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 MBC

 
13일 밤 방영된 MBC <피디수첩> '경찰국장, 그는 밀정이었나?' 편은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김순호 경찰국장을 조명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과 의혹을 30년 넘게 품고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라며 그의 옛 동지들을 소개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하는 이번 방송은 옛 동지나 선후배들의 증언과 더불어 국군보안사령부 기밀문서 등을 근거로 그의 밀정 의혹을 다뤘다.
 
지금의 광주광역시에서 1963년에 태어난 김순호는 광주고등학교를 거쳐 1981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5·18 광주 학살을 딛고 일어선 전두환 정권에 대한 노동자와 학생들의 저항이 격렬했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했던 것이다.
 
대학생 김순호는 성균관대 인문사회 동아리인 심산연구회에 들어갔다. 방송 시작 3분 뒤에 등장하는 심산 김창숙 동상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운동권 서클에 가입한 것이다.
 
성균관대 명륜동 캠퍼스의 중앙학술정보관(도서관) 앞쪽에 동상의 형태로 서 있는 김창숙(1879~1962)이 이 대학 출신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대단하다. 성균관대 출신들은 과거의 성균관을 계승해 오늘날의 성대를 세운 김창숙을 모교 설립자뿐 아니라 불굴의 독립운동가로 기억한다. 친일파였던 김성수는 물론이고 친일파와 제휴한 이승만과 그를 대비시키는 성대 출신들이 많다.
 
보안사 기밀 문서에 담긴 김순호의 모습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 MBC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유교 선비가 없는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유림들은 불교·천도교·기독교에 비해 독립운동에서 많이 뒤쳐졌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김창숙은 유림들을 독립투쟁으로 이끌고자 분투했고, 48세 때인 1927년 일제의 고문을 받고 육체적 시련을 겪게 됐다.
 
1951년경에 나온 자서전 제목이 <벽옹 73년 회상기>인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 벽(躄)이란 한자의 밑부분에 발 족(足)이 있는 데서 느낄 수 있듯이, 1927년 고문은 그에게 하반신 마비를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앉은뱅이 노인'이라는 의미가 자서전 제목에 들어갔던 것이다.
 
김창숙의 육체는 일제 앞에서 굴(屈)했지만 그의 정신은 불굴이었다. 성대 출신들이 그를 존경하는 핵심 이유는 그것이다. 이런 김창숙의 호를 딴 심산연구회에 청년 김순호가 들어갔다. '심산'이라는 서클 이름이 자신의 어깨를 얼마나 무겁게 하는가를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의 심산연구회 후배인 김귀정 열사는 1991년 노태우 정권의 공안정국에 맞서 싸우다가 최투탄과 구타로 인해 희생됐다. 김귀정은 김창숙의 정신을 이어받아 불굴의 투쟁을 했지만, 김순호는 그렇지 못했다. 열혈 운동권 학생이었던 김순호는 3학년 때인 1983년에 강제 입영되고 이른바 녹화사업에 동원된 뒤로 불굴과 멀어졌다. 빨갱이를 녹색으로 바꾼다는 보안사의 사상전향 사업에 투입된 뒤로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녹화'된 그는 학생운동처럼 이 활동도 열심히 했고, 이런 그의 모습이 보안사 기밀 문서에도 담겼다. 방송 8분에 등장하는 1983년 11월 19일자 보안사 문서인 '특수학번자 김순호 제보: 의식화 첩보 보고'에서도 그의 활약상이 확인된다.
 
김순호 국장은 이 시기 자신의 활동과 관련해 "누굴 만난 뒤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긴 했지만, 친구들과 술 마신 내용 등만 보고해 별일은 없었다"(7분)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보안사 문건에는 그의 침투 목표가 "성대 심산연구회"로 명시돼 있고, 그가 보고한 명단과 인적 사항이 상세히 적혀 있다.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 MBC


이 대목에서 <피디수첩> 내레이션은 "문건에 등장하는 후배들은 적힌 내용이 구체적이고 정확하다고 증언"했다며 "문건 내용을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8분)라고 말한다. 문건 내용을 듣고 '그래서 그때 내게 그런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학 후배인 이은정(가명)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3학년 이후부터 시위만 있으면 형사들이 집으로 찾아와서"라며 "시위가 딱 잡히면 미리 다 연행해 가요"(9분)라고 회고했다.
 
