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호찌민시티 한 카페 내부.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호찌민시티 한 카페 내부. ⓒ 김성호

 
무더웠던 8월의 어느날, 나는 베트남 호찌민시티를 여행을 마치고 중부도시 뀌년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열차가 출발하는 저녁 6시까지 4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더위도 피하고 시간도 때울 셈으로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세련된 생김의 카페에선 영미권 유명 팝송이 흘러나왔다. 곳곳엔 유명한 가수들의 바이닐과 통기타, 미국소설책과 양주들이 전시돼 베트남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특별히 내 눈을 끈 건 기둥 아래 놓인 액자였다. 액자 안엔 포스터 한 장이 들어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양 손을 뒤집어 하늘 위로 향하고 있는데, 오른쪽이 기계손이었다. 붉은 배경으로 눈을 사로잡는 이 포스터 아래엔 큼지막하게 영화의 제목이자 이 사내의 이름이기도 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DR.STRANGELOVE(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베트남에서 이 포스터를 만날 줄이야! 1964년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가운데 발발한 핵전쟁의 위기를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걸작이다.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이기도 한데, 그는 절멸의 위기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 전 세계에 천재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포스터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포스터 ⓒ 컬럼비아 픽처스

 
호찌민시티에서 만난 영화 포스터

영화는 제작시기부터가 민감했다.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해가 멀다 하고 일촉즉발의 상황을 빚었기 때문이다. 1961년엔 소위 '2차 베를린 위기'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를 향해 소련이 "서베를린에서 철수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사건이다. 서방은 이를 무시했고 그 결과 독일엔 냉전의 상징이라 불리는 베를린 장벽이 설치됐다.

이듬해엔 그 유명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가 정면승부를 벌였고 핵전쟁 직전 배를 돌린 소련의 양보로 종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양국은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이른바 '문 레이스 Moon Race'에 총력을 기울였다. 1960년대 세계정세를 가로지르는 최대의 화두가 냉전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냉전 속에서 미국은 실제 전쟁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미국 현대사에 치욕으로 새겨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한국에선 베트남전으로 알려진 전쟁이 그것이다. 1964년 미국은 조작극(통킹만 사건)까지 벌여가며 베트남 내전에 개입했는데, 한국전쟁에 이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간 대리전을 남의 땅에서 치른 사례로 평가된다.

베트남 호찌민시티의 한 카페에서 이 포스터를 만난 건 그래서 더욱 특별한 감상을 일으켰다. 냉전을 비꼬는 서방세계의 영화이자, 미국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참전이 있던 해에 제작된 작품을 베트남의 누군가가 좋아해서 카페에 내걸었고 이를 한국의 여행객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냉전의 양대 축이 된 두 체제의 대리전으로부터 한국과 베트남 모두 지울 수 없는 비극을 경험했으니 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틸컷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냉전의 시대 태어난 큐브릭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냉전 속 핵 위기를 그린다. 영화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망상에 휩싸인 잭 리퍼 장군(스털링 하이든 분)이 소련을 향해 핵폭격기를 출격시키며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을 막기 위해 비상회의를 소집하는데 상황의 심각성만 부각될 뿐이다. 폭격기 중 한 대는 귀환명령을 듣지 못하고, 소련은 전 세계가 '운명의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촉즉발의 사태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은 큐브릭 특유의 연출과 맞물려 관객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당대 젊은이들에겐 열광적 지지를, 기득권층에겐 반발을 일으킨 영화는 이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와 함께 큐브릭의 대표작으로 기록됐다. 특히 이 영화의 유쾌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사회상은 영화사상 최고의 블랙코미디를 뽑을 때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페일 세이프> 등 냉전의 위기를 그린 유사한 작품들 중에서도 이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영화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최고의 명장면은 역시 엔딩이다. 2015년 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던 이 장면은 부드러운 선율의 'We will meet again'이 흐르는 가운데 인류가 맞이한 절멸의 위기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샤이닝>에선 세발자전거의 바퀴소리로 관객들의 심장을 잔뜩 쪼그라들게 만든 큐브릭의 비범한 사운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달 초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체제의 패망을 당겼다는 비판에도 고르바초프의 업적을 먼저 기리게 되는 건, 그가 어쩌면 일어났을지 모르는 비극을 끝내 막아냈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평화를 향한 고르바초프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이 만족할 만한 영화다. 이 영화를 베트남 여행 중에 만나게 된 건 내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틸컷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틸컷 ⓒ 컬럼비아 픽처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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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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