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 ⓒ 하성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칸 국제영화제의 예산은 국가와 민간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지원할까. 정답은 간단치 않다. 2010년대 초 기준으로 칸 영화제의 예산은 약 300억 원이었는데 이중 중앙과 지반 정부가 절반을 지원했고, 기업과 자체 수입 등으로 나머지 절반을 충당했다.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인에게 '칸'이란 프랑스의 관광 도시를 세계에 각인시킨 '전 세계 1등' 국제영화제의 예산을 중앙과 지방 정부가 절반의 예산을 도맡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2021년 기준 칸 국제영화제의 예산은 2000만 유로(277억)이었다.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에서 최근 강릉과 평창 국제영화제가 폐지되는 현실에 대한 심도 깊고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이날 토론회에는 사회를 맡은 배장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 발제를 한 김형석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과 함께 방은진 방은진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준동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상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박광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성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각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은 일개 지자체장이나 정치적 리더들의 의견과 결정 하나로 수십 억 예산의 국제영화제들이 폐지되는 구조적인 현실을 개탄하는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토론을 이어갔다.

먼저 배장수 부집행위원장은 '대한민국 국제영화제, 현황과 전망'이란 발제에서 칸 국제영화제와 같은 해외 국제영화제들의 예산 구성들을 소개했다. 칸과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1955년 연방 정부가 영화제 재정 지원을 시작해 전체 예산의 80%를 중앙과 지방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를 기업과 자체 수입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2010년대 초 기준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전체 예산은 285억이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중앙과 지방정부 예산이 60%를 차지했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들이 공히 중앙과 지방정부 예산이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미나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와 도쿄 국제영화제의 경우, 중앙과 지방정부가 각각 20%와 30%를 부담 중이다. 이처럼 해외의 경우도 정도가 차이가 있을 뿐 세금이 영화제 예산의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비교불가인 국제영화제들의 홍보효과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 정지욱

 
국제영화제들의 위기 의식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최근 평창과 강릉 국제영화제가 폐지 수순을 밟게 되면서 언론지상에 가장 많이 등장한 논리가 바로 국제영화제의 경제적 효과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와 김홍규 강릉시장이 두 영화제에 예산 중단 등을 지시한 근거도 바로 이 경제 논리라 할 수 있다.

국제영화제 영화제 집행부 연합은 이와 관련된 이날 국제영화제의 경제효과 창출에 대해 수치가 포함된 조사 자료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2012년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총 111억이고, 생산유발 효과는 774억,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342억으로 나타났다.

또 부천문화재단과 리얼미터 조사 자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권장하는 직접 효과 방식을 적용한 조사 결과 25년 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누적 예산은 825억이었고,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2,006억이었다. 또 홍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국내외 매체 보도는 지난 25회 영화제만 총 2,985건이었다. 이에 대해 배장수 부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이만한 홍보 효과를 내고 있다"며 이렇게 부연했다.

"프랑스가 360개의 영화제들이 눈만 뜨면 개최되고 있다. 우리 영화제들 숫자가 결코 많은 게 아니고 난립 수준도 아니다. 국제영화제 명칭을 사용하는 영화제는 25개고, 또 영화진흥위원회가 발전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국제영화제는 총 15개로 큰 규모의 국제영화제가 8곳이고, 중소규모도 7곳 정도다. 모두 기준에 맞춰가며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은 영화제 정관들에 아예 포함돼 있지 않다." (배장수 부집행위원장)

이준동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전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 위기의 본질은 지도자 리스크"라며 "강원과 평창 영화제들 뿐만 아니라 전주도 자칫하면 그런 위기가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자체장들이 영화제나 문화 관련 예산을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시혜라 생각하는 게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 전 집행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도로나 상수도처럼 문화인프라는 공적 지도자 책임과 의무인데 마치 정치권력들이 받는 보상이라고 여기는 게 문제"라며 "영화제만 놓고 보면, 경제적 효과를 많이 얘기하고 동의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시선이다. 기업들은 돈을 내면 이익을 가져가야 하는데 영화제 개최의 가장 큰 이익은 영화제가 가져가는 거다. 그 만한 비용 대비 홍보효과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K-문화 사랑에 역주행하는 국제영화제들의 위기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

8일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이 부산영상산업센터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 <대한민국의 국제영화제를 진단하다> 토론회. ⓒ 하성태

 
이번 토론회는 지난달 24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간 중 열린 '영화제 지원 축소 및 폐지에 따른 영화인 간담회'의 연장선상이었다. 강릉국제영화제 및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지자체 예산 지원이 중단되고,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여타 중소 영화제들도 폐지되는 곳이 늘면서 영화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및 블랙리스트 사태를 거치면서 내외적 부침을 겪고 이를 극복해 낸 바 있다. 이날 토론회를 후원한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은 토론회에 앞선 인사말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외 모든 영화제들의 힘을 받아서 두 번의 정치적 파동을 이겨냈다"며 "(영화제들의 연이은 폐지 국면에서)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앞장을 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들이 이렇게 부활하는 마당에 정작 국제영화제가 어려움을 겪고있다. 하마터면 외면할 뻔했는데 죄송하게 생각한다. 부산도 두 번이나 이런 경험을 했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주위 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됐다.

이렇게 지자체장이 갑자기 결론을 내리는 풍토에 경악했다. 이런 일이 부산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더 심해지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울분을 참지 못하겠다. 작은 영화제들까지 폐지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런 부침을 겪어야 하나. 정치적 문제인 거 같고, 동병상련을 느낀다. 할 수 있는 일 찾아서 하겠다. 영화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앞장서서 행동하겠다." (이용관 이사장)


앞서 김형석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의 경과 보고로 시작한 이날 토론회는 배장수 부집행위원장의 발제 및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의 정견 발표 등으로 진행됐다. 김 부집행위원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강릉과 평창 영화제들이 공히 '(예산 중단을 위한) 언론을 통한 공론화 작업', '(지자체의) 일방적 통보 단계', 뒤이은 '(지자체의) 포퓰리즘적 홍보' 과정을 거쳐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고 현재까지 상황을 정리한 뒤 이런 주장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세계에서 제일 인정받는 게 K가 붙는 '문화'고, 정치경제로 국민들이 힘들어할 때 문화를 통해 힘을 받고 힐링을 한다. 그렇지만 문화의 제일 위에 정치가 올라가 있는 잘못된 구조가 고쳐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자립기반을 고민해도 국제영화제를 이어가기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매년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행사인데 지속과 폐지를 단 한 명이 결정하는 구조가 긴 세월 지속돼 온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김형석 부집행위원장)

한편 국제영화제 집행부 연합은 향후 강릉과 평창 국제영화제 폐지 및 영화제들이 맞고 있는 위기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도록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내년을 여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까지 대응 방안을 구체화시킨다는 계획이다.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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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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