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배우 하정우 인터뷰 이미지

ⓒ Netflix


"일부러 숨거나 피한 것은 아니었다. (말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에 제가 어떻게 해명을 해야할까, 해명은 곧 변명이 될 것 같아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다렸다."

배우 하정우가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실이 알려진 후 2년 만에 입을 열었다.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 모처에서 만난 하정우는 인터뷰에 앞서 "많은 분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배우 하정우 아닌 김성훈으로 시간 보냈다"

지난 7일 제작발표회에서 관련 언급을 피했던 하정우는 "제작발표회에서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사죄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 자리에서 하기 보다는 대면 인터뷰를 통해 직접 사과드리고 싶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정우는 지난해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법정에 섰다. 1심에서 3천만 원 벌금형이 선고되었고 하정우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원심이 확정됐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배우 하정우를 떠나, 김성훈이라는 사람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했고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 사건을 겪어서도 분명히 있지만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잘못했던 것이나 상처줬던 것은 무엇이 있었나에 대해서 진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 19가 한창이어서 여행을 쉽게 갈 수도 없었던 시간이었고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하정우는 사건이 알려진 이후에도 제작을 강행한 윤종빈 감독에게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제 입장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미안했다. 지금도 그렇다"며 "<수리남> 뿐만 아니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영화들도 있다. 많은 분들에게 피해를 드린 것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까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영화 <클로젯> 이후 2년여 만에 공개된 하정우의 신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 수리남을 장악한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밀매 조직을 운영하다 붙잡힌 조봉행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정우는 국정원 요원과 함께 마약왕 전요환(황정민 분)의 실체를 밝히려는 민간인 강인구로 분했다. 

극 중에서 강인구는 수리남의 홍어를 싸게 수입해 한국에 유통하려 했으나, 한인 목사 전요환에게 속아 마약사범으로 현지에서 징역형을 받는다. 사업이 망한 것은 물론 모은 돈까지 모두 날리게 된 강인구는 작전을 수행해주면 보상해주겠다는 국정원의 제안을 받고 비밀 요원이 되어 전요환에게 접근한다. 하정우는 이 이야기를 알게 됐던 8년 전 직접 윤종빈 감독에게 기획안을 건넸다고 털어놨다. 

"제가 처음 (이야기를) 발견한 건 아니고 저도 PD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8년 전이었는데, 시나리오로 개발하려고 한다고. 중남미 국가에 한국인이 들어가서 마약 비즈니스를 한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그때는 15페이지 짜리 트리트먼트를 윤종빈 감독에게 건넸는데 본인이 영화로 만들기엔 너무 방대하다면서 거절했다. 그리고 자긴 <공작>을 찍더라. 다른 감독님들과도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제작이) 쉽지 않아서 몇년간 표류했다. 그러다가 윤 감독이 다시 이걸 시리즈물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렇게 시작됐다."

<수리남>은 도미니카 공화국과 제주도, 전주, 대전 등을 오가며 약 10개월간 촬영했다. 하정우는 도미니카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가장 고생스러웠던 촬영으로 강인구와 전요환의 강가 싸움 신을 꼽았다. 그는 "미리 예방주사도 맞고 기생충 약도 먹고 진행된 촬영이었다"며 "수중 촬영이 엄청 지친다. 물에 한 번 빠지고 나오면 피 분장이 지워지기 때문에 매번 다시 해야한다. 체력적으로 너무 고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도미니카 교도소에서 촬영한 깜짝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교도소 장면은 실제 도미니카 공화국 교도소의 재소자들 중에 모범수 200명을 동원한 촬영이었다. 일당으로 영치금을 지급하면서 촬영을 진행했고, 소지품도 일체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휴대폰이나 전자담배뿐만 아니라 심지어 손톱깎기도 빼앗겼다. (극 중에서) 강인구가 교도소 복도를 걸으면 양쪽에서 재소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분위기가 살벌했다. 옆을 쳐다보기도 어려워서 앞만 보고 걸었던 기억이 난다." 

"윤종빈 감독과의 촬영, 쉽지만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배우 하정우 인터뷰 이미지

ⓒ Netflix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은 데뷔작인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비스티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함께한 단짝이다. 그는 "윤종빈 감독과 일하면 매번 (촬영이) 쉽지 않다. 나를 끝까지 뽑아먹으려고 한다"며 웃었다.

"윤종빈 감독과는 감독, 배우의 일적인 관계를 떠나 사적인 시간도 많이 보내온 사이다. 제 말투와 제가 말하는 패턴, 말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지 누구보다 윤 감독은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저를 많이 찍어본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진짜 화난 표정, 진짜로 웃음이 터졌을 때 표정도 다 안다. 제가 연기로 뭔가를 만들어내면 '어색하다'고 한다. 그래서 더 어렵다. 제 말투를 그대로 시나리오에 써서 제가 연기하면 정말 생활 연기처럼 나오게끔 지문과 대사를 써주는 반면, 진짜를 알기 때문에 (오케이의) 기준이 높다. 윤 감독이랑 일을 할 때의 고충이지."

한편 인터뷰 당일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박해수 역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오전 내내 속보를 확인했다던 하정우는 "마냥 부럽고 대단한 일이다. 사실 수상 사진들을 보면서 <수리남> 배우들의 얼굴을 슬쩍 오려서 넣어봤다"며 부러운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이어 "<수리남>이 <오징어 게임> 만큼 글로벌한 소재인가 싶지만 <수리남>도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시리즈를 찍어서 전 세계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세상이 된 것 같다. <수리남>의 독특한 소재를 재밌게 봐주시고 전 세계인들이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수리남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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