시위가 예정된 날이면 경찰들이 동아리 회원들의 집을 미리 기습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유명 인사도 아니고, 앞에 나가서 특별하게 얼굴을... 공개적으로 활동한 게 아닌데 어떻게 찍혀서"라며 이은정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열혈 투사 김순호의 모습뿐이었다. 외형상으로 그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청년일 뿐이었다. 그 점은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졸업 뒤 공장에 위장 취업하고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지부장 활동을 할 때도 그는 열성 운동권이었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들 중에도 대학 후배 이은정과 비슷한 느낌을 갖는 이들이 있었다. 당국이 어떻게 우리 사정을 훤히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었다.
 
김 국장의 인노회 동지였던 박종근씨는 경찰 수사를 받다가 깜짝 놀란 사연을 소개했다. 방송 16분 경에 "종근씨가 입을 열지 않자 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라며 "인노회의 조직도였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 직후에 박종근씨의 반응이 방송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깜짝 놀랐죠. 어우!"라며 "너무 상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라고 한 뒤 "저희 조직도를 보여주는데 거의 낱낱이 적혀 있더라고요"라고 회고했다. 안재환 당시 인노회 회장도 그런 느낌을 소개했다. 경찰이 작성한 조직도를 보고 "이건 나도 작성할 수 없는 건데 할 정도의 내용"이었다면서 "김순호 외에는 알기 어려운 조직도"(18분)였다고 말한다.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 있는 그의 삶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MBC <피디수첩>의 한 장면. ⓒ MBC

 
노동운동가 김순호가 경찰로 변신한 것은 공안정국이 시작된 1989년이다. 1987년 6월항쟁 뒤에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이 봇물 터지듯 전개되자 노태우 정권은 이에 대한 반동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바로 이 시기에 인노회 조직은 와해되고 26세 김순호는 경장 계급으로 특채됐다. 김순호와 동지들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때 그랬던 것처럼, 경찰이 된 뒤에도 김순호은 적극적이었다. 운동권 수사에서 괄목할 성적을 거뒀고, 그에게는 상복이 터졌다. 36분경의 내레이션은 "김순호 국장은 대공 요원으로 특채되고 불과 1년 뒤에 치안본부장 상을 두 번 받았습니다"라며 1990년 9월에 '범인 검거 유공'으로 받은 데 이어 불과 두 달 뒤인 11월에 또 받았다고 설명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통령 표창도 그에게 주어졌다. 37분경의 방송 화면은 "대통령 표창을 받은 건 남한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사건 유공으로 받았습니다"라고 국회에서 설명하는 김순호 국장의 최근 모습을 보여준다.
 
김순호 경찰국장의 과거 행적을 조명하는 <피디수첩> '경찰국장, 그는 밀정이었나?' 편을 보면서 떠올리게 된 것이 있다. 경찰 특채 뒤에 경찰청 교육정책담당관, 경찰청 보안과장,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장 등을 거쳐 윤석열 정부의 행안부 경찰국장이 된 김순호 국장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순호는 시민혁명 뒤에 보수의 반격이 강화되는 시기에 개인 신상의 일대 변화를 두 번이나 겪었다. 6월항쟁 뒤에 보수의 반격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될 시점에는 경찰에 뛰어들어 6월항쟁을 억압하는 데 가담했다. 여기서 혁혁한 실적을 거둔 것이 오늘의 김순호를 있게 했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보수가 반격에 나서며 '촛불'이 위태해지는 지금 시점에도 김순호의 역할은 6월항쟁과 관련이 있다. 내무부(행안부)로부터 경찰 조직이 독립된 것은 6월항쟁의 결과물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행안부 경찰국 설치는 6월항쟁 이전으로 경찰 조직을 되돌리는 일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때처럼 경찰을 내무부와 대통령의 장악하에 두는 일이다. 6월항쟁의 성과를 퇴색시키는 행안부 경찰국장 직을 맡게 됐다는 점에서, 그의 이번 취임 역시 6월항쟁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보수가 반격에 나선 1989년에 그가 변신한 것도 6월항쟁과 관련이 있고, 보수가 또다시 반격에 나서는 2022년에 그가 변신한 것도 6월항쟁과 관련이 있다. 이는 김순호라는 한 개인의 삶이 아직도 전두환 정권 시절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89년 이전에 그는 외형상으로는 심산 김창숙을 존경하면서 전두환·노태우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젊은 투사였다. 그가 동지들과 함께 전개한 투쟁은 6월항쟁을 부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외형상으로 6월항쟁을 부르는 활동에 참여했던 그가 1989년에는 6월항쟁을 억압하는 활동에 뛰어들고, 2022년에는 6월항쟁의 결과물을 억압하는 활동에 가담하게 됐다. 노태우 정권에 이어 윤석열 정권도 김순호라는 한 개인을 1980년대에 가둬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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