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한 장면.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한 장면. ⓒ tvN

 
내의원의 촉망받는 의원이었던 유세풍(김민재 분)은 치료 도중에 임금이 사망하는 바람에 도성에서 쫓겨났다. 임금을 시해한 음모의 주범은 좌의정 조태학(유성주 분)이지만, 죽음 직전의 임금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유세풍이 불명예를 뒤집어쓴다.
 
조태학은 사건을 완전 범죄로 만들고 싶어서, 한양을 떠나 지방을 전전하는 유세풍을 찾아내 없애려 한다. 총 12회로 예정된 전체 스토리의 막바지에 다다른 이 드라마는 조태학의 음모에 맞서는 유세풍의 힘겨운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어의를 비롯해 임금 주변의 의사들은 유세풍처럼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왕족들을 치료하는 의원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위태위태한 순간들을 보냈다. 자신이 치료하던 임금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잘잘못이 어떠하든 형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살아야 했다.
 
쿠데타로 임금이 바뀌는 경우가 아니라면, 왕조시대의 정권교체기는 현직 임금이 시름시름 앓다가 눈을 감는 시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의 대통령들이 임기 말년에 권력누수를 겪다가 대통령 관저를 나오는 것처럼, 왕조시대 군주들은 '육체의 권력누수'를 겪다가 현세를 마쳤다.
 
이런 정권교체기에 위태위태한 것은 군주의 목숨뿐만이 아니었다. 어의들의 운명도 비슷했다. 차기 군주나 신주류 세력의 비호가 보장된 경우가 아니라면, 어의들은 목숨을 잃거나 의료인 인생을 마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했다.
 
어의들이 받았던 스트레스

1506년 연산군 정권의 몰락과 함께 군주가 된 중종의 치세가 36년 경과한 시점이었다. 1542년인 그해의 명나라 군주는 가정(嘉靖)이란 연호를 쓰는 세종이었다. 편의상 가정제로 불리는 35세의 이 군주는 그해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음력으로 임인년인 그해 하반기에 양금영(楊金英)을 비롯한 10여 명의 궁녀들이 가정제의 침실을 습격했다(임인궁변). 황제를 목졸라 죽이기 위해서였다. 황제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궁녀들이 군주 시해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이 정변은 내부자 밀고로 황후에게 알려졌고, 황제가 목숨을 잃기 전에 궁녀들이 먼저 체포됐다.
 
임인궁변은 의료인 허신(許紳)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계기가 됐다. 그는 정신을 잃은 황제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강한 약을 썼다. 그러자 14~16시간 뒤에 황제가 신음 소리를 내며 검붉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 치료로 가정제는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자오양 중국인민대학(중궈런민대학) 겸임교수의 < 5천년 내력의 중국 황실 건강법 >은 "하마터면 죽을 뻔한 황제를 살려낸 어의 허신은 황제로부터 중국 어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대우인 태자태보·예부상서에 봉해지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금은보화 등 최고 등급의 상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일은 허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도리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됐다.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허신은 이 일을 겪고 난 뒤 당시 정황을 생각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마음의 병을 얻게 되어 자주 정신이 몽롱해져서 끝내 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는 이런 사변으로 인하여 생긴 병이 약물로는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머지않아 허신은 세상을 뜨게 되었다."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주인공은 치료를 받던 임금이 자기 목전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본 뒤 침을 놓지 못하게 됐다. 그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침을 들 때마다 정신적으로 흔들리며 번번이 시침을 포기했다. 이 때분에 조수이자 동지인 서은우(김향기 분)가 그의 지시에 따라 침을 놓게 됐다.
 
허신의 스트레스는 유세풍보다 훨씬 컸던 듯하다. 유세풍은 시침을 제외한 나머지 치료 활동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 유세풍은 환자들의 심리까지 살피며 마음과 몸을 연결하는 치료법을 구사하고 있다. 허신은 그 자신이 마음의 병을 얻어 몸져눕게 됐으니, 허신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어의의 운명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한 장면.

tvN <조선 정신과 의사 유세풍>의 한 장면. ⓒ tvN

 
한편, 군주의 사망으로 인한 정권교체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통과한 의료인도 있다. 조선 세종·문종·단종·세조시대의 의료인인 전순의(全循義)가 바로 그다. 전순의는 정권교체 풍파를 상대적으로 잘 견뎌낸 편에 속한다.
 
제4대 세종, 제5대 문종, 제7대 세조 때 전의감 의관을 지낸 전순의는 세종 사망 직전에 징계를 받았다. 세자 이향(훗날의 문종)을 치료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세종의 지적을 받고 일종의 근신처분을 받게 됐다.
 
세종 사후에 복직된 전순의는 임금이 된 문종을 치료할 때 또다시 의심을 받았다. 종기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서에 적힌 일반적 방식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 없이 치료해놓고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의의 운명이었다. 그런 어의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의서에 적힌 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전순의는 의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군주를 치료했던 것이다.
 
이 점은 그를 비롯한 의료 책임자들이 문종 사망 직전에 의서를 펴놓고 치료법을 강구했다는 실록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종이 사망한 날인 음력으로 문종 2년 5월 14일(양력 1452년 6월 1일)의 상황을 담은 <문종실록> 기사는 임금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수양대군과 의원 등이 "방서(方書)를 고찰"했다고 말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순의는 '문제 없다'며 조정을 안심시켰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문종이 종기 때문에 죽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황이 다급해지자 전순의와 종친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서를 상고하는 풍경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환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비상상황에서 주치의와 환자 가족이 의서를 놓고 상의하는 것은 특이한 풍경이다. 환자 가족들이 주치의의 치료 방식을 신뢰한다면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주치의 혼자서 의서를 참고하는 것은 몰라도, 환자 가족과 주치의가 의서를 함께 보면서 토의하는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다. 전순의의 치료 방식이 신뢰를 주지 못하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치료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그가 금기 사항을 준수하지 않은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단종 1년 4월 27일자(1453년 6월 4일자) <단종실록>에 수록된 사헌부의 보고에 따르면, 전순의는 당대의 의료 상식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문종의 종기를 치료했다.
 
당시 사람들은 종기 치료를 할 때는 외부 활동을 삼가고 꿩고기를 먹지 말도록 했다. 꿩고기·닭고기·오리고기처럼 껍질에 기름이 많은 음식을 종기 환자에게 먹이지 않는 것이 그 시대 의료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전순의는 문종에게 외부 활동을 시키고 꿩고기를 많이 먹였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의였다. 그런 어의가 당대의 금기 사항을 어기면서 왕을 치료했다. 전순의가 상당히 대담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드라마 속의 유세풍이나 명나라 때의 허신과는 '멘탈 구조'가 달랐다고도 볼 수 있다.
 
전순의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그는 문종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의금부에 하옥되고 직급도 강등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수양대군과 가까운 이사철 등의 적극 엄호로 그에 대한 공세가 약해지다가 단종 1년 10월 10일(1453년 11월 10일)에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성사시키면서 그의 운명은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그 뒤 승승장구하면서 공신 지위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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