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든 단편영화가 2005년 서울 국제청소년영화제에 출품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한 박보영은 청소년 배우를 거쳐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미혼모 황정남 역을 맡았다. 4차 오디션까지 본 끝에 힘들게 황정남 역에 캐스팅된 박보영은 기대를 뛰어넘는 연기로 <과속스캔들>의 820만 관객 동원에 크게 기여했고 본인도 무려 8개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쓸어 담으며 스타로 도약했다.

1992년 아역배우로 데뷔한 스칼렛 요한슨은 <나 홀로 집에3>와 <베이브는 외출 중>,<판타스틱 소녀 백서> 등에 출연했지만 청소년 배우에서 성인배우로 넘어갈 계기를 좀처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던 2003년, 요한슨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남편과 함께 도쿄로 여행 온 샬롯 역을 맡아 34세 연상의 베테랑 배우 빌 머레이와 묘한 감성의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성인 배우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아역 또는 청소년 배우들이 성인 연기자로 순조롭게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박보영의 <과속스캔들>이나 스칼렛 요한슨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처럼 결정적인 계기가 될 만한 작품이 필요하다.

데뷔 후 10년 가까이 아역 및 청소년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국민 남동생' 유승호에게는 이 작품이 성인배우로 성장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2011년 김하늘과 함께 출연했던 오감추적 스릴러 <블라인드>였다.
 
 <블라인드>는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임에도 전국 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블라인드>는 규모가 크지 않은 영화임에도 전국 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 (주)NEW

 

'배우 유승호'에 대한 평가

1999년 아동복 모델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유승호는 2002년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에서 시골 할머니에게 맡겨진 도시 아이 상우를 연기하며 영화에 데뷔했다.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고즈넉한 시골 풍경만 나오는 <집으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서울에서만 150만 관객을 동원하는 이변을 일으켰고 연기경력이 많지 않았던 유승호는 단숨에 잘 나가는 아역배우로 도약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04년 <돈 텔 파파>에서 정웅인의 아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김명민의 아역, <슬픈 연가>에서 권상우의 아역을 연기한 유승호는 2006년 영화 <마음이>에서 찬이 역을 맡아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파워(?)를 입증했다. 중학생으로 자란 유승호는 2007년 <왕과 나>에서 어린 성종,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 <선덕여왕>에서 김춘추 역을 맡으며 잘 자란 청소년배우로 착실히 경력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 4교시 추리영역 >과 <공부의 신> 등에서 연속으로 학생 역할을 맡으며 '국민 남동생' 이미지로 정체돼 있던 유승호는 2011년 안상훈 감독의 스릴러 영화 <블라인드> 를 만났다. <블라인드>에서 오랜만에 작품 속에서 교복을 입지 않은 역할을 맡은 유승호는 김하늘과 함께 연쇄살인마를 막아내는데 일조하고 의경이 되는 기섭을 연기했다.

<블라인드> 이후 <아랑사또전>과 <보고싶다>에 잇따라 출연하며 청년연기자로 자리를 잡아가던 유승호는 2013년 돌연 입대를 선택했다. 유승호는 전역 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출연해 남규만 역의 남궁민과 치열한 연기대결을 펼쳤다.

2020년 드라마 <메모리스트>에서 기억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형사를 연기한 유승호는 지난 2월에는 이혜리와 함께 드라마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 출연했다. 사실 유승호는 아역시절부터 쌓아온 오랜 경력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배우로서 '한 방'을 만나지 못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만으로 30세도 채 되지 않은 '배우 유승호'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이른 게 아닐까.

아시아 4개국에서 리메이크된 스릴러 수작
 
 시각장애인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김하늘은 청룡영화제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친 김하늘은 청룡영화제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 (주)NEW

 
촉망 받는 경찰대생 수아(김하늘 분)는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고 자신도 눈을 다쳐 시각장애인이 됐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늦은 밤 운 좋게 택시를 탄 수아는 차가 외부충격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만 기사는 개와 부딪힌 거라며 수아를 안심시킨다. 이웃주민의 실종으로 경찰조사를 받게 된 수아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경찰들로부터 무시 당하지만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뛰어난 감각을 통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또 다른 목격자 기섭(유승호 분)은 수아와 달리 뺑소니범의 차량이 택시가 아닌 고급 외제차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네에서 문제아로 취급받는 기섭의 말은 거짓말로 취급 당했고 기섭은 돌아오는 길에 범인의 기습을 받고 기절한다. 기섭은 동네 주민이 나타나면서 목숨을 구하지만 범인은 또 한 명의 목격자인 수아를 노린다. 지하철 역에서 큰 위기에 처한 수아는 안내견 슬기(달이 분)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수아, 기섭과 함께 범인을 쫓던 조형사(조희봉 분)마저 살해당하고 범인은 조형사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수아를 보육원으로 유인한다. 수아와 기섭은 보육원 쇼파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는 범인과 대치하고 기섭은 범인과 혈투 끝에 쓰러진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수아는 보육원의 전기를 차단한 다음 범인과 술래잡기를 하고 최후의 순간 사물이 가까워질수록 진동이 빨라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구를 활용해 접근하는 범인을 벽돌로 가격해 제압했다.

청순가련 멜로배우의 이미지가 강했던 김하늘은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하늘은 <그녀를 믿지 마세요>와 <청춘만화>,<6년째 연애중>처럼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에 출연하며 '로맨틱 코미디 전문'이라는 또 다른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 김하늘에게 <블라인드>는 꽤나 과감한 변신이었는데 김하늘은 <블라인드>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시나리오를 쓴 최민석 작가가 대종상 시나리오상을 받았을 정도로 각본이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은 <블라인드>는 중국과 일본, 인도, 베트남에서 각각 리메이크됐다. <나는 증인이다>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중국 버전에서는 EXO의 전 멤버 루한이 출연해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보이지 않는 목격자>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일본 버전에서는 주연을 맡은 요시오카 리호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베테랑 배우(?) 달이의 눈물 겨운 열연
 
 <마음이> 1,2에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 달이는 <블라인드>에서도 관객들을 울리는 열연을 펼쳤다.

<마음이> 1,2에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 달이는 <블라인드>에서도 관객들을 울리는 열연을 펼쳤다. ⓒ (주)NEW

 
조희봉은 최동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비리경찰 박형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한명회를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악역 이미지가 강한 배우로 인식됐다. 하지만 <블라인드>에서는 범인을 잡겠다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조형사 역할을 맡아 수아, 기섭과 함께 열심히 범인을 쫓았다. 특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가 무시하던 목격자 수아의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인물이 바로 조형사였다.

<블라인드>는 여느 스릴러 영화처럼 영화 말미에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며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반전(反轉)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범인의 존재가 비교적 빨리 드러나는 편이다. 평소엔 산부인과 의사지만 수아와 기섭을 죽이려 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최명진 역은 양영조가 맡았다. 그는 지난 2006년 독립영화 <프락치>를 통해 시라큐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과 2010년 <마음이> 1,2편에서 나란히 유승호, 송중기와 호흡(?)을 맞췄던 달이는 <블라인드>에서 5년 만에 유승호와 재회했다. 하지만 <블라인드>에서는 맹인안내견 슬기 역을 맡으며 유승호가 아닌 김하늘과 연기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특히 범인 최명진에게 쫓기던 수아가 엘리베이터에서 잡히기 직전에 슬기가 목숨을 던져 수아를 지켜내는 장면은 긴장하던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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