 있다. 배경은 수도 트빌리시의 조지아 국립무용단이다. 이곳 학생인 메라비(레반 겔바키아니 분)와 여자친구 마리(아나 자바히슈발리 분)는 열 살 때부터 함께 춤을 춘 댄서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들의 앙상블을 보여주는데, 꼿꼿하고 강인한 춤이 단연 인상적이다. 그런데 교수는 이들의 춤이 탐탁지 않은 듯하다. 그는 메라비를 호명해 좀 더 힘 있게 출 것을 주문한다. 조지아의 춤엔 조지아의 기상이 담겨야 한다고, 그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는 무용단에 신입생이 들어오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자 단원 이라클리(바치 발리시빌리 분)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한 쪽 귀에 귀걸이를 하고 온 그는 들어오자 마자 교수에게 지적을 받는다. 그는 힘 있는 춤선으로 단숨에 교수의 마음을 붙든다. 교수는 거듭 실수를 반복하는 메라비 대신 이라클리에게 마리와의 앙상블 자리를 내준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질투가 애정으로, 이 댄서들의 사랑

메라비는 이라클리를 질투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강인함을 가진 그의 춤을, 제 자리를 꿰찬 그의 상황을 질투한다. 질투는 관심이 되고, 관심은 이내 또 다른 무엇으로 나아간다. 마음이란 생각처럼 흐르지 않는다.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메라비와 이라클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선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감정이 흘러넘치는 순간이 온다.

국립 무용단에선 한 명의 무용수를 선발하는 오디션을 열기로 한다. 학생들 사이에선 본부 무용수 한 명이 동료들로부터 폭행당하고 쫓겨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인다. 폭행의 이유도 함께 퍼져나간다.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다. 부모에 의해 외딴 수도원으로 보내졌다는 그의 자리를 두고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오디션을 통과할 유력한 후보는 단 둘이다. 메라비와 이라클리, 그들은 온 삶을 춤에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금 더 유리해보이는 건 이라클리다. 그의 강인한 몸과 선은 조지아의 남성적 춤과 잘 어울린다. 반면 메라비의 섬세함은 조지아의 춤엔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 날 연습실을 찾아온 높은 인사는 조지아의 춤엔 조지아의 기상이 담겨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간다. 그들이 말하는 조지아의 기상이란 대체 무엇일까.

영화는 메라비가 동성애자란 사실이 학생들 사이에 알려지며 급속도로 전개된다. 학생들이 메라비를 따돌리고 괴롭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라클리는 말없이 무용단을 떠나버린다. 메라비는 끝도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조국의 정신과 인간의 긍지 사이에서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국립무용단 단원을 꿈꾸는 이들의 도전을 보여주는 한편, 조지아의 경직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강조되는 민족적 기상은 도리어 조지아의 아이들과 그 가능성을 억누른다. 조지아의 짙은 가난이 수도인 트빌리시에서조차 희망을 앗아간다. 더는 부자가 아닌 마리는 한때 유학한 런던을 끝도 없이 추억한다. 그 추억은 차라리 집착이며 미련이라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메라비는 춤을 춘다. "그만 추라"는 감독관들의 제지에도 굴하지 않고 저만의 춤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감독관은 교수에게 "도대체 저 춤이 뭔가" 하고 묻지만 교수도 메라비가 추는 춤이 무언지를 알지 못한다. 메라비는 저만의 춤을 춘다. 더 섬세하게, 더 부드럽게, 더 매혹적으로. 중단하라는 명령에도 북잡이는 북을 치길 멈추지 않는다. 지켜보는 마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메라비의 춤은 사람들을 끌어 잡는다. 멈추지 않는 그 기상이 "더 강하게"만 외치는 조지아의 춤선생들보다 훨씬 더 조지아답다.

감독 레반 아킨은 조지아에서 스웨덴으로 이민 온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스웨덴인이지만 조지아인의 정체성도 함께 이어받은 그는 스웨덴 자본으로 제 뿌리를 찾는 영화를 찍었다. 조지아의 경직성과 후진성을 그대로 내보인 탓에 개봉 당시 상영반대 시위가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지아 내 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단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영화 속 메라비의 형은 메라비에게 조국을 떠나라고 말한다. 조지아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소리죽여 말한다. 제 뿌리를 향하여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때로 나는 제가 몸담은 곳을 향해 가장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이만큼 그를 더 애정하는 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조지아에 희망은 없다고, 영화 속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는 아킨으로부터 제 부모의 조국이며 저의 뿌리를 향한 애증이 읽히는 건 그래서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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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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